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자 폰트들이 예뻐서 현재 사진들에 영문 로고를 넣고 있어요.
위 사진의 로고는 조금 다른 폰트로 꾸며봤는데 -
여러분들은 어느 로고가 제일 여기 사랑방 분위기와 어울린다고 생각하세요?? ^ ^
그리고, 제가 직접 쓴 글에는 로고를 말미에 붙이고 있구요.
이렇게 -
예쁜가요?? ^ ^ ㅎㅎㅎㅎ
Salon (살롱)이라는 것은 원래 프랑스어예요. 물론 영어로도 쓰이죠. 읽기로는
설란, 샐란, 뭐 이렇게 읽더라구요 -
그래서 프랑스 단어가 영어식 문장안에 들어와서
아딸라의 사랑방이 'Atala's Salon'이 된 거죠.
Salon(살롱) 이란??
살롱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거예요.
1. (미용실・고급 의상실 같은) 상점 예문 a beauty salon 미용실 a hairdressing salon 미용실 2. (구식) (대저택의) 응접실
3. 살롱(과거 상류 가정 응접실에서 흔히 열리던 작가, 예술가들을 포함한 사교 모임) 예문 a literary salon 문학 살롱 |
원래의 의미는 2번이었구요, 저것이 확장되어 나타난 것이 3번이고, 요즘 들어서 편하게 쓰이는
의미가 바로 1번으로 쓰이고 있죠. 살롱의 고급스런 느낌을 상점등으로 끌어 오고 싶어서 쓰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조르쥬 상드, 아시죠?? 여류 문학가이자 많은 지성인들의 흠모의 대상이었던 조르쥬 상드 -
10대에 결혼해서 두 아이를 두고도, 남편에게서 도망쳐 파리로 건너온 평민출신의 조르쥬 상드.
그녀는 남자처럼 옷을 입고, 그 당시 여성에게는 금기시 되었던 담배를 피고,
소설을 쓰기 시작합니다. 조르쥬 상드는 남자의 이름으로, 필명입니다.
타고난 재능과 예술혼, 불같은 열정을 통해 팜므파탈의 마력을 발산하는 그녀.
수많은 그녀의 연인들이 상드를 잊지못해 괴로워했고,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녀를 흠모하여 사랑의 아픔을 겪습니다.
그 중 한 명이었던 쇼팽과 만나게 된 것도 바로 살롱에서였죠.
바로 당시 광적인 여성팬들을 몰고 다녔던 피아니스트, 리스트의 소개로
만났던 것입니다. 리스트도 그 살롱에 왔던 사람이었거든요.
그 살롱에서는 당대의 유명한 문학가들, 화가들, 철학가들이 모여서 토론하고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위고, 발자크, 뒤마 등등 대문호로 알려진 작가들도 그 살롱에 오던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이후 쇼팽은 그 살롱에서 많은 후원인들을 만나서 음악계에 데뷔를 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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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살롱의 기원은 아주 먼 중세로까지 갑니다.
지금은 살롱이라고 하면 룸살롱등의 퇴폐적인 느낌으로 들리는데요, 원래는 그 시대 문화를
꽃 피우게 하던 곳이었습니다.
문화 공간이었던 살롱, 그리고 사랑방
어느 시대나 문화의 흐름을 선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모여 책을 읽고 토론을 즐기고, 음악회를 개회하거나
그림을 감상하고 새로 유입된 신문화를 먼저 접하며 앞선 문화를 향유했습니다.
프랑스의 살롱이나 우리나라의 사랑방과 규방은 이러한 문화공간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프랑스에서 예전 귀부인들이 자기 집의 객실을 귀족 부인들이 일정한 날짜에
- 매주 화요일이라든지 시간을 정해두고 살롱을 열었다고 합니다 -
자기 집 객실을 문화계 명사들에게 개방, 식사를 제공하면서,
문학이나 도덕에 관한 자유로운 토론과 작품 낭독 및 비평의 자리를 마련하던 풍습.
즉, 살롱은 중세 유럽의 궁정을 중심으로 하여 싹튼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뛰어난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그의 살롱에 모여 만찬을 들며 무용, 음악, 철학, 역사 등 주제를 가리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선의 생각들을 내놓으며 열띤 토론의 장을 만들어갔죠.
뿐만 아니라 당시 획기적으로 발전되고 있던 과학도 살롱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천문, 물리, 화학, 자연학, 의학 등이 살롱에서 다루어지면서 이러한 학문의 발전에도
살롱이 선도적 역할을 담당했다고 하네요.
문학, 음악, 미술등의 예술가들과 철학, 과학에 관한 지식인들 등
당대의 유명 인사들이 방 안 가득 모여 있는 풍경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뜁니다.
음악가가 중앙에 놓인 피아노 한 곡을 치고
주변에 사람들이 둘러 모여 듣고는 박수와 환호성 -
끝나면 곳곳에 둘러 모여 담소를 -
새로 나온 화풍에 관한 토론을 하는 화가들과 거기에 관심있어
얘기들으며 자기의 의견을 피력하는 과학자들.ㅎ
세상 돌아가는 정세에 관해 의견들을 피력하고 -
새로 등단한 작가가 선배 작가들에게 인사하고
또 여러 얘기들이 오가는 풍경 -
그 사이에 집 주인인 마담이 우아하게 오가며 담소에 끼이기도 하고
^ ^ 뭐 그런 풍경들이 떠오르네요.
이후 이런 살롱은 까페 문화로 옮겨집니다.
까페 문화에 관해 퍼온 글을 보시려면 더보기를 클릭
19세기부터 살롱은 내리막길에 들어선다. 살롱문화가 수그러들고 계몽주의 시대가 지나면서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후, 카페(Café)는 살롱의 뒤를 이은 하나의 문화 공동체로 유럽의 문화를 이끌어 갔다. 카페는 향기로운 커피 한 잔을 탁자 앞에 두고 수많은 시인, 화가, 철학자들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담론을 나누고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
실제로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성지 순례하듯 카페를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카페에는 “당신이 앉은 이 자리에 고흐, 괴테, 바그너가 앉아 시를 짓고, 그림의 영감을 떠올리고, 악상을 떠올렸을지 모릅니다” 와 같은 글귀가 적혀있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파리의 한 카페에서 20세기에 길이 남을 명저를 집필했으며, 그들의 친구들과 함께 현대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이런과 쇼펜하우어는 이탈리아의 한 카페에서 처음으로 만나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고, 상드와 쇼팽, 리스트 등도 테라스에 않은 다른 작가, 화가들과 함께 담론 나누기를 즐겼다.
니체, 모네, 푸르스트, 괴테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카페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나누고 작은 모임을 가졌으니 카페가 유럽문화에 미친 영향력은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렵다.
카페는 개개인이 문화를 향유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온갖 소식과 정보가 모이고 고급담론의 중심지가 되다 보니, 이탈리아의 카페 ‘플로리아’에서는 이탈리아 최초의 신문 <가제타베네타>가 창립되기도 했다. 피카소와 아폴리네트 등 여러 화가와 시인들이 손을 잡고 카페 ‘폴로르’에서 문예지 <파리의 저녁>을 창간했으며, 앙드레 지드가 중심이 되어 출간한 <신프랑스 평론>도 이곳에서 창간했다.
이렇듯 ‘살롱(Salon)’과 ‘카페(Café)’는 훌륭한 인문학자들과 예술가, 과학자 등 영향력 있는 명사들이 함께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토론문화를 활성화시키며 문화 커뮤니티로써 유럽의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서정복님의 '살롱문화'라는 서적의 중요부분 요약정리본을 더 보실려면 더보기 클릭.
일부러 그러려고 사랑방이라는 이름을 지은 것도 아니고
또 살롱이라고 영문표기한 것도 아니었지만 -
어쩌면 이 사랑방의 잡다한, 경계없는 다양한 포스팅들이
살롱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 ^
마음에 드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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