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공지영, 김영하, 신경숙 등 유명 문인들의 서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소설가, 시인 등 6명의 집필
공간을 찾아, 이들의 추억이 담긴 책과 애장품을 생생한 사진으로 만나본다.
“천국은
다만 거대한 도서관이 아니겠는가.” 가스통
바슐라르의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책을 유달리 좋아하고 서재에도 관심이 많은 ‘책벌레 족속’일 것이다. 최근 출간된 <작가의
방>(서해문집)은 중견 작가 이문열부터 재기발랄한 젊은 소설가 김영하에 이르기까지 문인 6명의 서재와 집필실을 소개해 책벌레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문학
전문기자인 박래부 한국일보 수석논설위원이 인터뷰를 맡아 작가들이 들려주는 책 이야기를 소개했고, <출판저널> 박신우 기자가
문인들의 내밀한 작업 공간을 속속들이 사진에 담았다. 사진으로 표현할 수 없는 서재의 전체적인 모습은 안희원의 화사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옮겨 책 보는 재미를 극대화했다.
천장까지 책이 닿아 맨 꼭대기 책을 꺼내려면 사다리를 타야 하는
이문열의 ‘부악문원’ 서재, 책상 뒤에 예수와 마리아 그림을 붙여 두고 창작의 ‘기’를 받는다는 공지영의 아기자기한 집필실, 중국제 앤티크
책상과 라이카 카메라, 직접 그린 그림이 어우러진 김영하의 연구실, 무려 세 곳에 저마다 다른 분위기로 운용되는 김용택의 서재, 다소곳한
아프리카 여인상이 오도카니 앉아있는 신경숙의 집필실 등 평소 공개되지 않았던 작가의 공간을 두루 돌아볼 수 있다.
서재
사진 중 20여 점은 사간동 유갤러리(02-733-2798)에서 6월 6일까지 열리는 사진전에서 감상할 수 있다. 한편
서울국제도서전에서도 책 출간과 관련한 행사가 예정되어 있다. 오는 6일 오후 4시 반부터 코엑스 도서전 행사장 내에서 열리는 ‘저자와 사진 한
장’ 에서는, 선착순 100명에게 저자와 사진도 찍고 사인북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신청표를 접수받아 순서대로
마감하므로, 행사에 참여하려는 사람은 전시장에 일찌감치 방문하는 것이 좋다.
<작가의
방>에 수록된 서재 사진 중 일부를 미리 감상해본다.
노안이 온 탓에 안경이 없으면 글을 쓰기 어렵다. 중견 문인인 그도 원고지 대신 이제는 노트북을 사용한다.
등신대를 훌쩍 넘는 크기의 대형 사진이 벽 한 쪽에 걸려 있다.
네 개의 방을 서재로 사용하는 이문열의 이천 서재. 뾰족한 지붕 부근에까지 책이 가득 차 있다. 높은
서가의 책을 꺼내는 데 요긴한 사다리가 인상 깊다.
이문열은 집필할 때 서북쪽의 작은 방을 쓴다. 가장 외진 방을 골라, 창문도 없이 제일 어두운 지점에 책상을 배치해
놓고 수도승처럼 면벽한 채, 큰 의자 위에 앉아 한 다리에 다른 다리를 올려놓은 책상다리 자세로 글을
쓴다.
20년 전 이천에 뿌리를 내린 이문열은 봄이 오면
창밖으로 보이는 뜰에 나무를 심고 푸른 빛을 즐긴다. (왼쪽) 틈틈이 서예를 즐기는 그의 서재에는 늘 수십
자루의 붓이 단정히 걸려 있다.(오른쪽)
공지영의 집필실. 글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햇살이 환히 들어오는 창가 쪽 긴 의자에 폭신한 양털
이불을 깔고 앉아 이 책, 저 책을 빠른 속도로 읽는다. 집필 탁자 뒤 나무 문에는, 작가가 창작의 '기'를 받는다는 예수 그림과
마리아 그림이 아래 위로 걸려 있다.
공지영의 서재를 장식하는 애장품들. 두 장의 사진에 등장하는 조각은 카프카의 전신상과 두상이다. 각기 다른 판본인
<마의 산>, 카툰집 <파리의 스노우캣> 등이 눈에 띈다.
시를 쓴 부채와 여행할 때 찍은 사진 등이 책꽂이를 아기자기하게 꾸미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마련된 김영하의 4평짜리 연구실. 액자 속에 걸린 사진을 보고 있으니 마치 창을 통해 그의
공간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박래부 씨는 김영하의 공간을 가리켜 “고래
뱃속처럼 어두컴컴하다”고 했다. 하나 있는 창을 검은 천으로 가려 자연광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군더더기 없고 엄격한 몬드리안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김영하의 서재 풍경. 연륜이 묻어나는 중국제 앤티크 책상은
인터넷 경매 사이트 '이베이'에서 저렴하게 구입했다.
'이베이' 마니아인 김영하의 또 다른 수확물인 라이카 카메라. 1백만 원 정도에 구입했다고 한다.
책이 워낙 많다보니 매번 옮기기가 어려워 '만년 2학년 1반 담임'이라는 시인 김용택의 책더미. 책꽂이에
들어가지 못한 책들이 복도 쪽 벽을 따라 모로 누웠다.
김용택의 서재는 섬진강가 근처의 작가 생가, 직장인 임실군 덕치초등학교, 전주의 아파트에 분산되어
있다.
밝고 아늑한 신경숙의 서재. 왼편 창가에 무릎을 감싸 안은 아프리카 여인 조각상이 눈에 띈다.
집필 책상 뒤로는 긴 칸막이가 있고, 그 공간은 다시 둘로 나뉜다. 한쪽에 벽시계와 통기타가 있다. 신경숙은 이
공간에서 가끔 낮잠을 자거나 기타를 친다.
“노래는
못하지만, 혼자 우물우물해요. 옛날엔 기타를 열심히 배웠는데, 하하.”
신경숙의 서재로 들어가기 전 계단 사이에도 책장이 있다. 천장까지 책이 닿는다. 주로 외국문학 책이 꽂혀 있다.
부산에 살고 있는 시인 강은교의 서재. 오래된 책들에 둘러싸여, 상념에 잠긴다.
강은교는 뒷산을 마주한 북쪽 서재 창가, 창턱에 앉아 종종 바깥을 내다본다. 그는 이곳을 '은포'라 부른다.
'은교의 포구'란 뜻이다. "삶의 쓸쓸함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삶의 모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