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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말걸기 ◀◀/●아딸라의 에세이

87년 6월의 뒷얘기 (1)

 

다음은 아주아주 옛날에 적었던 글입니다. (10년도 더 된 글인 듯 합니다만)

방 개설한 기념으로 예전 글 목록을 뒤지다가 눈에 띄어 옮겨봤습니다.

탄핵일로 시끄러운 상황을 보자니 문득 떠오른 옛날 얘기입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거의 무슨 무용담 수준이군요.

거창한 얘기들은 아니니 그저 재미로 읽으시면 될 듯~

 

 

><><><><><><>

 

 

 

 

 


1987년 6월의 일들....

제가 기억할 수  있는 그 뒷이야기들을 에피소드들과 함께   이곳에 모아봤
습니다.  이건 평범한(운동권과는 별 인연이 없던) 한 학생의 눈에 비쳤던
일들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같은 이유로 모여서 한 행동을 했던 때가 떠오릅니다.
사실, 전 그 때 우리가 모였었던   대의들이 가물가물 희미해지고만 있습니
다. 무슨 일로 그렇게 흥분했었는지 그 때의 감정들과    흥분들만 제 기억
에 남아  있을 뿐입니다. 봄부터 시작해서  초여름까지  이어졌던   그  일
들...... 그 당시 제겐 어떤 비장한  사명감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와 생각하니 그건 제 삶중에서 중요한 사건들중의 하나였습니다. 거대
한 역사의 물결속에 흘러가고  있음을 느끼게해 주었기도 하고요.

 

 

그 당시 국민학교   4학년이었던 막내동생이 이제  고3이   되었습니다. 데
모대뒤를 신이나서 따라다녔던 꼬맹이가..
세월이 흐르고 모든 것은 망각속으로...
그 모든 것들을 잡아두고 싶은 욕심으로 적어보았습니다.


 

                              1.
                        <사건은 시작됐다.>


87년 6월.....

박종철고문사건이 밝혀짐에 따라 온 나라가 뒤집혔다.
전국의 각 대학마다    농성이 벌어지고 마침내 학생들은 거리로    뛰쳐나
왔다. 학생운동에 비판적이던 시민들도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아딸라는 운동권과는 원래 거리가 있었다.
동문서클이다 합창단이다해서 뛰어다니기   바뻤고,  과공부도 열심히   하
려는 편이었으니. 게다가  미팅까지 열심히 뛰어다닐려면    몸이 열이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처음 박종철사건으로 학교가 떠들썩할 때도 아딸라에겐 남의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수업이 끝나고 오후가 되어 나른한  햇살을  받으며 운동장
옆길의 교정을 따라 내려올 때  교문앞에선 격렬한  부딪침이  있었다.  교
문을 돌파하려는 학생들과  이를 저지하는  전경들의 싸움들.. 최루탄과 돌
멩이들이    마구 날았고, 매캐한  연기들로 교문주위는  유월의 따뜻한 햇
살과  함께 뽀얀 아지랑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도저히 교문을 통과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판단을  한 우리는- 아
딸라와 과친구들   - 잠시 그 자리에   서서 교문근처의 사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뒷쪽의 개구멍으로  나가도 될 것이었지만,  별 할일도 달리  없던
우리들은 다시 본관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 곳의 전면은   다 유리기
때문에  교문쪽이 잘 보였다.

본관유리를 통해서 내려다보니 더 잘보였다.
한 학생이 깃발을 들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마스크는   기본이고 눈이  따가운 걸 방지하기   위해  물
안경까지 낀  사람도  있었는데 그 학생은  아무 것도 끼지   않았다. 그런
데도 그 학생은 천하무적처럼   최루탄에 굴하지  않고 힘있게  깃발을  흔
들며 앞으로 나아가고만  있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뒤쪽으로  물러나는 동
료학생들에게 손을 흔들며 독려하고 잇었다. 마치,   그림속에 있는 투쟁하
는 여신처럼. (물론 그는 남자였다.)

 

 

 

- 학생회장 , ***군....

옆에 있던 숙기가 그랬던 것 같다.
이렇게 말하는 숙기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던 것 같다..

- 요즘,  운동권아닌   애들도 저기에  참여한다고 그러더라... 저    애들
은 대의를 위해 싸우는 거야....  누가 생각해도   이번일은  잘못됐어. 학
생들이 일어서야  하는데.
왜 우린 용기가 없을까 ?

정아가 얘기했던 것 같다...

- 저, 학생회장보니 ......

그러고는 말을 잇지 않았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창밖의 학생들을 보니,  특히  목이   터져라 무언가
를 외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학생회장을 보니 뭔가 뜨거운 것이  목을  꽉
메어왔다.

 

 

 

 

 

개구멍으로 학교를  나가   버스정류장까지의 긴   골목길을  걸어나가면서
난 많은 생각을 했다.

다음 날,  수업이   끝나고 과대표가  잠시 남으라고 했다. 과전체    모임
이 한시간뒤에 있을 거라고 했다.


 

 

 

                             2.
                         < 첫 시위 >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꽤 넓은 강의실에 학생들이 가득찼다.
김선배님, 이선배님, 부르며  인사를 한다고 강의실이 북적거렸다.  네 학
년전체가 모인다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4학년의 학회장이 앞에 나섰다. 그리고, 이번 모임의 취지를 말했다.

- 운동권에 대한 여러분들의 평소의 반감을  잘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제가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여러분이 잘  알 것입니다. 4 .19때가 그
랬습니다. 그리고, 멀리 거슬러가자면  광복후나 일제시대때까지도 나라나
사회의 불의에  항의하고 일어섰던 건  우리 학생들밖에 없었습니다.  음~
자세한 사건의 내막이  궁금하실 겁니다. 이번 박종철사건에  대해서 총학
측에서 한분 나오셨습니다.

 

 

총학생측의 소위 운동권이었던  한 학생이 나와서  사건의 전말에  대해 설
명을 했다. 그  당시의 상황으로서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책상을 땅~치
니  윽~ 죽었다는 말같지 않은  말은 그  때로선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이
었다. 평소  자신의 생각을 나서서 말하는데   익숙한 운동권학생들답게 그
학생은  아주  논리정연하게 말했다. 이 일로 해서   표면에 불거져 나오게
되었지만, 문제의 본질은 다른 데 있다고도 했던 것 같다.

학생들은 수런거렸다.

 

사실, 보통의  학생들에게 `문제의 본질'같은  것이 상시 가슴에 와  닿을
일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사람의 `죽음'이라는 건, 특히나  젊은 학
생들에게 같은 학생  - 그들로서는 묘한 동지감을 느끼게 하는  학생 - 의
죽음이라는 건 마치 기름에 불을 붓는 것처럼  어떤 활활 타오르는 분노를
느끼게 했다.

 

 

- 전에도 그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학생들이  교문에서  데모를 하다 전경들
에게 쫓겨 학교안으로  도망들어오게 되었다. 도서관앞에서 한   학생이 전
경에게 붙잡혔다. 원래   교문을 뚫고 나가지 못하게만   하는 것이 전경들
의 평소의   임무인데, 그 날은  웬 일인지 학교안까지 들어왔다.   붙잡은
그 학생의 뒷덜미를  잡더니 그 전경은  땅바닥에 질질  끌고 나갔다. 물론
일단  개패듯이 때려서 기운을 뺀 뒤에  끌고간거다.  근데, 도서관앞에 담
배피러나와있던, 운동권과는 상관없던  학생들이  이걸 보고 눈에  확 불이
오른거다.  사람을  개패듯 패더니  끌고가는 장면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
했으니. 한 명이 도서관안으로 들어가 수십명의   학생들을 선동해 끌고 나
왔다.  그 전경은 도망가버렸다...... -

 

 

- 지금 전국의  대학들이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토의중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관해선 소극적으로 대응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의견있으시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금새, 강의실은  격렬한 토론장으로 바뀌었다. 생각했던  대로 수업거부안
이 나왔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나라가 국민
을 죽이고도 모른체  한다는 데 대해 우리 국민들이 그저  앉아만 있는 바
보들이 아니란 걸 보여줘야한다는 게  대부분의 의견이었으나 막상 수업을
거부하려니 문제가 없는 게 아니었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아직 한두
달 남은 학기중간에  문제가 해결될 지도 확실치 않았고, 그렇게  될 경우
우리는 전체 유급을 할 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평소  운동권과는 거리가 있었던 보통의  학생들이 수
업을 거부하는 강경한 대응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였던 것 같다. 어른들의
말씀들이 생각났는지도 모를일이었다.  '느그들은 데모같은  것  하믄 안된
다이~~....'' 와, 학생이  수업을 빼묵으민서 데모를 하노.  지  할건 하믄
스 해야제.....' 뭐, 이런 말들이 그들을 머뭇거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결국, 그 날의 토의는 수업거부에 대해선 확실한  결론을 못 지은 채 끝나
고 말았다.  다만, 교문앞에서의 학생들운동에 참여해달라는  당부와 앞으
로 매일 이런식으로  모임이 한번씩 있을 거라는 것, 그리고  그 모임에서
우리의 나아갈 길들을   계속 토의해나갈 것이라는 것이 그   날 토의의 소
득이었다.

 

 

그 날 이후로  우리는 매일 모임을 가졌다. 어떤 때는  강의실에서, 또 어
떤 때는 유월의  따스한 햇살아래 교정의 어느 잔디밭위에서  우리는 모임
을 가졌다. 그렇게  일주일여를 토론했을꺄 ? 김종철사건이 점점  더 자세
히 밝혀짐에 따라 우리는 흥분했고,  마침내 수업거부안이 통과되었다. 그
때, 이미 전국의 대부분의 대학들이 수업거부를 결정했을 때다.

나와 내 친구들은  겁났지만 데모하는 학생들 뒤에 서서  목소리를 합해주
기로 했다. 돌을  던지고 하기엔 용기가 없었지만, 적어도  사람수를 채워
줄 순 있을  것 같았다. 사람이 많아지는 게 중요했으니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항의를 하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했다. 우리는 맨 뒤에  붙어 서
서 구호를 외쳤다.

 

 

- 군사정권, 자폭하라!

 

 

하고 선두에서 외치면, 뒤에 있는 학생들도  주먹을 쥐고 위로 치켜올리며
박자맞춰 구호를 외치는 것이었다.

 

 

근데,,,,,
그게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남학생들의  굵고도 단호한  목소리. 그리고,  운동권여학생들의
야멸찬 목소리들.  하지만, 나와 우리친구들의 목소리는  너무도 여릿해서
(목소리의 음색이 애기같았다.  다들 ) 공중으로 퍼져나오는  자신들의 목
소리가 너무도 낯설었다. 숙기는 크지 않은  목소리를 억지로 크게 내느라
소리가 떨렸다. 우리는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러
고보니 우리같이 평범하게(?) 보이는 학생들이  여럿있었다.
'이 많은 학생들이 같은 생각으로 모였구나     .....'
하이힐에 짧은   치마를 입은 야한 여학생들도 보였다.   데모를 나오긴 나
왔어도  내일의  레포트가 걱정이 되어 친구레포트를 빌려보는   학생도 있
었다. 그 학생들은  보통의 학생들이었던 거다.

 

 

뻥!!

아주 큰 최루탄이 하나 날았다.

- 끼약!! ---

여자들의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최루탄이라는 걸  어디 가까이서
구경을 해봤던 여자들이라야지.

 

 

운동권학생들은 몇 발자국 뒤로 도망가면서  사태를 살피고 있었지만 이런
걸 도통 구경해보지 못한 학생들은 그저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가기에 바
빴다. 수많은 학생들이 한꺼번에 흩어지려니 길을 따라   가는 사람도 있었
고, 길이 아닌  화단위로 마구 뛰어올라가   운동장쪽으로 도망가는 학생도
있었다. 한 여학생은 허리께까지   올라오는 화단위를 뛰어오르려고 치마를
허벅지가 다 보이게  걷어 올리고 뛰었다. 그 여학생은 언제   구했는지 마
스크까지 끼고 있었다. 남학생들은 그 와중에도   그 여학생의 다리를 훔쳐
보며  웃었다.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그 당시  유행하던  하이힐을 신고 있
었기에 전부  다 삐딱거리며 뛰고 있었다. 그건 진풍경이었다.

 

 

그렇게 뒤도  안보고 도망가다가 다시  모여들었다. 그렇게 하길  서너번,
점점 겁이 없어진 학생들은 그런식의 최루탄엔   멀리 도망가질 않았다. 마
침내 전경들은 지랄탄을 쏘아댔다.

( 지랄탄이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간단한 설명! 한  발을 쏘면 이것이 공중에서 새끼를 친다.  근데, 이 새끼
최루탄들은 보통의  최루탄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중에서 제 멋대로의  각도로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한참을  헤매고 다니다
가 지 맘먹은  곳에 아무렇게나 퍼퍼퍽!! 그래서, 학생들은  공중에서 미친
듯 비틀거리며 헤매고 다니는 이 새끼최루탄들을 지랄탄이라 이름붙였다.)
우리는  그것이 어디로  떨어질 지 몰라 그저 도망갈 수 밖에   없었다. 학
생들은 질서를 잃고 헤맸다.

그리하여, 그날의 데모대는 지랄탄으로 해산되었다.

 

 

다음 날의  모임에서 수업을 하지 않는   동안의 연락책에  대해 토의했다.
수업을 안하니 모임의 시간등을 알려줄 방법이   없어지게 된거다. 그저 일
정한 한  시간을  정해서 만나도 될  일이었지만, 굳이 다른 방법을   찾은
건 학교안의  잡새(사복경찰)들때문이었다.  학생인  척 모임에   참석해서
계속 상부에 보고하는 건  별로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학회장은
아침마다 모이는  시간과 장소를 정한 뒤   이걸 입에서 입으로  서로 전하
기로 한거다. 그래서,  수업은 없지만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항상 학교에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모임의 시간과 장소를  알려줄때는 귓속말로 전달했다. 누군가
가 들을 지도  모르고, 혹 멀리서 보더라도 입모양으로 알아낼  지도 모른
다며.... 꼭 무슨  첩보영화를 찍는 느낌이었다. 저 쪽에서   우리 과 학생
이 오면 어이!   하며 다가간다. 사적인  얘기를 하다가 그거!! 하면,   저
쪽에선 이쪽귀에다가  대고 장소와   시간을  가르쳐주고는 다시  제갈길로
간다. 좀 있다 봐!!하며....

 

 

그러다가, 귓속말로 전해줄 사항이 하나  더 늘었다. 대학전체모임을 하게
된거다. 국립대학이자  종합대학인 우리 학교학생이  다 모인다면 ?  그건
거대할 것이었다.

 

 

                               3.
                          < 분위기는 고조되고....>

 

 

그 즈음엔 데모대중의 한 사람이 도서관에 들어와 외치는 일이 잦았다.
도서관의 각 열람실에 뛰어들어와 조용히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소리쳤다.

- 여러분! 지금  이렇게 공부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  저 밖에는 여러분
의 친구들이 나라의  잘못을 알리기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힘
이 필요합니다.

 

 

그 말에 동조하여 교문앞으로 뛰어가는 학생들의  숫자가 어느 틈엔가 날이
갈수록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일어서서 나가는   학생이 또다시 앉아있
는  학생들에게 호소하고.... 무엇이  그렇게  많은 학생들을  동조하게 하
였는지 기억이   안난다. 그렇게 일주일여를 지나자 , 도서관에  앉아 공부
하는 학생은 거의 없게 되었다.

 

 

대학전체의 모임이 있는 날,
각 과별로 모임을  가진 후, 과이름을 적은  플랫카드를 앞세우고  줄을 서
서 운동장으로 나갔다.

 

 

국문과, 영문과, 일문과,  불문과 , 독문과, 중문과 등의  인문대학들이 줄
을 서서 갔다. 학교안에서 얼핏 눈에 띄었던  미인들이 그 옷차림과 화장에
어울리지 않게 주먹을  쥐고 구호를 외치며 운동장으로 갔다.  미리 운동장
에 와 있던 공대남학생들의 열화와같은 환호를 받으며.....

 

 

식영과, 가정관리학과등의  가정대학학생들이 들어섰다. 예대학생들,  약대
학생들, 사회대학,  경영대학학생들이 뒤이어 들어왔다. 멀리   아미동에서
여기까지 나와주신  우리의 학우들입니다....하는 운동장마이크를  잡은 사
회자의 소개와 함께의대와 간호학과학생들이 마지막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많은  학생들이 다 함께 모인  적이 언제 또  있었을까? 입학식이나
졸업식때도 절반이  안 모이는  대학생들...... 보통때 운동권들의  모임엔
운동장모퉁이 한 구석에  50여명이 모이기도 힘들었던 때를  상기하며 사회
자는 사뭇 감격에 겨워하는 듯했다.

 

 

인문대만 해도 3000명이   넘었다. 각 과명을 적은 팻말을   앞세우고 운동
장스탠드를 가득메우고도  자리가 모자랐다.  운동장바닥에도 앉았고  스탠
드위 잔디밭에도 가득찻다. 그 위의  길바닥과  그 뒷건물안의 복도까지 학
생들이  들어차서 운동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다음날, 각  신문마다 우리학교에서 전체집회가 있었던 것이  기사로 나
왔다. 어떤  신문엔  2000명이 모였다고  나왔고,  어떤  신문엔 500여명이
모였다고  나왔다. 다음 날 , 전체집회때  사회자가 그 얘기를 언급하며 웃
었다.

 

 

- 여러분은 지금 우리들이 몇명이나 되는 것 같습니까?

모두들 고개를 돌려가며  대충 세었다.7~8000쯤 되었을까  ? 그 많은  사람
들이 함께 웃엇다.

 

 

그렇게 며칠을  전체집회가 열리자 지하철앞에서부터   봉쇄가 되기 시작했
다.  못 들어가게 할 공식적이유는 없었기에 학생아닌  자를  잡는 다는 명
분으로 학생증검사를 했지만, 이유는 뻔했다. 학교앞에  전경들이  꽉 들어
차며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그 즈음  차도를 점거하고  농성하는  학생들을 보는 것이  잦아졌다. 우리
집앞의 고가도로위에서도 연일 농성이 벌어졌는데,  그 당시 우리집은 증축
공사중이어서 창문이 다   뜯겨져 있었기 때문에  최루탄연기를  그대로 마
시며 생활하느라   매우 힘들었었다. 당시  11살이었던  막내남동생은 데모
대뒤를 따라다니며  훌라송을 배워와서는 우리 가족들을 웃겻다.

 

 

 

 

 

 

 

 

 

 

 

 

 

전체집회가 끝나고   나면 교문앞으로 나가서  전경들과  대치전을 벌였다.
교문을 뚫고  나가서 농성을 하는 것이  우리 목적이었는데  몇  개 부대가
나왔는지 학교주변은 전경들이 학생들보다 더 많은 듯했다.

 

 

전투(?)는 치열했다.  선발부대남학생들이 앞에서  돌을 던지고,  여학생들
은 학교길바닥의 블록을  깨서 교문앞까지 날랐다.   그렇듯 한시간여를 싸
우다가  지치면  학생들은 교문앞에 각과별로 대열을 정비해   앉아서 쉬었
다. 전경들에게도 잠시동안의 휴식시간이였다.

 

 

누군가가 선창한다.

 

- 배고프다, 먹고하자 훌라훌라~ 배고프다  먹고하자 훌라후라~ 배고프다먹
고하자 배고프다먹고하자배고프다먹고하자~~

 

 

첫마디가 끝나고나면 점점  옆으로 퍼져 마지막구절에 가서는  수천명의 학
생들이 한 노래를 부르게 되는 것이다.

 

 

즉석에서 모자가 돌고 동전과 지폐들이  모였다. 학생회측의 몇명이 수퍼에
가서 우유와 빵을  사가지고왔다. 금새 손에서 손으로 빵과  우유가 돌려졌
다. 또 다시 누군가가 선창한다.

 

- 전경들도 배고프다, 훌라훌라~~~~

 

또 다시 돈이 모였다. 누군가들이 다시 빵과  우유를 박스째로 사가지고 왔
다. 전투중간에 전경들에게 전달식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 이왕이면 여학생이, 훌라훌라~~

 

여학생이 전달하자는 뜻이었다. 금새 전학생들이 노래를 하고....
가정대의 여학생이  전달했다. 학생들은 방금전까지의 대치전을  잊고 웃으
면서 박수를 쳐댓다. 전경측대장이 웃으며 학생대표와 악수를 했다.
그렇게 잠시 식사를 하다가 다시 돌과 최루탄이 날랐다.

 

 

                               4.
                         < 시위 현장 >

 

 

아딸라는 그 즈음 처음으로 바로 옆에서 날아다니는 사과탄들을 보았다.
날아오다가 바닥에 퍽~  하면서 깨어져서는 한 두 숟갈가량의  하얀 가루를
바닥에 쏟아부었다. 바닥에   있는 최루탄가루들은   피해다녀야했다. 어쩌
다 밟으면  바로 얼굴로 날아올라오니까.....
학교안에 터트려진 최루탄들이 몇 드럼은 될 듯했다.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을 정도였다. 얼굴전체가 어찌나  따갑던지 최루탄
때문이 아니라, 통증때문에  눈물이 날 정도였다. 하지만, 울   순 없었다.
눈물이 흐른 자리는 더 따가웠으니까.......

 

 

평소, 항상 곱게  화장을 하고 다니던 아딸라는  밖에선 절대  세수를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렇게  최루탄을 뒤집어 쓰고나면  어쩔 수 없이  학교
건물안의 화장실세면대에서 세수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화장실구석구석엔
얼굴을   씻고난 뒤의  고통때문에 조용히 쭈그리고  앉아 눈을 감고  있는
여학생들이 있었다. 울기도 뭣하고,  눈을 뜰  수도 없고 조용히  앉아  그
통증이 지나갈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거다.

 

그러다가 밖으로 나가면, 최루탄에 굴하지  않고 여전히 농성하는 친구들을
보며 다시 가슴에 불이  타올랐다. 물이 묻은  자리는 새로운 최루탄에  더
지독하게 따가와오고.....

 

 

두어시간을 그렇게  교문앞으로 나아갔다가는 다시  물러나고하기를 계속하
다가 저녁해가 질 무렵이면 점점 파장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개구멍쪽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나갔다. 거기서 버스정류장까지는 꽤   멀
었다. 너무  많은 학생들이   한꺼번에  좁은 골목길로 나가야했기  때문에
저절로 6명정도가  폭이 되어서 줄이  생겨났다. 전부다 고통스런   얼굴로
콜록거리며 내려갔다. 버스를 타면 버스안이 금새 최루탄가루로 가득찼다.

버스안에서 눈물을 흘리다  서로 얼굴이 마주치면 모르는  사이끼리도 작은
미소를 건네었다. 서로에게 보내는 말없는 격려였다.

누군가 옷을 툭  털기라도 하면 버스안은  금새 최루탄냄새가 더  지독해지
는 듯했다.

 

 

- 야가 낼로 더  눈물흘리게 하네!! 이 버스안에 있는 사람들!  옷 좀 털지
마슈!!

 

누군가가 능청스런   목소리로 크게 말했다.   버스안의 사람들은  다 웃었
다.  거의 다 우리학교 학생들이었다. 몇명끼인 어른들도 함께 웃었다.

 

- 학생들이  고생하는구만  . 내  평소에 학생들,데모하는 건   못마땅하게
생각했었다만, 이번 일은 크게 벌이는 게 옳은기다....

 

어른들은 딱히 누군가에게 상대를 정해 말하는  것이 아니고 버스전체의 학
생들이 들으라는 듯 말했다.

 

데모는 전쟁이었다.

수많은 학생들이 잡혀서 경찰서로 끌려갔다.
우리 과의 여학생은 머리에 최루탄파편을 맞고 수술실에 들어갔다.
붙잡히면 개맞듯 맞아야하는  걸 각오하고 다들 싸웠다. 얼굴에  피를 흘리
며 싸우는 학생들도 여럿 보았다. 피가 흐르는  얼굴을 보면서 아딸라는 끔
찍하다는 생각보다 이유모를 슬픔을 느꼈다.

어쩌다 이런 일이  우리 앞에 일어나고 있는  건지, 아딸라는  생각하면 눈
물이 났다. 왜 우리 학생들은 도서관에 앉아 있어야  하는  이 시간에 거리
에서 이렇게 싸워야 하는지..... 무엇때문에, 무엇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