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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말걸기 ◀◀/● 여행과 나들이

북부 프랑스 여행 - 독일인 듯 프랑스같은 스트라스부르



스트라스부르 시내를 지나는 전차가 보인다.




도착했을 때 안개같은 비 흩뿌리다


돌아 다니기 힘든 정도의 비는 아니고 습도높은 공기가 쾌적한 그 정도의 날씨였다.





멀리 노트르담 성당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아닉 구딸 향수 가게.


여기 파는 뮤게향 향수를 전에 사려고 한참 눈독들였던 적이 있었지. 새삼 감개무량해하며 쳐다 보았다.





노트르담 성당



성당 들어서면서 좀 쭈뼛거리며 들어 섰는데 입구에서 맞아 주시는 분이 아주 푸근하셨다.

우리같은 관광객들을 늘 대하시는 분이라.




1225년에서 1439년에 걸쳐 세워졌단다.  


200년이 넘는 동안 이 지역이 프랑스와 독일의 영향을 골고루 받은 탓에 이 노트르담 성당의 양식도 로마네스크 양식과 하이 고딕 양식을 오고 간다고.




데코들이 아주 섬세하면서 길쭉길쭉 세로선을 강조한 구도가 노블하게 느껴진다.















성당 안에 있던 긴 의자에 잠깐 앉아 마음을 가다듬었다... 라고 적고 pause...


분위기 탓인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잠시 그 시간과 자신을 돌아 보는 시간.







계속 비가 오락가락





길거리 카페들이 보이긴 했는데 여기 들어 가지 않고 중앙 광장 한 켠에 있던 스타벅스를 들어 갔다.





광장 한 켠에 있던 회전 목마.




여기 이 광장 한 끝에 스타벅스가 있다.


2층 스타벅스로 올라갔다. 거기 화장실도 깨끗하고 좋았다.

광장이 내려다 보이는 둥근 창의 옆 자리는 중국인 여성 두 분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고 우린 안쪽 긴 의자에 앉았다.


스타벅스 들어 간 이유는 화장실 이용하려고, 또 송금을 급히 해야해서.


아는 분께 부조금을 부쳐 드려야 했는데 폰의 유심을 바꿔 끼웠기 때문에 송금하는데 약간의 난항이 예상되었다.


안심 설정이라고 뱅킹할 수 있도록 기기를 미리 몇 가지로 설정해 두었다. 집의 컴퓨터 한 개와 내 폰. 그런데, 폰의 유심이 바뀌면 ? 아무래도 락이 걸리지 않을까 싶었다.


가만 생각하니 가진 통장 중의 하나에 연결해서 간편 송금 앱을 하나 깔아 둔 게 떠올랐다. 지문인식으로 로그인하고 비번으로 송금이 되는 방식이니 어쩌면 유심과는 상관이 없을지도.


시도를 했는데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송금 성공~!!!!


할 일을 모두 마치고 나서 개운한 마음으로 좀 더 쉬었다가 나왔다.




비도 조금씩 잦아 들고 산책하기 딱 좋았다.


저 쪽 오른쪽 모퉁이를 돌면 유니클로 매장이 있다. 문득 여기 유니클로 매장은 우리나라랑 어떻게 다를까 궁금해서 들어가 보았다. 


다른 건 거의 없는데 이월 옷은 보이지 않았다. 한 켠 바구니에 지나간 계절옷을 담아 두기도 하는데 여기는 내가 못 찾는 건지 전혀 보이지가 않더라.


 


바닥 블록 모양을 보라~!


굉장히 산뜻하다. 그리고 조각 모양들이 강렬해서 몇 개의 쓰레기가 떨어져도 눈에 쉽게 띄지 않을 듯 하다. 그렇더라도 휴지 하나 없이 깨끗한 거리이기도 하고.







쁘띠 프랑스



여기 들어서서 굉장히 많이 걸었다.


구석 구석을 돌아 다녔다.






백조가 있다





여기 벽면 장식이 요 앞에 봤던 콜마르의 쁘띠 베니스와 비슷하다.


그리고 각 건물 꼭대기 층을 보면 작은 쪽창이 하나씩 붙어 있다.

이 지역은 옛날부터 가죽 공방을 많이 해 온 지역이다. 가죽을 말릴 때 냄새도 나고 또 환기가 잘 되는 곳에서 말려야 되서 저 꼭대기 다락방에 창문을 열고 말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 지역 꼭대기 층에 꼭 쪽창들이 많이 달려 있다고.





Batorama 유람선




먹기 전에 사진을 찍었어야 하는데 ;;;;


시내에서 꽤 큰 빵집이 보이길래 들어 가 빵 몇 개를 사 왔다. 오렌지 쥬스와 함께.


그런데 정말 빵맛이 예술인거다. 크로아상은 촉촉하면서도 쫀득하고 버터향이 진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크로아상도 맛있었는데 이 빵집의 빵은 더 맛있었다.


그런 크로아상 맛은 프랑스 가야 맛 볼 수 있는 것인지




우리도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티켓팅 부스에 줄을 서서 코스와 시간을 선택하고 티켓을 끊었다. 사람이 직접 끊어 주는 데스크엔 줄이 길어서 그 옆의 머쉰으로 뽑았다. 옆 줄 커플은 뭔가 에러가 나는 것인지 몇 번을 재시도하고 있었는데 우린 금방 티켓팅을 성공했다.


그 쪽이랑 우리 쪽이랑 어디 뒤에 줄을 설까 잠시 망설이던 뒷 사람들이 척척 버튼을 눌러 가며 손쉽게 티켓팅하는 우리 뒤로 줄을 섰다.




자리마다 헤드폰이 있었는데 오디오 가이드에 한국어도 있었다. 얏호~!!!!


이후 여행을 다니다 보니 한국어로 오디오 가이드가 된 데가 참 드물었다. 시옹성에서 한국어 가이드가 있었고 이 둘움을 제외하고는 전무였다. 11개국, 12개국 오디오 가이드가 있었는데 거기 한국어는 포함되지 않았다.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한국어로 안내가 뙇~! 나오는데 귀가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사진 상으로는 잘 느껴지지 않는데 햇살이 아주 따가왔다. 손으로 이마창을 만들어 붙일 정도로 따가왔다. 선글라스로는 해결이 안 되는 따가움이었다.


유럽인 남자들 중에는 스킨헤드가 꽤 있던데 이런 햇살에는 두피가 따갑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







유람선을 타고 다리 아래를 지나고 다리 위도 올려다 보고 그러다 보니 파리 센느 강 아래서 유람선타던 기억이 문득 났다.






짧은 코스를 선택하면 이 구역까지는 안 들어 오는데 우린 긴 코스를 선택했더니 안 쪽까지 들어 왔다.




이 건물의 다크와인빛이 멋졌다.

건물 색상으로는 드문 색이 아닌가?




제일 안쪽에 있던 저 건물은 유럽 인권 재판소


이 강은 "일 강" 이다.




그랑드 일 - Grand ille - 일이 섬이라는 뜻이고 그랑드 일은 큰 섬이라는 뜻이다. 프랑스 연음법으로 붙여 읽으면 그랑딜이라고도 적힌다.


위 지도에서 일강에 둘러 싸인 동그란 부분이 그랑드 일이다.

그리고 별표 되어 있는 저기가 쁘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이라고 적혀 있는 게 노트르담 대성당.


알자스 지방이라면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 떠오른다. 프랑스와 독일, 양쪽 다 인접한 이 지역은 독일땅이었다가 프랑스로 갔다가 또 독일땅이 되었다가 또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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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전쟁(1618~1648년)이 끝나고 체결된 베스트팔렌조약에 따라 패전한 독일은 알자스-로렌 지방이 프랑스의 소유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1870년 프로이센과 프랑스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고 프랑스가 패배하면서 알자스-로렌 지방이 다시 독일에 귀속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알자스-로렌 지방의 시련은 계속되었다. 1919년 베르사유조약으로 다시 프랑스로 귀속되었다가 1940년에 히틀러에 의해 독일에 합병되었으며, 1945년에 프랑스가 두 지역에 대한 주권을 회복해 현재에 이르렀다.




독일과 프랑스는 왜 그토록 알자스-로렌 지방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한 걸까?

알자스-로렌 지방을 사이에 두고 왜 그토록 분쟁이 끊이지 않은 걸까?


 

 



 

알자스와 로렌은 유럽의 젖줄인 라인 강의 서쪽 기슭에 위치한다. 프랑스가 이곳을 점령하면 라인 강과 아르덴 고원이 프랑스 동쪽을 방어하는 천혜의 장벽이 될 뿐 아니라 라인 강을 관통하는 독일의 교통로를 단절시켜 전략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독일의 입장에서는 알자스와 로렌을 점령하면 라인 강을 통해 직접 대서양으로 진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런데 산업혁명 시대에 들어서자 이 두 지역에 지리적 가치 외에 더욱 중요한 가치가 더해졌다. 바로 풍부한 석탄 자원이 매장되어 있고 석탄과 관련된 산업이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프랑스든 독일이든 이 두 지역을 확보할 경우 경제적으로 큰 도약을 이룰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두 나라 중에서도 프랑스에게 더 절실하게 필요했다. 본토에도 석탄 자원이 풍부한 독일로서는 이곳을 잃는 것이 다리 한 쪽을 잃는 것과 같지만, 석탄 등 천연자원이 넉넉지 못한 프랑스로서는 이 지역을 빼앗기면 경제 전체의 성장이 둔화돼 새의 날개가 잘려나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산업혁명 이후 이 두 지역은 독일과 프랑스의 존망 자체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가치를 가지게 되었고, 실제로도 양국의 흥망성쇠가 이 지역을 얻었는지 여부에 의해 좌우되었다.


 

  - 저탄소의 음모(거우홍양 지음, 허유영 옮김) 중에서 - 


스트라스부르를 떠나고 다음 날은 스위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