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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기나는방/글향기

[북리뷰] 펌/ 쟝 쟈크 상뻬의 '얼굴 빨개지는 아이' -

 

 

 

 

 

 

<'태지매니아'의 '복숭아비누'님의 글을 퍼왔습니다 ->

 

 



산뜻한 그림과, 익살스런 유머로 감싼 세상 관조, 간결한 글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프랑스 삽화가 장자끄 상뻬..
위의 삽화도 제가 좋아하는 그림중 하나에요..(저 여잔 복두 많지....^^)


좀머씨 이야기, 꼬마 니꼴라의 삽화로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오늘밤엔..예전에 친구에게서 받은 [얼굴 빨개지는 아이]란 책을 다시 한번 펼치고 싶어요..
1969년작으로 쌍뻬 할아버지가 글,그림 모두 쓰신 이책을..
그때 받은 감동으로 저의 소중한 친구들 책꽂이에도 한권씩은 다 꽂아놨다는...^^

귀여운 삽화랑 함께 보셔야 되는데....아쉽다^^
(앗..다 보셨다구요..-.-보신분들껜 상뻬의 1995년작 『라울 따뷔랭』을 추천할께요~*)

그럼 [얼굴 빨개지는 아이] 첫장 넘깁니다....



...........................................&




꼬마 마르슬랭 까이유는 다른 많은 아이들처럼 아주 행복한 아이로 지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마르슬랭은 어떤 이상한 병에 걸려 있었다. 얼굴이 빨개지는 병이었다.
그 아이는 그래, 혹은 아니, 라는 말 한마디를 할 때에도 쉽게 얼굴이 빨개졌다.


물론 여러분은,
그 아이만 얼굴이 빨개지는 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얼굴을 쉽게 붉힌다고 얘기할 것이다.
아이들이란 겁을 먹거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대개 얼굴이 빨개지게 마련이라고.
그런데 마르슬랭에게 있어 심각한 문제는, 아무런 이유없이 얼굴이 빨개진다는 것이었다.


"내 얼굴이 빨개지고 있는 것 같아..."
"정말 빨갛네...!"


마르슬랭은 그가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주로 빨개졌다.


"넌 부끄럽지도 않니?"
"부끄러워요. 하지만 얼굴이 빨개지지 않는걸요."


반대로 당연히 얼굴을 붉혀야 할 순간에는 빨개지지 않았고......


"난 왜 이렇게 얼굴이 빨개지는 걸까?"
"얼굴이 왜 빨개지는 건지 정말 알고 싶어."


한마디로 마르슬랭 까이유는 꽤 복잡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몇 가지 질문들을, 아니 그보다는 항상 똑같은 내용의 질문 하나를 던지곤 했다.


왜 나는 얼굴이 빨개지는 걸까?


"나는 숲속의 요정이야. 내가 이 요술지팡이로 너의 병을 낫게 해줄게..."
"고마워요. 요정님. 저를 낫게 해주셔서 고마워요.
그런데 지금 제 얼굴이 빨개지는 건 너무 기뻐서 그런 거예요."


물론 여러분들에게,
숲속의 요정이 마르슬랭의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거나,
또는 현대적인 대도시에 사는 어떤 솜씨 좋은 의사가 이 희귀한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줄 수도 있다.
그러나 마르슬랭이 사는 동네에는 요정이 없었다. 게다가 현대적인 대도시에는 많은 의사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의 병을 치료해줄 수 있을 만큼 솜씨가 뛰어나지 못했다.


"난 네 얼굴이 왜 빨개지는 지 알고 있단다. 그건 까이유라는 네이름이 붉은 색 조약돌이란 뜻이기때문이야!"
"그치만 전 까이유란 이름이 좋아요. 예쁘잖아요!"


마르슬랭은 계속 빨개지는 얼굴로 다녀야 했다.
물론, 그가 정말 얼굴이 빨개져야 할 때를 빼놓고는......
그의 다른 모든 친구들은 똑같은 일이 자기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어
얼굴이 빨개지지만, 마르슬랭은 겉으로는 어떤 동요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부웅 부-우-웅
부왕 부왕
칙칙 폭폭 칙칙 폭폭
꾸륵 꼬르륵


조금씩 마르슬랭은 외톨이가 되어 갔다.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기마전 놀이나 기차 놀이, 비행기 놀이,
잠수함 놀이와 같은 아주 재미있는 놀이를 하며 뛰어다니는 그의 꼬마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게 되었다.


"저 꼬마 아이 얼굴이 얼마나 빨간지 보셨어요?"
"저 아이는 병에 걸린 게 틀림없어요."
"야, 정말 빨갛다!"
"어쩌면 그렇게 빨갛니, 마르슬랭?"
"빨개!.. 얼굴이 너무 빨개!"


"내가 빨갛다구? 잠꼬대 같은 소리!"

왜냐하면,
아이들이 자기의 얼굴 색깔에 대해 한마디씩 하는 것이 마르슬랭에게는 점점 견디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난 새빨간 비행기. 야 정말 재밌다!"
그래서 그는 혼자 노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마르슬랭은 바닷가에서 보내는 여름 바캉스 철을 항상 그리워했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 얼굴이 모두 함께 빨개졌고,
사람들은 빨개진 얼굴에 대해 만족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또 모든 사람들이 추위로 얼굴이 새파래지는 한겨울에,
혼자 계절에 맞지 않는 이상한 얼굴색을 하고 다니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마르슬랭은 {그렇게까지} 불행하지는 않았고,
단지 자신이 어떻게, 언제 그리고 왜 얼굴이 빨개지는지를 궁금하게 여겼을 뿐이었다.
이런 궁금증은 아주 오랫동안 그를 잠 못 들게 하곤 했다.




어느 날, 마르슬랭은 여느 때처럼 자주 얼굴이 빨개지면서 집으로 돌아오다가


"아앗츄우!"


계단에서 재채기 소리 비슷한 어떤 소리를 들었다......


"애~츄!"
"누가 감기에 걸렸나봐!"
"으아취!"


2층에 다다랐을 때, 마르슬랭은 또 한 번 그 재채기 소리를 들었고, 3층에서도 다시 그 소리를 들었다.


"에~츔!"


그런데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에서, 마르슬랭은 한 꼬마 남자 아이를 발견했다.
바로 그 아이가 그런 재채기 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너 감기 걸렸니 하고 마르슬랭이 물어 보았다.


"나?.... 아니, 왜?"


그 아이의 이름은 르네 라토였고, 마르슬랭의 새 이웃이었다.


"헥~~츄!"
"아아아아아아...앗~츄!"


꼬마 르네 라토는 아주 매력적인 아이였고, 우아한 바이얼린 연주자였으며, 훌륭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르네는 갓난아이 때부터 아주 희한한 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에~취!"
"감기조심해야 한다 꼬마야!"


그것은 전혀 감기 기운이 없는데도 자꾸만 재채기를 하는 병이었다.


르네는 마르슬랭에게, 이 귀찮은 재채기가 자기의 인생을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
(어느날 저녁엔가 브루시니 쉬르 오르즈 마을의 뵈바르쉬 부인 집에서 열린 매우 수준 높은 음악회에서,
꽤 유명한 사람들과 함께 연주를 했을 때에도 그는 재채기를 하지 않았던가)
이 일이 한때 사람들 사이에 얘깃거리가 된 적도 있었노라고 얘기했다.


"에~취!"


그후, 르네 라토는 혼자 강가를 산책할 때에만 겨우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잔잔히 흐르는 강물과 새들의 부드러운 지저귐만이 그의 깊은 고통을 위로해주곤 하였다.


"난 강의 착한 요정이란다. 자, 나의 마법으로 너의 재채기를 고쳐주마!"
"꿈만 같아요!"


물론 여러분들에게, 착한 마음씨를 지닌 강의 요정이 나타나서 그의 병을 낫게 해주었다고는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마을에는 착한 요정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렇다고 나쁜 요정이 있는 건 아니었다).
혹은 대도시에 사는 어떤 훌륭한 의사가 조그만 알약들로 그의 병을 완치시켰다고도 얘기하지 않겠다.
아니, 아무도 그의 병을 치료하지 못했다. 요정도, 훌륭한 의사도.......


"내가 너의 병을 고쳐줄게. 그렇게 재채기하는 것은 아주 신경쓰이는 일이지. 주위를 시끄럽게 만들거든"
"에~쵸!"
"알지 모르겠지만, 재채기하는 건 아주 귀찮은 일이야! 어, 근데 넌 왜 그렇게 얼굴이 빨개지니?"
"내 얼굴이 빨갛다구? 너한테는 설명해 줄게."


하지만 르네는 {그렇게까지} 불행하지는 않았다.
단지 코가 근질거렸을 뿐이고, 그것이 그를 자꾸 신경쓰이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마르슬랭의 얼굴이 빨개진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애~취!...미안해..."
"아니, 괜찮아! 난 네가 재채기 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


그들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누었다.
그날 밤 두 꼬마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고, 서로 만나게 된 것을 아주 기뻐했다.


"그 마르슬랭 까이유라는 애, 아주 착한 것 같아.
가끔씩 아주 멋진 색깔의 얼굴로 돌아오기도 하고. 아취!"

"어 재채기하는 소리가 들려. 분명히 르네 라토일거야.
한밤중에 이렇게 친구의 목소리를 듣다니, 너무 좋아..."

"자, 마르슬랭 까이유 씨를 위해 제가 한곡 연주해 드리겠습니다.
곡명은 제가 작곡한 [빨강의 콘체르토]......"

"나한테는 너무 현대적인 것 같아!"
"에~츄!"


그들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어 갔다. 르네는 마르슬랭을 위해 바이올린을 연주해 주곤 하였다.


"중요한 건 말야. 걸리지 않게 높이 뛰어넘어야 한다는 거야."
"애~쵸!"
"브라보! 오른쪽 다리! 오른쪽 다리를 들어야지!"


그리고 운동에 타고난 소질이 있는 마르슬랭은, 운동 선수가 실력을 쌓고 쉽게 좌절하지 않기 위해
몰라서는 안될 몇 가지 기술들을 아낌없이 르네에게 가르쳐 주었다.


"르네 보았니?"
"곧 올거야."
"아츄우!"


마르슬랭은 어디든 도착하기만 하면, 곧바로 르네가 있는지 없는지를 물었다.


"마르슬랭 보았니?"
"금방 올거야."


마찬가지로, 꼬마 라토 역시 항상 꼬마 까이유를 찾았다.


그들은 목요일과 일요일만 되면, 하루종일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다.


"아앗초!"
"날 찾지 못할걸..."
"아에아쵸!"
"에~취"
"아...앗....츄우!"


그들은 함께 신나는 나날을 보냈다.


학예회가 있던 그날, 아마도 이 세상에 마르슬랭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친구가 멋지게 바이올린을 연주한 후 정말로 아주 좋은 반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정말 멋진 연주야."
"에~츄!"


또 르네는 마르슬랭이 부드러운 어조로 또박또박 훌륭하게 시를 읊어 내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기쁨을 느꼈다.


"하늘은 온통 파란색
바다도 푸른색
내가 이 군청색 하늘에 그리고
파스텔톤 청색 바다에 감탄하는 것은
그렇게 푸르른 청색이 바로
내가 좋아하는 색깔이기 때문..."


"아 아아 앗~취!"


그들은 정말로 좋은 친구였다.그들은 짓궂은 장난을 하며 놀기도 했지만,
"에츄!!"
또 전혀 놀지 않고도, 전혀 말하지 않고도 같이 있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함께 있으면서 전혀 지루한 줄 몰랐기 때문이다.



"황달입니다. 전혀 감기에 걸린 건 아니구요..."
"이 아이는 한번도 감기에 걸린 적이 없습니다."
"으~취"
"내 모습이 웃기지. 아주 노랗고."
"그래. 이상해"


르네가 황달에 걸렸을 때, 마르스랭은 그의 곁에 있어 주었다.
그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노랗게 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내 모습이 웃기지. 아주 빨갛고..."
"항상 빨간색이잖아. 알면서, 뭘..."


그리고 마르슬랭이 홍역을 앓았을 때,
르네 역시 이 병을 앓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 친구 곁에 있을 수 있었다.


"아츄......앗츄우!"
"얼굴이 아주 멋있어졌는데!"
"응.. 아주 더웠었어!"


마르슬랭은 감기에 걸릴 때마다 그의 친구처럼 기침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흡족해 했다.
그리고 르네 역시 햇볕을 몹시 쬔 어느날,
그의 친구가 가끔씩 그러는 것처럼 얼굴이 빨개져 버린 것에 아주 행복해 한 적이 있었다.


"아~취!"
"커브 돌기 전에 빵빵 울려야 해!"
"늦게 돌아오게 되면, 우리가 너희를 알아 볼 수 있도록 불을 켜도 와야 해..."
"사람들이 쟤들을 잘 보고 다녀야 할텐데."


둘은 정말로 좋은 친구였다.




그러나 (이 글자는 좀더 까만색이다. 왜냐하면, 이어질 이야기들이 조금은 슬픈 것이기 때문이다.)


"르네의 재채기 소리가 들리지 않아. 아픈 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어느날 마르슬랭은 할아버지댁에서 일주일 정도 방학을 보낸 후,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친구 르네의 집으로 뛰어올라갔다.


"얘가 지푸라기를 가지고 뭐하는 거지?"


르네네 집 문 앞에는 그런데 이상한 지푸라기들이 널려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르네 있어요?"
"르네라니?"
"르네 라토요. 바이올린을 아주 잘 켜는 제 친구인데요..."
"그런 애가 없어서 다행이다. 왜냐하면 나는 바이올린은...."


그리고는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문을 열어 주는 것이었다.
그는 그릇들로 가득찬 상자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말로 감정이 복받쳐 올라 얼굴이 빨개졌다!
르네 가족은 이사를 가고 없었던 것이다.


마르슬랭은 정신이 나간 아이처럼 계단을 뛰어내려왔다! 2층과 3층 사이 계단에서는 넘어지기까지 하면서.


"르네 라토가 떠났어요!"
"무슨 일이니? 아, 그래 르네...! 그런데 르네가 너에게 편지와 자기 새 주소를 남겨 놓았단다."


그리고는 엉엉 울며 집에 왔다.


"자 아빠에게 물어보자꾸나... 여보, 앙리. 라토씨네 아이의 편지를 어디다 두었는지아세요?"

"응, 아니 잠깐 기다려봐, 여보. 당시은 내가 일하고 있는 중이거 보이지!
당신과 마르슬랭, 둘 다 내가 일하고 있는 거 알고 있잖아...항상 똑같다니까!
나도 정말 그 편지를 찾고 싶어. 정말로! 차라리 내 대신 이걸 좀 해줘 봐! 대신!
더 바라지도 않을 테니까! 당신에겐 지금 내가 놀고 있는 걸로 보이겠지."

"화내지 말아요. 앙리. 그냥 물어본 것 뿐이니까. 조금 있다가 찾아보면 되잖아요."


그러나 여러분은 부모들이란 어떤 사람들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부모들은 항상해야할 일들이 쌓여 있고, 항상 시간에 쫓긴다......


"엄마, 편지는요?"
"아 그래 내가 그 편지를 찾아줄게!"
"아빠, 편지는요?"
"또 너니? 얘야. 아빠가 일하고 있는 거 보이지 않니. 편지, 아, 편지.
아빠가 그거 찾게 되면 당장 너에게 건네 줄게."


가족들은 오랫동안 르네가 남기고 간 편지와 주소를 찾아보았다.


...........................


시간은 흘러갔고, 마르슬랭은 다른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손가락으로 휘파람을 불 줄 아는 파트리스 르콕.


"너희들 뭘 만들고 있는 거지?"
"곧 알게 될 거야....곧 알게 될 거야."
조립에 대단한 취미가 있으며 또 무엇이든 어떻게 해서든 만들어내는 쌍둥이 필리파르 형제.


"오빠! 오빠! 오빠가 나한테 어떻게 했는지 너 모르지."
"걔가 나한테 어떻게 했는지 모를거다!"
끊임없이 말다툼을 하는 폴 발라프루아와 그의 여동생 카트린.


"걱정할 거없어. 애들이 널 치면 넌 막으라구. 겁 먹으면 안돼. 진짜야. 이건..."
"겁 먹으면 안된다구. 걔들이 널 덮치면 우리가 바로 달려올 테니까."
운동을 좋아하고 몸집이 크며, 진한 우정을 가진 로베르와 프레데릭 라조니 형제.


"안녕하신가, 친구?"
그리고 정말 웃기고, 뭐든지 잘하며, 여우처럼 꾀가 많은 롤랑 브라코.


물론 로제 리보두도 빼놓을 수 없는데.


"너한테 한 번 이야기 했었지만, 나에겐 아주 근사한 친구가 있었어."
"아, 그래 트럼펫을 연주한다는 애 말하는 거지!"
"아니, 트럼펫이 아니라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애지!"
"그래 아 , 맞아! 바이올린 그리고 걔는 아무 데나 침을 뱉었지. 그래 생각나..."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걔는 재채기를 하는 애야. 넌 정말 웃기는 애야. 리보두"
붉은 머리에 안경을 끼고, 항상 주의가 산만한 아이였다.


마르슬랭은 르네 라토를 잊지 않았고 자주 그를 생각했으며 매번 그의 소식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
보아야지 하고 다짐했다. 하지만 어린 아이 시절엔 하루하루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흘러가 버린다.
한 달 한 달도 마찬가지이고......


한 해 한 해도 마찬가지이다. 마르슬랭은 나이를 먹어갔다. 그는 여전히 얼굴을 붉혔다.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는 항상 조금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다녔다.
어느덧 어엿한 어른이 되었지만 변함이 없었다.


"조금전 사무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완전히 빨간색이었어... 이렇게 빨개지는 건 정말 우스운 일인데..."
"전화 온 데 있어요?"
"네.. 랏플리씨와 로시뇰씨, 로베르 프티씨, 프티브롤씨, 바루씨, 구비옹 부인, 한서마이어씨,
상페라미레스씨, 페트루스키 변호사님, 파를르판 부뤼씨, 스미스씨, 사비냑씩, 알렉스 그랄씨,
브라움 베르그씨, 파나니기씨, 장 씨, 이분들에게 전화해주셔야 해요."


여기저기에서 전화가 걸려오고.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비행기와 엘리베이터도 타고 다니는
그는 모든 사람들이 뛰어다니는 대도시에 살게 되었고, 그도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뛰어다녔다.


어느 날 그는 비를 맞으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약속 시간 때문에 몹시 초조해 하고 있었는데.


"에~취!"


9시 15분에는 라르슈씨와 9시 45분에는 푸르셰씨, 10시 15분에는 리폴랭씨, 10시 45분에는
베르니스씨, 11시 15분에는 브라운 스미스씨 그리고 11시 45분에는 파르시팔씨와 각각 약속이 있었다.


"이익취!"
"저 사람 감기에 걸렸군요."
"으이취!"


그는 감기에 걸린 불쌍한 한 남자가 끊임없이 기침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으~ 취!"
"대단한 감기에 걸리셨군요."
"저요? 아닌데요. 왜 그러시죠?"


그는 그 감기 환자를 쳐다보았다.


그리고(이 글자가 왜 분홍색으로 씌어졌는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까이유!"
"라토!"


그는 바로 라토였다.


무척 노력해보았지만, 두 친구가 느꼈을 기쁨을 여러분에게 설명하기란 내겐 도저히 역부족이다.


"마르슬랭! 야 자네 하나도 안 변했는데!"
"에에취!"
"자네도 그대로야."


"이것봐 마르스랭! 자네 아직도 얼굴이 빨개지나?"
"응 약간... 아주 약간... 그런데 자네는 여전히 재채기를 하나?"
"응, 가끔씩..."
"에취!"
"그냥 맘 놓고 해."


르네 라토는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수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얼마나 실력이 늘었는지 좀 들어볼까?"
"에~취!"


친구의 간청에 못 이겨, 르네는 바이올린은 연주해 주었다.


"자네는 여전히 그렇게 잘 뛰어 넘나?"
"보라구!"
"대단한데!"
"아니야 오른쪽 발을 제대로 들지 못했어."


그리고 이번에는 마르슬랭이, 세월이 아직 그의 타고난 운동 신경을 무디게 하지 않았음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아예 달리기 경주까지 해보았다.


"굉장한데! 그동안 실력이 아주 많이 늘었어!"
"자네도야!"


마르슬랭이 근소한 차이로 이기기는 했지만.


"자, 한발로만 뛰어야 돼. 한발로만!"
"아니. 이건 별로 해본 적 없는 운동인데..."


그들은 또 몇 가지 엉뚱한 놀이들에 열중했고,
쓸쓸히 지나가던 사람들은 그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들은 멋진 하루를 보냈고 몇 가지 계획들도 세웠다.


"아주 간단해, 나는 토요일에 쉬거든. 둘이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자전거를 타러 나가는 거야."
"물론 좋지. 자전거를 타로 나가자구. 야, 그거 근사하겠는데! 토요일에는 나도 수업이 없어.
그러니까 간단히 식사는 때우고 나가자구! 일요일에도 보자구. 뭐.."


"일요일도 좋지. 자네 말이 맞아."


내가 여러분을 우울하게 만들 생각이었다면, 이제부터 여러분에게.....
이 두 친구가 자신들의 일에 떠밀려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려 했을 것이다.
사실, 삶이란 대개는 그런 식으로 지나가는 법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우연히 한 친구를 만나고 매우 기뻐하며, 몇 가지 계획들도 세운다.
그리고는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시간이 없기 때문이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며,
서로너무 멀리 떨어져 살기 때문이다. 혹은 다른 수많은 이유들로. 그러나 마르슬랭과 르네는 다시 만났다.


"잠깐만 끊지 말고 기다리세요. 무슨 일이죠? 내가 일하고있는 중이란 건 알고 있죠!"
"예, 그럼요.... 그런데 이분은 재채기하는 선생님이라서..
지난 번에 이분이 전화하시면 곧바로 바뀌 달라고 하셨거든요..."


"에~취!..."


게다가 그들은 아주 자주 만났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라토씨도 오셨나요?"
"저 구석방에 계실 거예요. 소리를 들은 것 같거든요."
"이잇취!"


마르슬랭은 어디든 도착하면, 곧바로 르네가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마르슬랭도 왔나?"
"오고 있네."
"저기 오는 이가 틀림없어."


마찬가지로, 르네 라토도 항상 마르슬랭 까이유를 찾았다.


그들은 토요일과 일요일이 되면, 영원히 성공할 것 같지 않을 (그리고 해롭지도 않을) 사냥을 나갔다.

"으잇취!"
"조용히 해! 뒤돌아보지 말고.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 절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이건 세기적 강도 사건이 될 테니까... 으이츄!"
"앗 대부다. 게다가 감기 걸린 대부. 나는 이제 끝장이로군"


또 여전히 짓궂은 장난도 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애~취!"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있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함께 있으면서도 결코 지루해하지 않았으니까.


"이봐, 자네 혹시 알아차리지 못했나?
로베르 우리 큰 아들 말이야.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그 애도 별 이유 없이. 그렇게 재채기를 하는 것 같아.
그것도 꽤 자주... 이상하지..."


"그러게, 이상하네...
그애가 왜 그러는지 나도 궁금하군. 근데 우리딸 미셸도 마찬가지야. 가끔 얼굴이 빨개지거든.
아주 빨개져. 참, 신기하지..."


"잘 이겨 낼거야."
"그럼 잘 이겨 내겠지"


"으~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