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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기나는방/글향기

[정찬] 단편 소설 - 베니스에서 죽다 -

단편소설

베니스에서 죽다



정찬





1



내가 영국의 배우 더크 보가드의 연기를 처음 본 것은 〈비엔나 호텔의 야간 배달부〉라는 이색적인 제목의 영화에서였다. 작년 가을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우연히 눈에 띄어 보게 된 이 영화는 이탈리아 여류 극작가이며 감독인 릴리아나 카바니가 이차대전 직후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 갇혀 있었던 한 여자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해서 만든 작품이다.
1958년 음산한 겨울의 비엔나 호텔. 공연을 위해 지휘자인 남편을 따라 이곳 호텔에 투숙하게 된 루치아는 야간 배달부 막스를 보고 충격을 받는다. 소녀 시절 강제 수용소에 수감된 적이 있었던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친위대 장교 막스의 성적 노리개로 전락하는데, 나중에는 비정상적인 사랑으로 발전하게 된다. 새로운 상황에서 막스와 재회한 루치아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열정에 휩싸임으로써 죽음이라는 비극적 종말 속으로 스스로 뛰어든다. 남녀의 가학적인 성(性) 심리가 음울하게 그려진 영화였는데, 막스 역을 맡은 더크 보가드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곧 그를 잊었다. 그를 기억하기에는 일상생활이 너무 바빴다. 그런데 금년 3월 초, 배우의 내면세계에 관한 책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그와 다시 마주쳤다.

나는 방 안을 천천히 돌면서 내 영혼을 지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받아들여야 할 새로운 영혼의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찾아오는 죽음을 생각했다. 그 영혼은 어느 틈엔가 내게 다가와 세월의 무게와 고독이 빚는 불안과 피곤을 등에 지고 텅 빈 내 몸속으로 들어왔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을 대표하는 감독 중의 한 사람인 루치노 비스콘티의 영화 〈베니스에서 죽다〉에서 주인공 아셴바흐 역을 맡은 더크 보가드가 아셴바흐로 변신하는 과정을 고백한 글이었다.

나는 완전히 아셴바흐였다. 내 신체는 그의 영혼을 담기 위한 그릇에 불과했다. 영화가 촬영되는 수개월 동안, 심지어 촬영장에서 집에 갈 때도 홀린 사람처럼 아셴바흐의 걸음걸이와 습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그 글을 읽으면서 두 가지 점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첫번째 놀라움은 영화의 원작이 토마스 만의 동명 소설이라는 점이었다. 내가 『베니스에서 죽다』를 처음 읽은 것은 이십대 초반이었다. 그후 삼십대 중반에 한 번 더 읽었는데, 세세한 것은 잊었지만 소설의 분위기와 스토리는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읽은 이는 알겠지만 스토리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피로에 지친 저명 작가 구스타프 아셴바흐가 뮌헨의 공동묘지에서 낯설고 기이한 남자를 만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여행에의 욕구를 느낀 아셴바흐는 바다와 마주한 베니스의 한 호텔에 도착하여 짐을 푸는데, 그곳에서 그리스 조각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소년을 보고 넋을 잃는다. 소년의 완전한 아름다움에 취한 아셴바흐는 자신이 쌓아왔던 삶의 엄격함을 무너뜨리고 동성애적 쾌락 속으로 빠져든다. 그 내밀한 욕정은 베니스를 떠돌고 있는 치명적인 전염병조차도 달콤한 위험으로 바꾸어놓는데, 결국 그는 얕은 바다 속 모래톱 위에 홀로 서 있는 소년을 황홀하게 바라보다가 영원히 숨을 거둔다.
이백 자 원고지 오백여 장 분량의 이 소설은 거의 대부분 아셴바흐의 삶과 예술에 대한 사유와 관념으로 채워져 있다. 중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소년조차도 아셴바흐의 엿봄의 대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작품 속을 조금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도처에서 죽음의 이미지와 마주친다.
공동묘지의 비잔틴 양식 건물 위에서 아셴바흐를 내려다보고 있는 기이한 남자는 나그네의 신이며 명부(冥府)에로의 안내자이기도 한 헤르메스의 모습과 일치한다. 베니스 행의 낡고 우중충한 기선은 물론, 베니스에 도착해서 타게 되는 곤돌라 역시 죽음의 이미지로 채색되어 있다. 하지만 아셴바흐가 소년을 만나면서부터 죽음의 어두운 이미지는 밝고 아름다운 이미지로 전환된다. 이 전환이야말로 소설이 품고 있는 중심적 상징으로서, 완전한 아름다움을 본 대가가 죽음임을 토마스 만은 은밀히 속삭이고 있다. 이런 관념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또하나의 놀라움은 더크 보가드의 고백이었다. 배우의 변신에 대해 막연히 생각해왔던 나에게 영혼을 통째로 바꾸는 그의 변신 과정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그 놀라움들은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상영조차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비디오로도 출시되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5월 어느 날 나는 L선배로부터 뜻밖의 소리를 들었다. 구스타프 말러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그녀의 입에서 느닷없이 문제의 그 영화가 튀어나온 것이다. 그녀의 말인즉 루치노 비스콘티라는 걸출한 감독이 만든 영화 〈베니스에서 죽다〉를 본 적이 있는데, 주인공의 분장이 말러를 연상시키더라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나는 그 영화를 어떻게 보았느냐고 물었는데, L선배는 비디오로 보았다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입가에 미소까지 머금고 있었다. 그게 비디오로 나왔느냐는 나의 거듭된 물음에 그녀는 옛 제자가 오스트리아에서 선물로 사온 것이라면서, 독일어를 들을 수 없어 갑갑하긴 했지만 소설의 줄거리와 연결시키면서 보니 무척 재미있더라고 했다.
너무나 반가웠던 나는 그것을 빌려달라고 했는데, 뜻밖에도 L선배는 곤혹스러운 표정이긴 했지만 단호히 거절했다. 자신의 소유물 중 빌려줄 수 없는 것들이 여럿 있는데, 비스콘티의 비디오가 그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어떤 물건보다 소중히 취급할 것이며, 원한다면 그것을 본 즉시 돌려주겠다는 나의 간절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L선배는 그것이 자신의 품에서 떠난다는 것은 예기치 않는 사태에 의해 훼손될 수 있는 가능성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면서 자신은 그런 끔찍한 불안에 사로잡히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해석하기가 약간 난감한, 묘한 대답이었다.
“그러면 주인과 똑같은 마음을 가지면 되겠네요.”
의외의 거절에 나는 적이 당황했으나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이 아닌 사람이 어떻게 주인과 똑같은 마음을 갖겠어.”
그녀의 말은 맞았다. 하지만 그건 차가운 논리일 뿐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차가운 논리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었다. 그녀는 내 소설의 심층을 들여다보는 눈 깊은 독자였다.
작가의 입장에서 자신의 소설을 깊이 들여다보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커다란 행복이다. 나보다 십오 년여 연상이긴 하지만 예술에 관한 한 우리는 다정한 친구였다. 그런 친구에게 거절을 당했으니 당황할 만도 했다. 그녀와의 교유 이래 무엇을 빌려달라고 부탁하기는 처음이었다. 더욱이 그 빌림의 대상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예술적 상관물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의 부탁을 들어주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문제는 거절의 이유였다. 그것이 명쾌했다면 나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유쾌하게 웃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전혀 명쾌하지가 않았을 뿐 아니라 이해하기조차 힘들었다.
나는 L선배의 희귀한 개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 희귀함은 그녀의 철저한 아웃사이더적 삶에서 잘 드러난다. 세속적인 시선으로 보아도 아웃사이더의 면모는 금방 눈에 띈다. 우선 그녀는 독신이다. 우리 사회는 독신 여성에 대해 유별난 호기심을 갖고 있다. 특출한 예술적 저서와 번역서를 통해 일찍부터 대중의 눈에 노출되어 있었던 그녀에게 이 호기심이 끈덕지게 따라다녔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것이 지긋지긋했던지 언젠가 결혼을 안 한 이유에 대해 글로써 고백한 적이 있었는데, 다음의 내용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정신. 삶을 직접적으로 즐기는 것을 방해하고, 무엇이나 꼬치꼬치 따지고 분석하고 까다롭게 구는 귀찮은 놈. 그러나 한없이 높고 맑은 에테르처럼 별에까지 도달할 수도 있는 저 신비한 불굴의 힘. 이 정신이라는 것에 쫓겨본 사람이면 시장기나 목마름과도 같이 현실적이고 절박감을 지닌 것임을 인정하리라. 또한 이 정신이라는 것은 고독을 공기처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것 없이는 조만간에 질식감을 느끼게 되리라. 결혼생활이란 간단히 말해서 남녀 두 사람이 ‘터놓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정신이라는 놈은 도대체 누구와도 터놓고 지내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게다가 나는 ‘집 안’에선 본질적으로 정신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다른 존재를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의 교유는 꽤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지만 그녀의 집에 가본 적은 없다. 외출을 끔찍이도 싫어해 그녀가 사는 동네 다방에서 여러 번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집 안’을 구경시켜주지 않았다.
낮과 밤을 거꾸로 사는 생활방식도 아웃사이더적이다. 그녀의 정신이 빛나는 시간은 깊은 밤이다. 그런 까닭에 중요한 삶의 활동은 밤에 이루어진다. 책 읽기와 음악 듣기와 글쓰기가 그 활동의 내용들이다. 특히 음악에 대한 그녀의 열광은 운명적이란 수식어를 붙여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그녀가 세상에 내놓은 저술과 번역서들 중 음악과 관련된 것이 압도적으로 많음은 그것을 증명한다.
시간을 거꾸로 세운 삶의 방식은 그녀에게 정신의 풍요를 준 대신 육체의 건강을 앗아갔다. 귀가 예민한 그녀는 온갖 소리들이 떠도는 낮에 깊이 잠들지 못한다. 만성적인 수면 부족은 건강에 치명적이다. 더욱이 정신에 탐닉하는 존재가 갖기 쉬운 육체에 대한 경멸이 그녀의 건강을 일찍부터 잠식했던 터였다.
이십대 시절 수면제 중에서도 가장 독한 세코날을 그녀는 상습적으로 복용했다. 여섯 알 이상 먹으면 생명에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는 약이었음에도 열 알까지 먹은 적도 있었다. 심지어 어떤 날은 몸 안으로 들어가는 세코날의 양에 따라 의식이 어떤 상태로 변하는지 너무 궁금해 일기장을 펼쳐놓고 직접 실험까지 했다. 그 결과 L선배는 일찍부터 육체의 눈치를 보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조금만 무리하면 육체가 반란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L선배가 제시한 거절의 이유를 해독하지 못해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었다. 못 빌려주겠다는 이에게 이유를 자꾸 캐묻는 것도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다. 물론 누가 부탁을 했더라도 그녀의 대답이 똑같을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가자니 가슴속에서 서걱거리고 있는 감정의 찌꺼기가 거북스러웠다.
“주인의 품에 있다고 해서 훼손의 가능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결국 나는 가시 돋친 말을 뱉고 말았다. 거절의 이유에 대해 시비를 거는 질문이었던 것이다.
“일반적인 물건일 경우는 그렇지.”
그녀의 목소리는 의외로 담담했다.
“특별한 물건이라도 마찬가지죠. 물건인 이상 훼손의 가능성은 상존하니까요.”
“그러니까 그건 물건이 아니야.”
“비디오는 분명 물건입니다.”
“맞는 말이면서도 틀린 말이기도 해.”
고개를 비스듬히 하고 있던 그녀는 나를 똑바로 보았다. 테가 굵은 구식 안경 속에는 나이에 비해 놀랄 만큼 맑은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가 뭐라고 말하려는데, 모 출판사 주간인 H씨가 나타났다. 눈이 유달리 크고 몸이 호리호리한 그는 L선배와 무척 가까운 출판인이었다. 외출을 기피하는 그녀가 집 바깥으로 나온 김에 두 사람을 동시에 불렀던 것이다. H씨의 출현으로 중단된 우리의 대화는 다시 이어지지 않았고, 결국 나는 감정의 찌꺼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집으로 들어왔다.

2



다음날 오후 여섯시쯤 나는 거실에서 신문을 보고 있었다. 창으로 스며드는 저녁의 잔광은 회색이었다. 특별히 읽고 싶은 기사가 없는데다 졸립기도 해 신문을 덮으려는데 ‘사이버 금광은 빠른 사람의 것…… 속도가 돈이다’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미국의 경제잡지 『포츈』에 실린 기사를 요약한 것으로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인터넷 관련 기업의 경영자들은 전통적 기업의 경영자들보다 다른 양태를 보인다. 그들이 무엇보다도 강조하는 것은 속도다. 『생각의 속도』란 책을 펴낸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처럼 남보다 빨라야 한다는 데 광적으로 집착하는 그들은 항상 핸드폰과 쌍방향 삐삐, 팜탑, 랩탑을 끼고 산다. 빨리 움직여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업의 기반인 전자세계가 ‘실체 없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는 1위가 중요할 뿐 2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그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나는 묘한 기분이 되어 신문에서 눈을 뗐다. 실체 없는 공간 속에서 빛처럼 질주하는 인간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마 그들은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머뭇거린다는 것을 의미하고, 머뭇거림은 느림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정보화 시대의 가장 큰 악덕이 느림임을 이제는 국민학생조차도 알고 있다.
전화벨이 울렸다. L선배였다. 그녀는 불쑥 모레 저녁에 만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의아해진 나는 무슨 일이냐고 되물었다. 만난 지 불과 하루 만에 또 만나자는 전화를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가 사는 동네와 내가 사는 동네는 택시로 십오여 분밖에 걸리지 않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지만 일 년에 두세 번 만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니까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만나는 것이다.
그녀의 대답인즉 시간이 괜찮다면 모레 저녁 동숭동 학림다방에서 내가 빌리고 싶어했던 비디오를 같이 보자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제의였지만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탁은 거절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던 그녀가 궁리 끝에 찾은 해결책이 그것임을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L선배와 학림다방과의 인연은 그녀의 대학 시절부터 시작된다. 낡아서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 위에 다락처럼 떠 있는 그 남루한 공간은 관념에 홀린 젊은 영혼이 위대한 망상을 꿈꾸었던 작은 둥지였다. 겨울 새벽 수유리 화계사로 산책 나갔다가 불현듯 모차르트가 듣고 싶어 미친 듯이 달려와 LP판을 올려놓았던 곳이기도 했고, 자살로 생을 마감함으로써 영원한 아웃사이더가 되어버린 전혜린을 죽음 하루 전날 만난 곳이기도 했다.
약속 시간을 저녁 여섯시로 정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문제의 그 비디오가 왜 물건이 아닌지 한층 궁금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 부탁을 거절했던 그날 저녁 L선배는 학림의 젊은 사장 K씨에게 전화해 이러이러한 일로 모씨와 함께 비디오 볼 일이 생겼으니 삼층 별실을 쓸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K씨는 비디오 기기가 얼마 전에 고장이 나 아직 고치지 못했는데, 꼭 봐야 한다면 딴 곳에서 빌려오겠다고 했다. 결국 그는 근처에 사는 친구의 것을 빌려와 우리가 볼 수 있게끔 조치를 해놓았다.
L선배가 K씨를 알게 된 경위를 생각하면 웃음을 금할 수 없다. 92년 늦여름, 당시 음악 전문지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던 나는 원고 문제로 동숭동 대학로에서 L선배를 만났다. 저녁 식사 후 가벼운 술추렴을 하고 나니 열시쯤 되어 있었다.
L선배는 거의 평생 서울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갓 상경한 시골 사람처럼 서울 지리에 까막눈이었다. 그것도 보통 까막눈이가 아니어서 생활의 필요에 의해 규칙적으로 다니는 몇몇 길에서 벗어나면 그만 미아가 되어버린다. 나의 관찰에 의하면 낯선 길에 대한 예민한 두려움이 그녀에게 있었다. 언젠가 늦은 밤 그녀의 안전한 귀가를 위해 내가 동행한 적이 있었다. 택시가 잘 잡히지 않아 버스를 탔는데, 착오로 그만 한 정거장을 지나쳐버렸다. 길 안내자만 믿고 마음을 놓고 있었던 그녀는 전혀 낯선 풍경에 경악을 하며 여기가 어디냐고 거의 외치듯 말했다. 한 정거장이라고는 하지만 도보로 오 분쯤 되는 거리를 벗어났을 뿐이었다. 모차르트의 음악 속에서는 우주를 유영하는 그녀이지만 몸의 길에서는 그렇게 꼼짝을 못 했다.
아무튼 그날도 길 안내자가 된 나는 지하철을 타는 게 나을 것 같아 혜화동 역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전동차 안에 빽빽이 들어찬 사람들을 본 그녀는 기겁을 하며, 저 속에서 어떻게 숨을 쉬느냐고 손사래를 쳤다. 우리는 진지한 논의 끝에 술 한잔 더 마시고 열한시쯤 나오기로 합의했다. 그때쯤이면 승객의 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판단으로. 다시 지상으로 올라온 우리는 길 주변을 두리번거렸는데, 학림이라는 굵은 명조체 간판이 눈에 띄었다. 내가 저기를 가자고 했더니 그녀는 다시 기겁했다. 지하철 역에서의 그것보다 한층 더 큰 손사랫짓과 함께. 사연인즉 이랬다.
85년 가을 어느 날, 옛 생각에 사로잡혀 학림을 찾은 그녀는 망연자실했다. 그 아늑한 추억의 공간이 상업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분위기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과거의 시간이 훼손되어버린 느낌과 함께 형언하기 힘든 아픔이 몰려와 다시 찾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고 한다.
사연을 듣고 나니 호기심이 고개를 슬며시 들었다. 어떻게 변해 있길래 저러는가 싶어 잠깐 기다리게 해놓고 혼자 학림으로 올라갔다. 이층으로 오르는 가파른 나무 계단은 여전했다. 문을 열고 실내를 훑어본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무 탁자와 빛 바랜 소형 소파, 벽에 걸린 옛날 사진, 어두우면서도 편안한 조명, 은은히 흐르는 클래식 음악. 어디에도 그녀의 이야기가 연상시킨 천박함을 찾을 수 없었다.
아래로 내려와 내가 본 광경을 말해주었더니 그녀는 자신을 속이는 게 아닌가, 하는 눈초리로 내 얼굴을 살폈다. 올라가보면 진위를 알 수 있지 않느냐는 나의 제의에 그녀는 미심쩍어하면서도 가파른 나무 계단에 발을 딛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은 긴장과 불안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계단 끝에 선 그녀는 문을 여는 대신 창을 통해 안을 살폈다. 그러다가 문을 조그맣게 열고는 긴 목을 안으로 집어넣었는데, 조금 후 그녀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터져나왔다.
“왜 이렇게 달라졌지!”
안으로 들어선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얼굴은 어린아이처럼 환해져 있었다.
“옛날에는 저기에 피아노가 있었어.”
창가 테이블에 앉은 그녀는 한쪽 구석을 손으로 가리키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해질 무렵 여기 앉아 있으면 창호지 문살을 뚫고 연한 노을이 쏟아져들어왔지. 그 노을들은…….”
그녀는 뭐라고 말할 듯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희고 길쭉한 그녀의 손은 갈색의 나무 탁자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저, 실례지만…….”
뜻밖에도 낯선 남자가 다가와 회상에 잠긴 L선배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노을을 생각하고 있는 듯한 그녀의 자욱한 눈에서 의아한 빛이 떠오르고 있었다.
“혹시 쭛쭛쭛 선생님이 아니십니까?”
“그렇습니다만…….”
“어이쿠 반갑습니다.”
그가 바로 K사장이었다. 60년대 초 문을 연 학림은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추억을 남긴 채 83년 문을 닫았다. 주인이 미국으로 이민해버린 것. 학림을 인수한 새 주인은 60년대 분위기를 털어내고 대학로라는 소비문화 거리에 어울리는 공간으로 꾸몄다. L선배가 망연자실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후 87년 학림을 인수한 K사장은 과거의 정취 살리기에 골몰했다. 내부 단장을 새롭게 하는 한편, 학림의 추억을 안고 찾아오는 ‘늙은 손님’들을 반갑게 만났다. 방명록도 만들었는데, 그들이 남긴 글들은 빛 바랜 흑백사진처럼 정감을 불러일으켰다.

―우리의 옛사랑이 머물던 곳. 학림다방에 4·19세대의 한 사람이 삼십사 년 만에 다녀가다.
―저는 귀 다방에 자주 들은 객으로서 추운 겨울날 따뜻한 난로를 쬐게 해주어 감사함을 표하나이다.
―멀리서 왔습니다. 마로니에와 미라보 다리 밑으로 떨어지던 노란 개나리꽃, 우리 헨리 아범과 데이트하던 그 아름다운 추억을 생각하며.

옛 손님들로부터 학림의 터주와도 같았던 L선배의 전설적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은 K사장은 언젠가 찾아오리라고 확신, 그녀와 비슷한 인상의 손님을 보면 유심히 살폈다고 한다.

3



여섯시 조금 못 돼 학림으로 들어가니 창가에 앉아 있는 L선배가 보였다.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하다고 했더니, 그녀는 고개를 흔들면서 그렇잖아도 한번 보고 싶었는데 오히려 잘되었다고 했다. 나는 무슨 말인지 몰라 눈만 껌벅거렸다.
“비디오 기계를 사긴 사야겠어.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으니.”
“기계가 고장난 모양이군요.”
“고장날 게 뭐 있어. 기계 자체가 없는데. 〈베니스에서 죽다〉도 여기서 봤어. 제자와 함께.”
“그때가 언젠데요?”
“삼사 년은 족히 됐을걸.”
“그 동안 계속 잠자고 있었군요.”
“응, 나와 함께.”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텔레비전은 있습니까?”
“있긴 한데 고장이 났어. 오래 전에”
“세상과 아주 격리되었군요.”
“그래도 신문은 봐. 한 종류지만.”
“저는 가끔 선배의 집 안 풍경을 상상해보곤 하지요.”
“불온한 상상이군.”
“왜요?”
“난 혼자 사는 처녀야.”
“정말 그렇군요.”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무엇이 가장 자주 떠오르는지 아세요?”
“글쎄, 뭘까?”
그녀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보았다.
“램프등이에요.”
그녀의 집은 북한산 자락의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한 작은 연립주택이었다. 따라서 램프등을 사용할 이유가 없었다. 특이한 취향 때문에 전깃불을 마다하고 원시적인 조명 기구를 사용하는 이들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녀로부터 램프등을 쓴다는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로 조용히 타오르고 있는 램프등이 떠오르곤 했다.
“유감스럽지만 나에겐 램프등이 없는걸.”
“그러니까 상상이지요.”
둥글면서도 부드러운 램프등의 불은 내부를 어슴푸레 밝히고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벽이라든가 천장은 보이지 않고, 오래된 책들과 구식 오디오, 낡은 LP판들만 눈에 띈다. 그들은 저마다 독특한 형태를 이루며 고요히 누워 있는데, 가끔 몸을 뒤척이기도 한다. 그들이 몸을 뒤척일 때는 작은 소리들이 들려온다. 책장 넘기는 소리, 펜이 사각거리는 소리, 한숨 소리, 종이 구겨지는 소리, 현악기의 투명한 소리들이.
“왜 램프등이 떠오르는지 궁금하군.”
“망자의 혼이 떠도는 곳이니까요.”
“…….”
“전 지금도 소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뭘?”
“삶의 비밀이 적힌 암호가, 우주의 신비를 푸는 열쇠가 있는 것처럼 밥 먹는 것 잠자는 것을 의식적으로 무시한 채 책 속에 파묻혀 망자의 지혜와 더불어 황홀한 공감을 맛보았다는 선배의 글 말입니다. 이십대 시절을 회상하며 쓰신 글이었죠?”
“응, 그랬지.”
“선밴 지금도 그들과 함께 살고 있지 않습니까?”
“망자의 혼들과?”
“네.”
“맞아.”
그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망자의 혼은 전깃불을 싫어하지요. 너무 밝으니까요.”
“그럴듯하군.”
그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램프등말고 또 떠오르는 게 있어요.”
“흠, 그건 뭐지?”
“시간입니다.”
“시간?”
“램프등을 감싸며 흘러가는 시간은 눈에 보입니다. 속도가 워낙 느리니까요.”
“왜 느리지?”
“망자의 혼들은 느린 시간 속에서만 숨을 쉬는 법입니다. 그러니까 삶의 비밀이 적힌 암호는 느린 시간 속에 있지요. 요즘 젊은이들은 그 암호를 어디서 찾는 줄 아십니까?”
“글쎄…….”
“가상의 공간에서 찾습니다.”
“가상의 공간이라니?”
“컴퓨터가 만드는 공간이죠. 인터넷 해보셨어요?”
“컴퓨터도 없는데 어떻게 해. 누가 갖다줘도 사양하겠지만.”
“책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미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리라는 심연에 이르는 길이란 언제나 미궁이니까요. 제 말 동의하십니까?”
“물론.”
“인터넷이라는 공간도 미궁이지요. 우주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들어 있는.”
“신비로운 미궁이군.”
“하지만 그 속에는 어둠이 없습니다. 어디서나 환하지요. 과거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현재만이 존재합니다. 미래로 끊임없이 뻗어나가는.”
“끔찍한 세계군. 내가 그 속으로 들어가면 숨이 막혀 죽겠는걸.”
“지하철 전동차 속처럼요?”
“차라리 전동차 속이 나을 것 같은데.”
그녀는 눈을 끔벅이며 말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우주 공간인걸요. 별은 없지만.”
“작가인 그대에게도?”
“전 그 속으로 안 들어갑니다. 엿보기만 할 뿐이지요.”
“은밀한 구멍이 있나 보군.”
“아주 은밀한 구멍이지요. 찢긴 시간의 틈새니까요.”
언제 내려왔는지 K사장이 준비가 다 되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3층으로 올라갔다. 천장이 낮고 작은 창이 있는 별실은 영화 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녀는 커다란 핸드백에서 문제의 비디오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구스타프 말러의 곡이 전편에 흐르는 그 영화는 화면 상태는 물론이지만 음향도 중요했다. 더욱이 독일어를 듣지 못하는 까닭에 그것들의 중요성은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화면도 음향도 다 좋지 않았다. 처음에는 비디오테이프 탓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기계의 결함 탓임이 얼마 못 가 밝혀졌다. K사장은 예상치 못한 기계의 조악에 당황했으나 엎질러진 물이었다.
영화 속의 아셴바흐는 원작과는 달리 음악가였다. L선배의 말대로 분장한 더크 보가드의 모습은 말러와 흡사한 데가 분명 있었다. 1911년 5월 18일 토마스 만은 그가 존경하고 있었던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죽음을 들은 후 베니스로 여행을 떠난다. 이 체험을 바탕으로 『베니스에서 죽다』를 쓰게 되는데, 작가는 훗날 “나는 황홀하게 죽은 아셴바흐에게 위대한 음악가의 이름 구스타프를 붙였고, 그의 외모에 말러의 가면을 씌웠을 뿐이었다”고 밝혔다.
작고 마른 몸매에 길고 창백한 얼굴, 진흙색 머리카락과 가파른 이마를 지닌 금욕적 신비주의자 구스타프 말러는 그의 나이 마흔일곱 살 때인 1907년 심장병 선고를 받음으로써 죽음과 대면하게 된다. 이듬해 작곡한 〈대지의 노래〉는 사실상 교향곡 9번이었지만, 베토벤과 브루크너가 교향곡 9번을 완성하고 죽은 사실에 두려움을 느낀 그는 아홉이란 숫자를 피했다. 하지만 그에게 교향곡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1909년 교향곡 9번을 세상에 내놓은 후 곧 10번 교향곡 작곡에 착수했으나 완성을 보지 못한 채 폭풍우가 몰아치던 1911년 5월 18일 밤에 숨을 거두었다. 임종 직전 손가락 하나로 지휘하는 시늉을 했는데, 그의 입술에서 모차르트란 말이 두 번 새어나왔다.

영화가 절반을 넘어서면서부터 화면에 심각한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영상이 심하게 떨릴 뿐 아니라, 단속적으로 번쩍거리는 흰 빛 때문에 눈이 피곤할 정도였다. K사장이 갖은 방법을 다 썼으나 전혀 효과가 없었다. 그것은 더크 보가드의 깊은 연기는 물론 흰색과 푸른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 화면의 서정적 아름다움도 죽이고 있었다. L선배는 연신 한숨을 쉬었고, K사장은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안절부절을 못 했다.
그 영화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은 마지막 죽음의 장면이었다. 아름다움과 관능적 사랑, 죽음은 작가 아셴바흐의 삶 속에서는 서로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신성한 소년은 이 셋을 한 줄에 나란히 꿰어 그에게 내밀었고, 아셴바흐는 그것을 받음으로써 황홀한 죽음을 맞는다. 하늘과 경계가 없는 안개 낀 바다 속에 홀로 서 있는 소년을 보면서 죽음 속으로 들어가는 아셴바흐의 모습을 어떻게 영상화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갈수록 심화되어가는 화면의 반란은 차분한 감상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는데, 종내는 죽음의 이미지를 빛살처럼 투명하고 부드럽게 감싸는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의 선율조차도 반란에 합세하는 최악의 상태와 맞닥뜨렸다.

우리는 K사장의 전송을 받으며 씁쓸한 마음으로 학림을 나왔다. 거리는 벌써 어두워져 있었다. 위가 약해 기름기 있는 음식을 피해야 하는 L선배를 위해 조금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는 음식점을 찾아갔으나 이상하게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그 자리인데 엉뚱한 음식점이 있었다. 그 동안 가게가 바뀐 모양이었다. 조악한 영화를 보면서 진을 다 뺀 L선배는 지쳐 걷지도 못하겠다면서 아무 곳이나 들어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은 일진이 좋지 않은 모양이라고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근처 순두부집이었는데, 다행히도 그녀는 밥이 맛있다면서 흡족해했다.
맥주 한 병과 함께 식사를 마친 우리는 다시 학림으로 올라갔다. 내가 진토닉을 시키자 L선배는 그 술 맛본 지 꽤 오래되었다며 처연하게 말했다. 진토닉 속에 함유되어 있는 키니네 성분이 머리를 맑게 해 자주 마셨다고 한다.
젊었을 때 술을 무척이나 즐겼던 그녀는 「주신(酒神)에게 갈채를」이란 제목의 에세이에서 “인류의 위대한 발명물의 하나인 영묘한 알코올의 마력을 맛보지 못한 자는 불행한지고!”라고 쓰기까지 했다. 하지만 약해진 그녀의 몸은 언젠가부터 술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담배마저 끊은 지 오래다. 그러니까 그녀는 지금 몸의 눈치를 보며 조심조심 살고 있는 것이다.
“말러가 동성연애자였나요?”
나는 아셴바흐를 염두에 두고 물었다.
“전혀.”
그녀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난 소년의 존재를 성적 개념으로 보지 않아. 남성도 여성도 안 느껴지는 중성적인 존재라고나 할까. 말하자면 예술가가 꿈꾸는 궁극적 아름다움의 표상으로 생각하고 싶어.”
“그건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아름다움의 표상을 왜 어린 소년으로 선택했을까요?”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리스적 취향이 아니었을까?”
일리 있는 말이었다. 토마스 만이 사랑에 취한 아셴바흐의 독백을 통해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젊은 문필가 파이드로스를 끌어들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플라톤의 저서 『향연』은 사랑에 관한 대화록이다. 여기에는 소크라테스와 파이드로스를 비롯, 의사이자 자연철학자인 에뤼크시마코스, 희극시인 아리스토파네스, 비극시인 아가톤, 아가톤의 연인 파우사니아스 등이 등장하여 사랑에 대해 토론을 벌이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소년과의 사랑을 신적인 아름다움의 표상으로 찬미한다.
“난 그 영화를 처음 본 후 한동안 딸기를 먹지 못했어. 무른 딸기는 보기만 해도 눈을 돌려버렸으니까.”
“왜요?”
“생각 안 나? 소년의 뒤를 쫓던 아셴바흐가 미궁과도 같은 도시의 안쪽 골목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지쳐 무른 딸기를 사 먹잖아. 그후 바로 죽음의 장면으로 전환되거든. 그러니까 딸기는 죽음의 과일인 셈이지. 콜레라 균이 들어 있는.”
“오늘 그 영화를 보았으니 앞으로 당분간 딸기 못 잡수시겠네요.”
“지금은 무른 딸기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왜요?”
“그 사이 감성이 무디어졌는지도 모르지.”
“제 생각에는 고약한 화질 때문인 것 같은데요.”
“고맙군.”
그녀는 나직이 말했다.
“이제 머지않아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다고 생각하면 아득해져. 세기가 바뀌도록 살아 있을 줄 꿈에도 생각 못 했으니까.”
“선배 나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잖아요. 요즘 육십대는 청춘이에요.”
“한때 난 스물아홉 살까지만 살기로 맹세한 적이 있었지.”
“비정한 맹세군요.”
“아름다운 맹세지.”
“그럼 이렇게 하면 되겠네요. 아름다우면서도 비정한 맹세로. 그런데 왜 스물아홉이었지요?”
“나에게 이십대는 뭐라고 할까, 절대와 완전에 대한 과대망상적 집착으로 점철된 시절이었다고 할까. 정신이 가지고 있는 힘의 한계를 몰랐던 시절이었지. 어떤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알고 싶었고, 무엇이나 다 되어보고 싶었고, 온갖 것을 다 사랑하고 싶었으니까. 그러니까 삶의 모습은 언제나 날아오르는 자세였지.”
“별을 향해?”
“그래, 별을 향해.”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희미하게 웃었다.
“나에게 삼십대란 치욕의 시간이었어. 힘의 한계를 깨달을 수밖에 없는 시간, 온갖 가능성 대신 한 가지 확실한 것을 선택해야 하는 시간, 날아오르는 자세에서 발을 땅에 내려놓아야 하는 시간이 삼십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그런 나의 모습을 결코 용서할 수 없었어. 환상은 언제나 강한 법이니까. 환상을 만든 존재보다. 그래서 일기장과 수첩, 비망록 등을 소각하기 시작했던 거야.”
“이십대에 말입니까?”
“응.”
그녀는 손수건을 꺼내 머리를 뒤로 묶기 시작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그녀의 긴 머리는 희끗희끗했다.
“죽음에 사로잡힌 나를 구원해준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육체적인 병이었어.”
“병이라면…….”
“티비였지. 폐에 큰 구멍이 두 개씩이나 뻥 뚫려 있었는데, 그것이 의사를 무척 놀라게 했어. 폐의 상태에 대한 놀라움이라기보다 그렇게 되도록 방치한 무관심에 대한 놀라움이었지.”
“무서운 무관심이었군요.”
“그때가 스물아홉이었어.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나를 쓰러뜨린 그 병은 은총이었어. 다시 삶으로 돌아오게 했으니.”
“기분이 어땠습니까? 일기장을 태울 때.”
“일기장을 태운다는 건 나를 지우는 것이었지. 그건…….”
그녀는 어두운 천장을 응시했다.
“참 묘한 기분이었어. 고통과 희열을 동시에 느꼈으니까. 그러니까 나를 지운다는 건 고통이면서 희열이었지. 이십대에 시작한 그 작업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니…….”
“지금까지요?”
“일기 쓰는 버릇은 고질적인 병이었으니까.”
“태워야 하는 것들이 나날이 쌓여갔겠군요.”
“옛날 수유리에 살았을 땐 낙엽을 모아놓고 같이 태웠어. 마당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저문 빛 속으로 사라져가는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눈물이 고이곤 했지. 낙엽 타는 냄새가 참 좋았어. 그런데 아파트 생활을 하고부터 그런 낭만은 깡그리 없어져버렸어. 낭만은커녕 태우려면 무척 애를 먹었어. 자칫하면 집까지 태워먹으니까. 하지만 이제 태울 건 다 태웠어. 그래서 요즘은 홀가분해.”
그녀는 정말 홀가분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그림자 없는 인간이 되어버렸군요.”
“비유가 그럴듯하군.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아.”
“무슨 뜻인가요?”
“그림자를 대신하는 것들이 있으니까.”
“그게 뭔데요?”
“내가 아끼는 물건들이지.”
“어떤 물건들인데요?”
나는 긴장을 하며 물었다.
“내 손때가 묻은 음반들이라든가, 지난날 내 영혼을 송두리째 흔들었던 책이라든가, 내가 열광했던 이들의 사진이라든가.”
“전부 망자들의 것이겠군요.”
“그렇군. 베토벤도, 모차르트도, 니체도, 루도, 니진스키도, 두제도…….”
“두제라면 이탈리아 여배우?”
“연극에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마력을 상징하는 배우였지. 아, 여기 또하나 있군.”
그러면서 자신의 핸드백을 손으로 가리켰다.
“삼층에서 본 비디오 말인가요.”
나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선배의 그림자를 빌려달라고 한 셈이었군요.”
“그러니 내가 거절할 수밖에.”
“조금 이상한데요.”
“뭐가?”
“그건 선배의 손때가 묻은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이 속에 중요한 게 들어 있거든.”
“뭐가 들어 있는데요?”
“행복한 죽음.”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4



그날 밤 여느 때처럼 L선배의 길 안내자가 된 나는 우리가 내려야 할 정류소에서 정확하게 내렸다. 그녀는 과일을 사야 한다면서 길모퉁이에 있는 가게로 들어갔다. 조금 후 봉지 두 개를 들고 나왔는데, 그중의 하나를 나에게 내밀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딸기였다.
“선배 것도 딸기예요?”
내가 궁금한 표정으로 묻자 그녀는 피식 웃었다.
“물론이지. 보여줄까?”
“네.”
“자, 봐.”
그녀가 벌린 봉지 속에는 잘 익은 딸기가 가득 들어 있었다.
“집에 들어가서 맛있게 먹을 거야. 그럼, 다음에 봐.”
그녀는 손을 흔들었다. 나는 그녀가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는지 알지 못한다. 집 근처에서 헤어질 때는 등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택시를 잡기 위해 길가에 섰다. 늦은 시간이라 길은 텅 비어 있었다. 엷은 안개가 흐르고 있는 길 건너에 포장마차가 보였다. 노천 테이블에는 두 남자가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흐린 별들이 드문드문 떠 있었다. 택시가 좀처럼 오지 않았다. 남자들이 노천 테이블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나는 포장마차를 향해 텅 빈 길을 가로질렀다.
노천 테이블에 앉은 나는 소주와 오징어 데친 것을 시켰다. 첫잔이 기가 막히게 달았다. 주택가에서 새어나오는 불빛들이 안개와 섞이면서 흐려지고 있었다. 어둠에 파인 길 위로 긴 그림자를 드리운 채 가만히 서 있는 검은 나무들은 가끔씩 잎사귀를 흔들곤 했는데, 바람은 씁쓸한 회양목 냄새를 떨구고는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나는 소주를 조금씩 조금씩 마시면서 그녀의 집 안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램프등의 어스름한 빛과 함께 오래된 책들과 구식 오디오, 낡은 LP판들이 아련히 떠올랐다. 벽과 천장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문조차도 없었다. 창에는 두꺼운 얼음이 끼여 있었고, 그곳으로 들어가는 길은 지워져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은 섬이기도 했고, 은백양 숲으로 둘러싸인 시간의 내부이기도 했다.
눈을 감았다. 오래된 책들 속에서 그림자 없는 영혼들이 소리없이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독특한 걸음걸이로 방 안을 거닐었는데, 마주 서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도 있었다. 한 남자가 오래된 책 한 권을 집어들었다. 중키라고 하기엔 약간 작고, 연갈색 피부에 수염이 없었으며, 머리는 체구에 비해 큰 편이었다. 뒤쪽으로 단정히 빗어넘긴 머리카락은 정수리 근처에서 성깃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남자는 아셴바흐였다. 훤칠한 이마는 주름이 많이 져서 흉터가 난 것처럼 보였고, 뺨 부분은 야위어 움푹 패어 있었다. 그는 책을 두 손에 든 채 위를 올려다보았다. 위에는 천장 대신 하늘이 있었다. 그러니까 하늘 천장이었는데, 수많은 별들이 영롱한 빛을 발하며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높이 쳐든 그의 머리가 미세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별을 찾거나, 아니면 별들의 흐름을 좇는 모양이었다. 별빛에 물든 그의 얼굴은 푸르스름했다. 잠시 후 움직임을 멈추면서 스르르 눈을 감았다. 별들의 냄새를 맡는 것 같았다. 이윽고 눈을 뜬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램프등이 있는 탁자로 느릿느릿 걸어가 앉았다. 그리고 양복 윗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 쓴 후 책을 펼쳤다.

광활한 바다를 향해 걷고 있는 소년은 주위를 살피려는 듯 멈춰 섰다. 그리고 두 손을 허리에 짚고는 상체를 우아하게 돌리면서 해변을 보았다. 거기에는 소년을 지켜보고 있던 아셴바흐가 있었다. 머리를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소년의 움직임을 좇고 있었던 그는 사랑하는 이의 시선을 맞으려는 듯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가 가슴 위로 툭 떨어져 두 눈은 치켜 뜨는 형상이 되었다. 바다 너머 머나먼 곳에서 창백하고 사랑스러운 영혼의 인도자가 그에게 방긋 웃으며 눈짓하는 것을 느꼈다.

어슴푸레한 램프등 아래서 자신의 죽음을 읽고 있는 아셴바흐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슬픔과 기쁨이 뒤섞인 미소였다. 누군가 그에게로 다가왔다. 오래된 책의 주인이었다. 긴 머리를 뒤로 묶은 그녀는 하얀 쟁반을 탁자 위에 놓은 후 그의 곁에 살며시 앉았다. 쟁반에는 신선한 딸기가 탐스럽게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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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사이트에서 퍼온 것입니다. 다시 복사해서 올린 이유는 사이트가 갑자기 정리되는 경우가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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