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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말걸기 ◀◀/●아딸라의 에세이

87년 6월의 뒷얘기(2)

 

 

 

 

 

 

 

 

 

 

 


                                 5.
                   <이쁜 여자는 안 잡아간다..>

그 날도 모임을 하러 학교로 향했다.


본관화장실뒤에서 과친구, 은영이를 만났다.

 

은영이는 우리 과 괴짜중의 한 명이었다.
애기같은 목소리에 마구 나오는 대로  지껄이길 잘하는 아이였는데, 머리가
좋아선지, 타고난  교양수준때문인지 기분나빠할  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
때로선 아주 파격적인  짧은 미니도 즐겨입었고 머리스타일도  자주 바뀌었
다. 쌍꺼풀수술한 자리가 그다지 매끄럽진  않았지만 어쨌든 꾸미기를 좋아
하고 괜찮은 외모의  아이였다. 연예인같이 입고다녔기 때문에 눈에  잘 띄
었는데 어떤 날은 화장기가 하나도 없는  얼굴에 수수하게 입고와서는 사람
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 오늘은 웬지 우울해서 화장하기가 싫었어....

힘없이 얘기하는 그 애는 미워할 수 없는 아이였다.

 

어떤 날, 야외수업한 적이 있었다.
막걸리 몇 병을  놔 두고 교수님과 인생을 논하는 자리에서  은영이가 나가
서 노래를 하겠다고 했다.
짧은 미니를 입고 은영이는 ` 당신 ' 을 불렀다.

` 당신, 사랑하는 내 당신, 둘도 없는 내 당신..'

뽕짝노래를 간드러지게  부르며 교수님께 눈웃음을 보냈는데,  교수님이 민
망해서 얼굴이 벌개지셨다.  우리는 평소의 그 아이성격을 알기  때문에 장
난스런 그 행동에 다들 웃었다.

졸업앨범을 찍던  때, 야외촬영하면서 은영이는 아이들이  나란히 앉아있는
중간에 떡~ 앉으면서,

- 야들아, 다들 고개를 내 쪽으로 약간  기울이면서 전부 날 좋아하는 듯한
표정을 한번 지어봐라, 응 ?

재미있는 애였다.

 

그 애는 너무  자유분방했기 때문에 부모님이 어떤  분들일까 궁금했었는데
아빠는 교장선생님이시고  엄마는 교사시란다. 지금은 시집가서  애낳고 잘
살고 있다.

 

하여튼, 그 날 은영이를 화장실앞에서 만났다.
데모나갈 학생답지않게 방금 미장원에 갔다온 듯한  머리에 아주 짧은 치마
정장을 입고 있었다. 화장도 평소보다 더 곱게 하고 있었다.
- 니 , 못 들었나 ? 데모하는 여학생들은  원래 청바지에 투박하게 해 다니
니까, 오히려  이래 해다니면 안  잡아간다하더라.... 데모하는 여자  안같
제? 호호.

- 그렇나 ?
아딸라가 웃었다.

옆에 있던 3학년언니가 가방에서 샤도우하나를 꺼냈다.

- 나도 요번참에 분홍색샤도우하나 샀다. 바르고 나갈거야...

그 언닌, 화장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는데, 그거 하나 바른다고 달라
질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런 말을 어떻게 내 입으로 하랴.......

- 언니는 마, 머리부터 야사시하게 새로 해야되겠어예...

은영이가 한마디 해 버린다.

- 있잖아,

은영이 , 계속 말한다.

- 사실은, 요새 맨날 운동화에  더벅머리하고 데모할라하니까, 웬지 우울해
지는 것 같아서..  기분전환할려고 오늘 좀 꾸며봤어... 이렇게  꾸미고 나
갈 일이 없으니까 우울증생기는 것 같아...

이해가 갈 듯했다..

사실, 그 즈음  아딸라도 하이힐과 치마를 포기하고 납작한  샌들에 바지로
바꾸었다. 최루탄때문에 콘택트렌즈가 갈까봐, 수명이  다해 넣어두었던 콘
택트를 끼고 다녔다. 아딸라로선 중무장이었다..

그렇게 은영이가 꾸미고 나온 날,  전체모임에서는 거리로 나가 시위하기로
결정을 봤다.

물론, 여러 반대의견들이 있었다.

공연할 때 쓰는  커다란 앰프들이 운동장구석구석에 놓여지고  중앙에는 스
탠드마이크가 놓여  있었다. 누구든 의견이  있는 학생들은 나가서  얘기를
할 수 있었다.

대부분이 한 마음으로,  거리에 나가 농성하는 데  찬성이었지만, 반대의견
도 있었다. 이성을 지키자!! 좀 더 시간을 두고  우리의 행동이 옳은 지 생
각해보자는 의견이었다. 그런 쪽으로 의견을 얘기하면  우~ 하는 야유가 학
교를 울렸다.

- 어용은 물러나라!!

그러면 또 한 학생이 나가서 얘기를 했다.

- 자기와 반대의견이라고 그런 식으로 한  사람을 뭉개면 안됩니다. 그것또
한 그 사람의  의견이고, 그런 의견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우리는 존중해
야합니다.

조용해지는 좌중.....

 

 

이런 분위기를 타고 법대학생하나가 마이크앞에 섰다.

-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합니다. 데모하면 안됩니다.

그 상황으로 봐선, 완전히 자는 사람 다리긁는 소리를 하는 학생이었다.
전혀 설득력없이 입에 침을 튀기며 얘기하는  그 학생을 전교학생들은 아연
해서 쳐다보았다. 얌전한 숙기마저도 내 옆에 앉아 있다가,

- 뭐, 저런 학생이 다 있어 ? 지금 무슨 말, 하는거야? 혹시 짭새아냐 ?

할 정도였다.
전부들 수런거리며 한심해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 학생은  계속 열변
을 토하는데,  어떤 남학생하나가 운동장뒤쪽을 가로질러  그 법대생뒤쪽으
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법대생남학생은 그것도  모르고 계속 침을  튀기며
말했다. 전교생들은 낄낄거리며 쳐다보았다.
뒤로 다가가던 그  학생은 - 공대생같았다 - 그 법대생뒤에  서더니 몰래다
가가느라 수그렸던 허리를 좍 펴고 그 법대생뒤통수를 딱~ 갈기는 거다..
떠들던 그 학생은 한 대 맞고 놀라서 뒤를 쳐다보고....
운동장이 웃음으로 흔들거렸다.

 

 

그 날, 거리모임은  남포동에서 갖기로 했다. 잡새가 알면  안되니까, 우리
는 자기과학생이라고 확실히  아는 사람끼리 귓속말로 시간과  장소를 전했
다. 운동장전체에 말전하기 게임이 펼쳐졌다.

학교에서 농성을 안하고  파하면 전경측이 의심을 할거라고  형식적인 시위
를 잠시 가지고 파했다.

최루탄을 뒤집어 쓰고  개구멍으로 나가니 가게 아주머니들이  랩을 나누어
주었다. 눈에 뒤집어 쓰고 하라고......

그 땐, 어느 가게엘 가든지 눈에 붙일만큼의  크기로 랩을 잘라놓고는 학생
이 들어오면 하나씩 나누어 주었었다.  마스크를 들고가면 치약을 발라주기
도  했다. 수영할 때 쓰는 물안경을  들고오는 남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좀 위험했다. 혹시 가방수색이라도 당했을  때 물안경이 나오면, 골수
분자로 찍혀서 당장 잡혀갈 수 있었기 때문에.....

 

 

집에 가니, 남동생이 흥분해서 떠들어댔다.
진시장앞 8차선도로에 학생들이 가득 메우고 앉아서  농성을 하는데, 그 위
의 육교위에 시장상인들이 올라가서 돈이랑 담배를  마구 떨어뜨려 주고 있
단다. 자기도 500원짜리 동전을 숱하게 줏어왔다며 자랑했다.
상점의 아주머니들은 100원짜리 요구르트를  학생들에게 나눠주며 수고한다
고 격려하더란다. 물론,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다 나누어기엔 턱도 없었지
만, 그 아주머니들은 그 학생들에게  자신의 동조뜻을 어떻게든 적극적으로
알리고 싶었던걸게다

그날 우리는 남포동에서 집회를 가졌다. 극장앞이었다.

 

 

                                6.
                      < 시위하다가 눈맞는 커플들?! >

학생들은 네 다섯명이 한 조로 짜여졌다.

1,2,3,4 학년이 적당히  섞여진 조였다. 전체농성을 하기전에  먼저 조원들
끼리모임을 가진다. 그리고, 전경들이 쫓아 올  경우 무작정 도망가다가 막
다른 골목에서  잡히지 않도록 미리  어느 방향으로 도망갈지를  정해둔다.
가게주인들중에는 학생들을  숨겨줄려고 가게  샷터문을 다 내려두지  않고
조금 내려두는 집도 있었다. 그런 가게들을 미리미리  눈여겨 봐 두고는 여
차하면 그리로 도망가도록 계획을 세워두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어시간 뒤의 농성이 마쳐질 때쯤 시간과  장소를 정해 다시 모임
을 가진다.  인원점검을 하는  것이다. 누가 잡혀갔는가를  파악하기위해서
다. 돌아오지 않는 학생이 있을 경우는  조장이 과대표에게 알리고, 이것은
다시 총학측에 보고가 된다.

 

 

내가 속한 조는 국제시장뒤의 한  식당앞을 약속장소로 정해두었다. 건투를
빈다는 비장한 격려와 함께 우리는 각자 따로 농성장소로 향했다.

 

 

시간이 다  되어가자, 극장앞은 점점  인파로 넘쳐가기 시작했다. 그  날의
집회는 부산의 각대학들이 연계해서 함께  벌어지는 것이었다. 가끔씩 보이
는 고등학생들과  중년아저씨들까지 합해서  금새 극장가는 비장한  눈빛의
사람들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시간이 되자, 학생회장이  앞에 나섰다. 금새 전경들이 모여  들었다. 돌멩
이를 던졌을 때 퍼지는 물결들처럼 사람들은   어디론가로 수악~ 하니 빠져
달아낫다.

도망가던 사람들이 한 방향에서 모이면, 금새 어떤  한 사람이 리더가 되어
사람들을 지휘하고, 모르는  사람들끼리 다시 한 팀이 되어  전경들과 대치
전이 벌어졌다. 거리의 블록들은 다  깨어져 부수어졌다.돌멩이는 날아다니
고, 가게샷터문은 다 내려져 있었다.

 

 

도망가다가 멀리서 아는 사람을 보았다.
내가 속한 합창단의 지휘자였다. 목소리가 크고 덩치가  좋은 그 선배는 앞
에 서서 선두지휘를 하고 있었다. 나중에 만나니, 그 선배는,
- 아, 내가 덩치좋다고 다들 나보고 앞에 서라고 하잖아.
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돌멩이를 던지다가 저 쪽에서 전경들 한 떼가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누군
가가 소리쳤다.
- 저 쪽으로 뜁시다 ! 저 쪽으로 !!
아딸라는 심장이 뛰었다. 잡히면 안되는데, 잉~~
고등학교졸업한 후 그렇게 열심히 달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마구 달려가다가 뒤를 보니, 아직도 저만치서 전경들이 쫓아오고 있다.
어떤 남학생이 내 손목을 확 나꿔챘다.
- 이 쪽으로 !!
샷터문이 반쯤 내려진 가게로 아딸라를 밀어넣었다.
컴컴한 가게안에는 뭐하는 집인지 둥그렇고  큰 쇠통이 가득있었다. 도라무
라고 하나?

주인인 듯한 남자가 그 뒤 쪽에 숨으라고 우릴 안내했다.
그 뒤엘 가니, 벌써 네다섯명의 학생들이 숨어있다.
얼굴이 마주치니 가벼운 목례를 한다.
날 이끌고  들어온 처음 본 그  남학생과 얼굴을 붙이고  씩씩거리며 (숨이
차서) 앉아 있으려니,  우스운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웃고 있
을 수가 없게  됐다. 드르륵~ 샷타문 올라가는 소리.  전경들군화소리가 들
린다..

뭐라고 가게주인과 얘기를 나누더니 다시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숨었던 학생들의 한숨소리, 휴~~~
- 숨을 데 없으면 여기 또 와요!!
주인아저씨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다시 나왔다. 바깥을 살피며......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사람들은 차도로 몰려나왔다. 질서정연하게 모두들  어깨를 걸고 노래를 부
르며 행진을 했다. 인도에 서서 구경하던 시민들도  같이 어깨를 걸며 합세
했다.
- 사랑도 명예도~~~

시민들도 잘 아는 알려진 노래들을 주로 불렀다.
사람들이 갑자기 수런거렸다.  멀리서 전경들 몇 부대를 태운  버스가 이쪽
으로 오고 있다는 말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시내버스들이 갑자기 경적을 울려댔다.
버스들은 전부 가로로  차를 세우기 시작했다. 수 많은 버스들과  택시, 자
가용들이 길을 막기위해 차선과 직각방향으로  차를 세운 것이다. 학생들의
박수소리!!
- 고맙습니다, 기사님들!!
크게 소리치는 학생들도 있었다. 기사님들은 고개를 내밀며,
- 뒤는 우리가 마 봐준다 안하나 !!
호탕하게 웃어대시는 기사님들..

 

 

나중에 그 때의 거리를 찍은 사진을 보니, 그  넓은 도로를 꽉 채운 사람들
이 지평선끝까지 꽉 차서 끝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학생들은 아예 서로 어깨를 걸고 길바닥에 드러누웠다.
모르는 남녀끼리  어깨를 걸고 드러눕다가  눈이 맞은, `시위커플'들도  이
때 생겨났다.

 

 

버스가 막았던 방어선도  차츰 무너지고, 전경들은 가까이  왔다. 학생들은
흩어졌다. 남포동앞에서 행진해서 아딸라는 그  때 부산역근처까지 가 있었
다. 최루탄과 전경들을 피해 정신없이 도망가는데, 한 남학생이 소리쳤다.
- 다들 지하철을 탑시다!! 서면극장앞에서 만납시다~~
버스는 이미 노선이  통제되어 있어서 시내중심가를 다니는  버스는 끊겼을
때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밀물처럼 지하철계단으로 밀려내려갔다.
- 어디예요 ? 어디라고 했어요 ?
아무한테나 물었다.  일시에 많은  사람들이(주로 남학생이더라)  돌아보며
가르쳐주었다.
- 서면극장앞에서 모인답니다.!!

 

지하철을 타니, 비장한 표정의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 개새*들!! 지들이 버스를 막고 난리를 피는데, 얼마나 갈까?
험악한 소리들도 들렸다.

나중에 친구미영인 그날의 무용담을 들려주었다.
그 때, 부산역앞에서  어디로 도망가야 할 지 모르는데, 어떤  남학생이 자
기손을 잡더란다. 그러고는 옆에 있는 아리랑 호텔로 도망들어갔다나?
사람들이 보고 사정을 안다는 듯이 웃는데, 그 친구말이,
- 신혼여행가기도전에 남자랑 호텔들어갈 일이 생길 줄 누가 알았겠니?
그렇게 30분쯤 숨어 있다가, 바깥 눈치를 보고 나왔단다.
그 남학생한테선 그 후 꽤 오랫동안 과 사무실로 편지가 왔었다.
이것도 인연인데.......라며...........


                                 7.
                       < 서면..그리고 봄의 끝>


서면에서 시위를 하기로 한 날은 아침부터 날이 흐렸다.

아딸라는 그날도 일학년때  사 두었던 납작한 영에이지샌달을  꺼내신고 나
갔다.
" 눈치껏 조심해서 하래이..."
엄마의 걱정어린 말씀을  뒤로 하고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서  얼마간의 집
회가 끝난 뒤, 3학년 복학생선배와 몇명의  언니들로 팀이 짜여져 서면으로
진출을(?) 하게 됐다.

 

 

 

서면행 버스를  탔다. 버스안은  모두다 시위장소로 향하는  학생들이었다.
발디딜 틈이 없는 버스를 운전하시며 기사아저씨는  웬지 신이 나시는 듯했
다. 시위대를 이끌고 가는 운전병?

 나와 같은 팀으로 짜여져 있었던 복학생 아저씨는  평소 말이 없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학교안에서  가끔 마주치면  눈인사나 하는 그런  선배였었다.
복잡한 버스안에서 별달리 나눌 얘기도 없고 해서,  난 그때 버스위쪽의 선
전 문구를 멍청히  지켜 보고 있었다. 어떤 여자가 아주  짧은 치마를 입고
무언가를 선전하는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참 못난  다리도 있구나...하면
서 보고 있는데,  옆을 보니 그 선배도  멍청하게 그 그림을 보고  있는 거
다. 눈이 마주친 우리는 괜히 머쓱했고 그  분위기를 없애느라 아딸라가 한
말,
- 여자 다리가 제가 봐도 참 못났네요...
라는 말이  분위기를 더 요상하게 만든 것 같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버스가 섰다.
서면을 몇 정거장 앞둔 지점이었다. 총을  든 전경들이 버스를 정지시켰다.
서면쪽 노선을  지금 이시간부터 닫는다고  했다.  이유야 뻔하지  않은가?
부산 각  지역에서 서면으로 모여들고  있는 상황이 눈앞에 빤하게  보이는
데 .....  내 옆에 서 있었던  얌전한 그 아저씨입에서  갑자기 육두문자가
터져나왔다. 버스창밖으로 고개를 쑥 내밀더니  그 전경을 똑바로 쳐다보며
하던 말,
- 야! 이 개**야! 내, 지금 내려가서 니를  콱 쥑이삘끼다.. 개**, 니도 남
자가!!

 

 

그 때의 충격!  남자들은 화나면 무서버!! 화가 나서 벌개진  얼굴의 그 선
배의 눈에 불똥이 튀기는 걸 그 순간 난  본 듯했다. 무슨 일인가가 벌어질
듯한 분위기가 잠시 계속되었지만 갑자기 기가  죽은 그 전경이 머뭇머뭇거
리는 틈에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극장앞과 대로, 그리고 골목골목마다 가득 찬   시위대로 서면 거리는 평소
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득실거림에도 불구
하고 각 상점과 극장앞은 텅텅 비어있었다. 모두다  시위를 하러 나온 사람
들이었다.

얼마간 질서있게 줄서서 시위하던 사람들은 몇  발의 최루탄과 전경들의 몽
둥이로 뿔뿔히 흩어졌다. 다시 골목골목마다  모여서 소규모의 시위를 계속
하고...

 

 

아딸라도 전경들의 몽둥이를 피해 친구 둘과  함께 어느 병원으로 도망들어
갔다. 병원안에선  환자들이 최루탄가스를 마시지 못하도록  시위대의 진입
을 막았다. 하는 수 없이 화장실만 조금  쓰자는 부탁을 하고 화장실안에서
얼굴을 씻었다.  병원입구쪽에서 전경들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부리나케
옆에 잇는 엘리베이터를 올라탔다. 가슴은 콩닥콩닥!!

옥상까지 올라갔다. 거기까지 올라가서도 웬지  불안했다. 옥상담을 건너뛰
어 옆 건물로 옮겨갔다.  그 옆 건물이 뭐하는 덴지는 잘  몰랐지만, 그 건
물옥상위의 한 귀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숨어  있었다. 하지만, 전경들은 옥
상까지는 안 올라왔다..

 

 

다시 눈치를 보며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시위대들은 이미  어디론가로 옮겨
가고 없었다. 아마도  진시장을 거쳐 남포동쪽으로 내려갔는  듯했다. 텅텅
빈 서면 거리를 나서니, 이미 버스는 통제되어  집으로 돌아갈 교통편도 없
고.....그 당시 지하철은 범내골까지밖에 개통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지
하철을 타려고 해도  꽤 먼 거리를 걸어갔어야 했다. 게다가,  갑자기 내린
소낙비는 날 더욱  처량하게 만들었다. 금새 옷은 젖어오고  머리에서는 빗
물이 뚝뚝 떨어졌다. 택시를 잡으러  뒷골목쪽으로 친구둘과 함께 뛰어갔지
만 그 사이에 이미 우린 더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에 젖어 있었
다. 이래가지고는 택시도  안 태워주겠다... 우린 그냥  범내골까지 걸어가
기로 했다. 지하도에  들어서니 많은 사람들. 어디서 어떻게 다들  피를 피
했는지 비에 그토록이나  젖은 사람은 우리밖에 없는 듯했다.  윗옷 한자락
을 잡고 쥐아짜니 물이 주루룩~ 떨어졌다.  이상하다는 듯한 눈초리들을 애
써 모른 척하며  우린 그날의 시위를 그것으로 끝내기로했다.  이런 꼴로는
2차시위나간다는 것도 우스울 것 같고...

 

 

다음 날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은  저마다의 무용담을 자랑하기에  바빴다.
어떤 아이는 서면  극장앞에서 전경들에게 쫓겨 그만  본의아니게 극장안으
로 뛰어들어가 영화한프로를  떼고 나왔다고 했다. 이미숙이가  나오는 거,
무슨 영화라더라? 하여간에  분위기있는 무슨 영화를 보고  나왔단다. 텅텅
빈 극장안에서 간간이 흘러 들어오는 최루탄냄새를  마시며 슬픈 영화를 보
노라니 눈물이 절로 나더래나? 후후~~

그 해 봄은 그런 식으로 끝나고 있었다.
얼마 후, 6.29선언으로 마침내 그 파장을  보였다. 안된다고~ 안된다고~ 총
학측의 지도부층에선  지속적인 시위를 주장했지만, 아마도  사람들은 지쳤
었나보다. 잘 되리라는  희망을 억지로나마 가져보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어쨌든 , 그렇게 1987년 6월의 사건들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우리 애기가 크면  그 때의 일들을 얘기해줘야겠다. 엄마역시  작은 동참을
했었노라고.....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