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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기나는방/글향기

[이충걸] 나이가 든다는 것 -

나이가 든다는 것

홍대 앞 지하철 역에서였습니다. 젊음이라는 추상명사가 물질화 되어 들큰한 침 한 양동이

처럼, 뜨거운 식용유처럼 육신 위에 질펀하게 쏟아져 내리는 종족들이 보도 위에, 술집 안

에, 커피 집 속에 추수 후 곡간처럼 범람하는 그곳 말입니다. 서른이 훨씬 넘은 처지인 채

어디 카바레나 클럽 같은, 나이에 어울리는 장소가 아니라 언감생심, 그 젊디나 젊은 땅에

약속이 있었던 나는 지하도를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나른하고도 기구절창한 여고음

(女高音)목청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이제 스물 여섯이네. 완전히 쪽나갔지 뭐"


"아이 씨 노친네야. 가까이 오지 마. 징그럽다 징그러워"



새로 산 구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덜그럭거리는 기분으로 계단을 오르던 나는 기습받은

듯했습니다. 나는 급한 속도로 고개를 외로 젖히고, 그 목청의 주인을 찾았습니다. 젊디나

젊은 여자애들 둘.


'쪽 나갔다'는 참혹한 대사는 팥죽색 립스틱과 자주색 립스틱을 공들여 트윈으로 바른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왔을 터입니다. 갑자기, 익숙지 않았던 분노가 재채기처럼 터져 버리고, 내

나이든 마음속에는 '자빠졌네, 진짜', 그 여자애 못지 않은 광포한 대사가 작렬했습니다. 히

스테리가 아니라곤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짜증을 그대로 놓아둔 채 약속장소로 15초쯤 걷

다보니 신경질이 차지하고 있던 그 자리에 씁쓸하고 쓸쓸한 기운이 겨울서리처럼 내려앉았

습니다. 나이 스물 여섯이 징그럽다고 진저리를 칠만큼 그렇게, 시들고, 치사하고, 구차하고,

부황한 그런 나이일까? 그럼 걔들은 징그럽다 못해 소름끼치는 어른 에이리언들하곤 어떻게

한 하늘을 이고 살 수나 있지? 머리 나쁜 의문에 성급스러워하면서 걷는 걸음은 참 헛전헛

전했습니다.




그날 제가 서른이 넘은 '주제에' 가 앉았던 그 카페는 타는 불에 기름이었습니다. 제 옆 테

이블에서 남자애, 여자 애들이 기름 위를 떠도는 탐조등처럼 번들거리는 눈동자로 앉아 '몇

년 생이세요?' 묻고 대답하는 소릴 수도 없이 들었으니까요. 나이보다 더 어려 보인다고 말

하면 연구개가 드러나도록 좋아하고,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인다면, 삼대가 멸시받기라도 한

것처럼 눈썹 사이에 온천마크를 그려 보이지요… 혼자 보기 아깝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건 진정 뭘까요? 이런 조로증은 두려울 정도입니다. 서른이

넘으면 다들 실성하기라도 하나요? 나이가 든다는 건 모든 게 박탈당하고 마는 레테르 같은

걸까요? 스물 다섯이었다가 스물 여섯이 되면 팽팽싱싱하던 피부가 갑자기 쪼글쪼글 모과로

둔갑하기로 하나요? 스물 다섯에 지구에 살던 사람이 스물 여섯이 되면 갑자기 백화점 하나

없는 다른 행성에 가서 살기라도 한답니까?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게 간통 한번 저지르

는 것처럼 그렇게 부도덕한 일인가요? 스물 여섯의 나이는 과연 어떤 분량만큼 채워져 있는

걸까요? 스물 여섯 해 동안 들은 것? 본 것? 겪은 것?… 나이가 벼슬은 아닐진대 나이 만한

절대가 없던 시골의 촌로같은 이야긴 저도 싫습니다. 젊다는 게 뭐죠? 한두 살 더 먹은 이

들 앞에서 '들어오지 마시오'라는 휘장을 늘어뜨린 채 '노땅' '노인네'라고, 어감이 우습지도

않은 헤드라인을 붙여주고 업수이 여기는 게 젊음인가요? 직접적인 것이 그럴 듯하다는 구

실로 불손한 것이 젊음인가요? 골백번 죽었다 깨도 해소되지 않을 욕구불만을 구실로 만취

해 거리를 개판으로 만들어 버리는 데 젊음인가요? 지나가는 여자에게 수작을 걸다가 거절

당한 쪽팔림을 상쇄하기 위해 급히 만들어 보이는 웃음이 젊음인가요? 그런 젊음은 단지 내

장을 싼 자루에 불과합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개처럼 밟아버릴 그런 젊음…그렇다면 그런

젊음을 저는 조롱하겠습니다.




전 말입니다, 나이가 든다는 건, 그건 지혜를 더하는 길이기도 하다는 걸 알아요. 지난해엔

오늘 읽었던 '시간의 역사'를 안 읽어 시간이 과거로 흐르기도 한다는 걸 몰랐어요. 어제 '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본 것으로 상대의 생사여탈을 좌지우지하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 존

중해주는 사랑이 더 아름답다는, 작년에 알지 못했던 진실을 더할 수 있었죠. 지난달에 알

게 된 친구는 '나무하고 이야기할 수 없거든 나하고 말할 생각 말라'고 했지요. 물론 반향

없는 적막강산이었지만 그래서 적어도 나무한테 말을 걸어 보긴 했잖아요? 한 해 전엔 나무

한테 말을 건다는 건 장난으로도 생각 못했는걸요. 골 때리는 소리로 들리나요?



그래요. 분명 나이를 먹을수록 더 치욕스러워진다는 자의식도 가끔 있지요. 언젠가 제가 알

던 방송작가의 방백이 기억납니다. "나이가 든다는 건…참…쓸쓸해…" 하지만 내가 아는 연

극배우 한 분은 또 그러셨지요. "난 내 나이를 사랑한다. 난 언제나 그 나이가 가장 사랑스

럽다. 20대가 그립지 않냐고? 아니, 절대로" 그는 나이를 급진적으로 사용하고 있었어요.



전 젊음이 가진 관심을 사랑합니다. 그건 아직도 의식 속에 사춘기를 간직하고 있는 저의

관심이기도 한 걸요. 베이컨, 우유로 만드는 아침식사, 바겐세일 따위의 관심, 젊음이라는

찻주전자 속에서 열혈하게 끓어오르는 가능성, 황음에 대한 욕구, 구역질처럼 치밀어 오르

는 방기(放棄)… 그러나 나이에 대한 무가치한 조급증은 아마 스스로 도달해야할 때라고 판

단하는 지점보다 더 빨리 당신들을 몰고 갈 겁니다. 육신의 부패로, 정신의 퇴락으로… 그

날 홍대 앞의 그 젊음 들은 나이 먹는 것이 두려운 그들의 공황감을 반영하는 텅 빈 스크린

같았습니다.


스물 여섯 나이가 징그러운 당신들은 무엇으로, 어디에 도달하고 싶으신가요? 진정 젊음을

표현하고 싶다면 나이로 말고 사상으로 하십시오. 테스토스테론의 양이 아니라 가치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십시오… 젊음을 자랑하지 말고 사랑하십시오.






<소개> 이충걸 - 남성 잡지 GQ KOREA 의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