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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말걸기 ◀◀/●아딸라의 에세이

[추억] 가끔 떠오르는 갈색 눈의 그 눈물 -

 

 예전 어학원에서 일하던 때입니다.

 

그 때 제가 맡았던 일이 우리 지점의 헤드티쳐. 우리 말로는 교수부장...

 

외국인 강사들이 오면 그 분들의 수업 플랜을 짠다든지 강의법등을 가르친다든지 하는 것도 제 일이었습니다. CCTV로 수업을 모니터링 후 고쳐야 될 점도 따로 불러서 얘기해주고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개인적인 대화 시간도 많이 가졌습니다. 주말에 같이 근교 나들이도 했죠. 우리 가족들 여행하는 데 동반해서 말입니다. 이 지방의 외국인 강사들끼리는 따로 자기들끼리 모임도 있는데 거기 참석한 적도 있고 각종 한국 체류에 관련한 서류들도 같이 처리해주고 -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낸 편이었습니다.

 

 

 

어느 날 새로 맞은 외국인 선생님 한 분...

 

들어 오는데 기둥 하나가 걸어 오는 줄 알았습니다. 키가 자그마치 196 cm. 이름은 얼 (Earl), 캐나다인, 23세 - 전공은 수학. 자기 나라 대학에서 미식축구 선수.

 

 

이 사진 , 공개하지 말라고 울 아들이 그랬어요.. 머리 손질한 지 얼마 안되서

가발같이 보인다고......ㅜㅠ 알지만, 뭐 그래두... 같이 찍은 건

이것밖에 엄써요...ㅜㅠ

 

 

 매우 선하고 성실한 선생님이었습니다. 수업 준비도 매우 착실하게 하시고 궁금한 것들에 대해 질문도 많이 해 왔었습니다. 학생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냐라든지 조금 더 재미있게 수업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달라고 물어온다든지 하는 -

 

 

온 지 얼마 안되었을 때 자신 책상 쪽으로 절 부르더니 동화책 하나를 꺼내며 자랑하더군요. 제가 여태 보지못했던 특이한 화풍과 컨셉의 외국 어린이 동화책이었습니다. 신기해서 만지작거리며 이걸 어떻게 사서 들고 오게 됐냐고 물었습니다. 책상 위에 놓인 사진 액자를 가리키며 말하더군요. 사진 속의 여자친구가 한국으로 떠나올 때 선물해 준 거라구요. 한국 가서 좋은 선생님 되라면서 선물해 준 책이라고 했습니다.

 

사진 속 여자친구는 정말 정말 귀엽고 예쁘게 생긴 여자였습니다. 아마도 그녀가 20대 초반이었을테니 제 눈에는 그냥 girl 같이 보이더라구요. 귀염성있고 애교많게 생긴 여자분이었습니다.

 

- 넌 정말 행운아다. 어떻게 저렇게 예쁜 여자가 여자친구냐고. 그리고 이런 선물을 한 것을 봐도 아주 착한 걸 짐작할 수 있겠다. 메일등으로 자주 연락하면서 돌아갈 때까지 관리 잘해라. 그림책도 너무 신기하고 예쁘다. 고심해서 고른 티가 난다.

 

이렇게 얘길했더니 싱글벙글 ~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자기는 여자친구를 너무 좋아한다고 -

 

 

 

그렇게 두어달 쯤 지난 어느 날.

 

전 아침 일찍 교무실을 들어섰습니다. 아무도 출근하지 않는 이른 시각이었죠. 정리할 서류가 있어서 일찍 출근했던 거에요.

 

그런데 얼 선생님이 웬일인지 그 이른 시각에 사무실을 나와 있더군요.

 

- 하이, 얼~~굿 모닝~

 

인사를 건네고는 다가갔습니다. 책상 위에 팔꿈치를 괴고는 얼굴을 감싸안고 있었는데 그의 어깨가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작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 무슨 일이지...?? What's the matter?? What's wrong with you?

 

얼른 팔을 내리고는 아무 일도 아닌 척 표정을 추스리긴 했지만 얼굴이 빨갰습니다. 울음을 참으려는 사람처럼.

 

가까운 곳의 의자를 당겨 앉았습니다.

 

무슨 힘든 일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갑자기 무너지듯 울먹이며 말하는 얼 선생님. 의젓했던 평소 모습과는 달리 어린 소년의 얼굴을 하고는 말을 꺼냈습니다.

 

전날 밤 그 여자친구에게서 메일을 받았다고. 그녀에게 새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그녀가 말했다고. 기다릴 수 없을 것 같다고. 자기를 잊어 달라고.

 

자신은 그 여자친구없이는 지낼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당장 캐나다로 날아가고 싶지만 갈 수가 없고 캐나다는 너무 멀다고 했습니다. 이제 어떡하면 되냐고 제게 물었습니다. 선하게 생긴 눈에서 닭똥같은 맑은 눈물이 투투툭 떨어졌습니다. 참고 있던 의지가 흘러 내린 눈물로 봇물같이 쏟아져 마침내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가 두 손으로 얼의 손을 잡아 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깨를 토닥여줬습니다. 얼은 잠깐 제 어깨에 기대어 더 울었습니다.

 

잠깐동안의 한국행을 후회했던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잠깐 아이처럼 소리내어 울던 얼은 일어나서 바깥으로 나갔습니다.

 

 

이후 얼선생님은 계속 우울했었습니다.

 

교무실에서 쉬는 시간 음악을 틀어놓았었는데 웨스트 라이프의 MY LOVE 가 흘러나왔습니다.

 

 An empty street, an empty house
텅 빈 거리, 텅 빈 집
a hole inside my heart
구멍 난 듯 허전한 내 마음
I'm all alone
홀로 있는 이 방은
The rooms are getting smaller
자꾸만 작아져만 가요

I wonder how, I wonder why
어떻게, 왜 그렇게 됐느지 알 수가 없어요
I wonder where they are
우리가 함께 했던 그 날들이,
the days we had
우리 함께 불렀던 그 노래들은
the songs we sang together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요?

 

 

갑자기 가라앉은 채 조용히 노래를 듣던 얼선생님이 벌떡 일어나서 나가버렸습니다. 얼의 이야기를 알고 있던 사무실 내 사람들은 당황해서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따라 나갈까 생각했지만 그냥 있었습니다. 제가 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얼 선생님의 우울기는 2주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시 여러 행사가 있었고 피크닉이 몇 번 있었습니다. 즐거운 체, 모든 것을 잊고 큰 소리로 자주 웃던 얼을 기억합니다.

 

뜨거운 사랑이 왔다가 또 깨어질 때의 아픔 -

 

피부색깔을 떠나 누구에게나 마음은 같은 거겠죠. 

 

얼 선생님은 그 때 왜 내게 그 눈물을 보였었을까요? 먼 타지에 와서 마음을 털어 놓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 시간, 그 순간에 내가 곁에 있었기 때문에?

 

힘들고 외로웠던 그 때 누군가라도 붙잡고 울고 싶었던 얼의 그 때 심경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이즈음도 가끔 그 때를 떠올리다 보면 아릿하니 가슴이 젖어 옵니다.

 

맑은 아픔의 눈물이 가끔 떠오릅니다.

 

지금 다시 그 시간으로 간다고 해도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손을 잡아 주는 일 밖에 없겠지만, 뭔가 더 위로의 말을 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듭니다.

 

4년 전의 일이네요. 어떤 아픔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해 주는 것. 지금  얼 선생님은 젊음의 힘으로 그 때 일을 과거로 묻어 버렸으리라 믿습니다. 어디서건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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