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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말걸기 ◀◀/● 아딸라의 칼럼

[후기] 2002년 ETP 페스트를 보고 적었던 후기 -


 


2002년 10월 26일 날 있었던 Etp가 끝난 지도 어언 두 달이 다 되어가고 있다. 후기를 적어달라는 부탁에 지워져 가던 기억과 감흥을 쥐어짜려 컴퓨터 앞에 앉았다.

혹, 그 날의 기억과 티브이 시청한 이후의 기억들이 뒤섞여 ‘긴가민가’ 후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최대한 구별하여 적어보려 하니 알아서 가려주시기 바란다.

또한, 여러 사이트들에서 간단하나마 etp에 관한 후기가 올라왔던 바, 중복되는 부분들을 최대한 줄이고 내 나름대로의 감상을 적어보려 했다. 하지만, ‘후기’는 후기인고로 개괄적인 설명은 또한 필요하기도 하니 그런 골격부분에 아딸라가 제일 관심있게 봤었던 ‘서태지’ 부분을 중점으로 후기가 적어지게 됨에 양해를 구한다.

다음은 10월 26일, 본 공연때의 출연진들이다.

Pia, lee ssang , dope headz, Diablo. yg family, rize, scrape, hide, tommy lee, and,
SEO TAIJI.

그 전날, 전야제 공연을 보고 난 후, 그 다음날의 본 공연에 먼저 입장하기 위해 많은 수 ( 대략 300~400명정도였다고 들은 듯 하다. 하지만, 정확한 사실인지 필자 확인한 바 없음. -.-;;)의 매냐들이 잠실 운동장 구석탱이에서 밤을 샜다고 들었다. 입장 대기줄은 아침 일찍이부터 늘어서기 시작했던 것으로 생각되며 소지품 보관하기는 12시 반쯤 되어 마감이 되었다.

아딸라의 입장 완료 시각은 다행히도 피아가 공연하기 훨씬 전이었다. 그러나, 피아가 노래를 시작할 무렵에도 나머지 입장행렬은 아직 계속되고 있었다.

피아들,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잘 불렀고 연주도 좋았다. 그들은 아마도 입장이 완료되지 않은 시점에서 공연을 시작하게 돼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었을 듯 싶다.

리쌍. 내 생각으로 두번째 정도의 순서가 퍽 잘 놓여졌다고 생각되어졌다. 맨 처음에 놓기엔 락 페스티벌로서 분위기를 열기에는 좀 부족한 듯 싶었고, 흥을 돋우는 정도로는 그 곳이 적소였다고 생각된다. 무대는 대체로 무난했고 어느정도 파풀러한 멜로디에 나름대로 관객들의 호응도 얻은 듯 싶다.

도프 헤즈. Cat walk로 걸으며 가끔씩 혀를 내미는 제스처가 인상적이었던 도프 헤즈의 보컬. 나의 좁은 일본음악에 대한 이해의 틀 안에서 볼 때, 전형적인 일본 락의 향기를 풍겼다. ‘전형적 일본락’에 대해서는 그다지 선호하는 취향이 아니라서 뭐라 말하기 어렵지만, 지나치게 오버하지 않고 뒤처지지도 않은 의상과 헤어스타일은 마음에 들었다. 보컬의 창법이라든가 연주형태등뿐만 아니라, 확실하게 계산되어진 무대연출과 제스처, 그리고 의상등에서조차도 일본스런 냄새를 풍겼지만, 무대 위에 대한 환상 – 일반인과는 다른 세상을 사는 이가 연출하는 비 일반적인 퍼포먼스 - 을 심어주는 면에서는 확실히 성공한 듯.


한국 관객들의 열띤 호응에 무척 감동받은 듯한 표정이었다. 일본음악의 전파에 있어서는 황무지라 할 한국에 와서 이런 열띤 호응을 받다니…이제 성공했다.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들의 인터넷 후기에 그런 말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디아블로, 우리의 디아블로. 큰 무대에 오랫만에 서는 흥분이 관객에게까지 전해져 왔다. 흥분된 가운데에서도 조금 차분하게 관객들을 휘어잡는 여유를 보여줬더라면 매우 만족스러웠을 듯 싶었다. 하지만~!! 얼마만에 듣는 고래사냥이었는지. 디아블로들도 무대를 즐겼고 보는 우리도 그 무대를 즐겼으니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운 것 아니겠는가! 관객들은 이 때부터 기차놀이등으로 조금씩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YG family.  힙합이라 파워에선 조금 딸리는 것을 의식한 때문은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무대 위를 가수들이 그만큼 꽉 채운 걸 보다니. 힙합은 (어떤 의미에서는 ) 대중적인 노래고 힙합의상도 이제는 너무 일반화되어버렸다. 그럼에도 힙합이 (다른 의미에서 ) 대중화되어지지 못한 건 어떤 이유일까? 그들의 공연을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었다.

RIZE, 일본락의 정형성을 깬 일본락밴드. 펑키함에 랩까지 섞여 요즈음 미국의 신진밴드들의 섞어찌개식 음악성향을 이 일본밴드가 보여주고 있었다. 느끼함은 없고 신선함이 가득했으나 파워가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아직 나이어리고 감각은 있는 듯 하니 내년엔 또 어떤 식으로 발전했는가 지켜보는 일도 즐거운 일이 되리라 생각했다.

Scrape , 뛰며 굴리고 놀기에는 조금 그루브가 약한 곡들을 많이 연주했다. 하지만, 공연장에서는 점프하고 슬램하기에 적합한 곡들로만 선곡해야 한다는 것, 연주자의 입장에서 볼 때 진심으로 음악을 즐긴다는 면에서는 스스로에 대한 제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점프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각이 드는 순간, 음악에 몰두하기가 쉬워졌다. 방안에서 볼륨을 크게 높여두고 락음악을 듣던 그 순간의 느낌이 살아났다. 잦아들고 높아오는 음악소리들에 마음을 실을 수가 있었다. 각 악기파트들의 소리에 귀기울이게 되었고, 최초로 오디오를 사서 크게 볼륨을 높여 듣던 시절의 감동이 떠올랐다. ‘뚫린 공연장에서’ ‘큰 소리로’ ‘수준급의 연주’를 듣는다는 것에 대한 ‘순수한 감동’이었다.

하지만, 조금 아쉽게도 스크레이프 때의 음향상태가 그리 좋은 편이 못 되었다. 그 날의 음향상태는 대체적으로 좋은 편이었으나 고른 편은 아니었다.

스크레이프가 끝나고 저녁 어스름이 질 무렵부터 무대의 조명은 화려해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각형들이 줄을 지어 약간 비스듬하게 나열된 모양의 무대였는데, 나열된 사각형은 정돈됨을, 그리고 옆으로 누운 모양은 약간의 역동성을 주었다. 저녁이 되어 이 사각형들은 후면에서 연한 초록색의 조명을 받으며 빛났다. 물론 무대에 따라 주황색등 갖가지 색깔을 보여주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주조색은 초록색이었다. 태지의 인터넷전쟁 뮤비가 처음 시작되는 부분이 떠올랐다.

HIDE - 공연장을 입장하면서부터 입구에서 히데팬들이 많이 보였다. 기념품 부스 등등도 많이 보였었다. 아딸라가 히데를 알게 된 건 몇 년 되지 않는다. ‘일본음악’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도 흥미도 없지만, 히데만은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었다. 공연장에서 보여줬던 영상들은 이미 이전에 한번 이상은 본 것들이어서 대형화면으로 본다는 것, 그리고 큰 사운드로 듣는다는 것 이상의 감흥은 그다지 오지 않았다. 항상 느끼던 거지만, 세월이 흐른 곡인데도 지금 들어도 여전히 미래적이고 현대적이고 선구적인 느낌이 들었다. 음향상태는 그리 좋지 못했다. 실제 연주부분이 아니고 녹음된 듯한 곳은 음향이 부드럽지 못하고 조금 찢어지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 히데와 그 음악에 깊게 몰입하지는 못했지만, 그 무대를 지켜볼 히데팬들의 마음이 느껴져서 괜시리 나까지 슬픈 듯한 느낌이 들었다. 또한, 무대 위 영상 속의 히데 모습과 실제 연주하는 이들의 세월의 간극이 보여져 ‘세월무상’의 느낌도 들어 조금 서글픈 느낌도. 연주하면서도 관객들의 반응을 살펴가며 함께 호흡하려는 모습과 마친 후 성의를 다해 멘트를 외치는 그들의 모습에서는 인간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아딸라도 요로분, 쌀랑해요오~~~ ‘



TOMMY LEE, 거물의 저력이 느껴졌다. 전미투어를 하게 되면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무대에 선다고 하던가? 무대에 자주 서는 이의 노련함이 느껴졌다. 연습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냥 입을 열면 노래가 저절로 나오는 듯한 착각까지 들었다. 선곡까지 관객들의 마음을 읽는 듯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분위기를 띄웠다가 약간 가라앉혔다가 조금 댄서블한 음악으로 가볍게 놀아주다가 다시 강한 곡으로 , 자유자재로 관객들을 요리했다.
무대 위가 일상인 듯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보는 이도 편안하게 음악에 몰입할 수 있었다. 처음 보는 관객들임에도 너무도 허물없이 친근하게 대했다. 그가 먼저 마음을 연 것인지 우리가 그의 마음을 열게 만든 것인지 순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우리를 마음에 들어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는 순간, 우리도 (혹은 나도) 그가 좋아져버렸다.
또 한번 한국에서 볼 일이 있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마지막 피날레, 태지가 장식했다.

등장하는 순간, 잠실뻘이 공중으로 날아가는 듯 했다. 그 엄청난 함성소리. 그렇게도 보고파하던 목마르게 하던 우리의 서태지.

대경성으로 시작했는데, 다음의 연습실공개화면에서 살짝 맛보기로 보여줬던 바와 같이 환골탈태한 편곡으로 덧 입혀져 있었다.

강한 드럼소리와 빠른 비트의 인더스트리얼 계열의 음악들이 그 날 공연장의 분위기를 띄우는 데는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내가 느끼기에 사람들은 그 곡에 환성을 지른 것이 아니라 아마도 서태지 자체에 내내 환성을 저질렀으리라.

어쨌단 말인가? 그들은 이미 그 뮤지션과의 특이한 공감대를 쌓아 놓은 사이인걸.)

그 날, 거의 모든 곡들이 거의 신곡이라고 할 정도로 새롭게 편곡이 되어 있었다. 신곡을 공연장에서 라이브로 선보이기에는 조금 무리인 부분이 많죠….라고 예전 어느 인터뷰에서 태지가 얘기한 적이 있다.

거의 신곡에 다름 없는 곡들을 그 날 라이브로 들려주었다.

사운드가 그 날 그 모든 소리조각들을 정확하게 잡아줬는지는 잘 모르겠다. 무언가 새롭다는 느낌만 받았을 뿐, 대기를 부유하는 그 모든 작은 소리파편들을 나는 흘려듣고 있었다. 이후, 티브이 방영 때에서야 그 모든 것들을 알아차렸을 뿐.

공연장의 들뜬 분위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티브이 방영 이후에야 공연장에서의 기억과 방송 속의 공연장 소리를 비교하며, 태지의 그 ‘ 신곡발표는 라이브로 첫 선보이는 것 무리—‘라고 했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태지가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그런 큰 무대에서 선 것이 얼마만이었을까?

긴장되지 않았을까? 무대 위 태지는 열심히 노래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열심히 한다는 것이 부족함을 뜻할 수도 있다. ‘열심히 부르는’ 그 이상을 뛰어넘을 때라야 비로소 ‘플러스 알파’부분을 보여줄 수 있게 된다.

처음 태지가 컴백했던 그 무대를 기억한다. 긴장됨을 안으로 숨기고 열심히 준비된 무대를 보여주던 그 모습. 그 모습에서 처절한 외로움과 도전이 느껴져 가슴 시리도록 그를 사랑하게 만들었던 그 첫 무대. 열심히 허리를 꺾으며 헤드뱅을 하던 모습에서 그의 고독을 보았다면 지나친 오바일까?

이후 사전녹화를 여러 번 거치고, 아딸라가 처음 제 눈으로 그의 모습을 확인했던 이대 하드코아 페스티벌. 연습된 무대매너에 약간의 애드립이 더해져 자연스러움까지 더해진 그는 진정 절대지존이었다. 여타 인디밴드들 속에서 단연코 그는 군계일학이었고 우리나라 음악판에 군림하는 제왕으로 보였었다.

이후 연이은 콘서트, 드디어 막판의 앵콜콘서트 때는 그의 공연에서의 절정이었다고 생각된다. 음악이고 무대고 모두 그의 몸에 흡수돼 자유자재 모든 것을 휘두를 수 있는 자유로움과 능수능란함이 보였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흐른 후, 다시 etp.

오랜만에 선보이는 이 무대에 같은 곡과 같은 무대를 보일 리는 없다. 서태지이니. 새로운 곡에 새로운 무대. 그의 선택은 당연한 것이다.

새로운 것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감에서였을까? 라이브로 완벽하게 소화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였을까? 그의 긴장감은 그대로 내게 전이되어져 와서 나까지 긴장하게 만들었다. 제대로 진행되어져야 할텐데……..라는 약간의 불안과 긴장.

설상가상, 마의 인터넷전쟁. 작년 etp 때도 그러더니 같은 실수를 똑같이 저질렀다. 조금 과장하자면 이제 인터넷 전쟁 인트로만 들어도 점점 복잡하게 얽혀가다 반박자 돌림노래로 뒤섞이는 환청이 들리는 듯 하다.

필을 못살린다, 표현이 덜 되었다는 것도 아니고 ‘박자’ 하나를 못 맞추다니. 그런 큰 무대에서 말이다. 연습 부족. 성의 부족. 따이따이 가지고는 해결이 안된다. 반나절 손들고 있어야 할 듯.

공연이 진행되어져 가다가 한 순간 무대 위의 태지가 외로워보인다(힘들다? 긴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곡작업만 하고 무대위의 댄스등은 모두 주노와 양군이 책임지던 시절이 떠올랐다. 태지 옆이 참 허전해 보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정확하게 그 순간, ‘ 난 알아요’가 나왔다.



이후 티브이 방영분을 들을수록 태지가 편곡에 있어 천재적이라는 생각을 다지게 된다. 그는 자신에 대해 좀 더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는 말이다.

그 날, 공연장에서 라이브로 던져준 그의 노래들. 너무 정성스러워서 그런 자리에서 그렇게 흥분된 상태로 날려 듣기에 조금 과분한 선물들이었다.

사실 그날 난 태지에게 반할 준비를 하고 갔건만 그다지 반하지 못하고 왔다. 오히려 티브이 방영분을 듣고서야 그에게 진심으로 감탄을 하고 있었다.

(etp 후기를 아무 곳에도 안 올린 이유이기도 하다. )

내가 태지에게 건 기대치가 아주 높게 걸려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태지라면 태지 본인도 그 날의 공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오랜만의 무대라서 그럴 수도 있고, 흡족할만큼 충분하게 밴드들과 실전연습할 시간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혹은 비트가 강하고 빨라서 적절한 무대매너와 함께 편안하게 부를 수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공연이 끝나면서 든 생각.

연습한 만큼 보여준 것같다. 연습한 이상을 보여주려면 연습이 필요없을 만큼 되어야 할건데…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다행히도 그렇게 평가되어진다. 많은 관객 수, 대체적으로 매끄럽게 진행되었고 화려한 무대였다. 새롭고 천재적인 편곡, 멋진 의상. 여기에 그의 무대장악력만 더해졌다면 더 환상적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ETP 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이번 공연의 진정한 가치는 앞으로 계속되어지리라는 그 ‘연속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언제 귀국할지, 언제 새 앨범을 낼지, ‘약속’해서 ‘구속’되고 ‘제약’받는 것이 싫다고 했던 태지가 매년 가을에 락공연을 열겠다고 ‘약속’을 했다.

여기에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대학의 음대생들은 – 정확히 성악과 학생들 - 한달에 한번이상씩 공연을 한다. 자기들끼리 무대빌려서 공연을 하고 관람을 한다.
그들의 말인즉슨, 한번의 공연이 열번의 연습이상의 효과를 가져온다고 한다.

물론, 그 한번의 공연을 위해서 열번 이상을 연습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공연을 전제로 한 연습과 그냥의 연습은 그 긴장도면에서도 분명 다를 것이다. 무대에 오르자면 의상을 준비하고 실제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감정이 관객에게 전달되도록 모션도 취해주는 것도 연습해야한다. – 음대생들은 ‘연기’ 수업도 받는다. 뻣뻣한 장대가 노래를 아무리 잘해도 감동은 반감된다. –

실전과 똑같이 모든 것을 그대로 무대에서 실연해본다는 것이 실력향상에 무척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제 태지가 일년에 한번씩 공연을 하겠다고 약속을 한 것이 그에게 매우 발전적인 제약과 구속이 되리라고 믿는다.

곡작업이 이루어지는 때부터 대형무대와 공연을 염두에 두고 시작될 것이다.
또 흡수력 빠른 태지는 분명, 같은 무대에 섰던 다른 국제적 뮤지션들의 장점과 단점들을 잘 정리해 자기 것으로 만들 것이다.

변신해가고 발전해가는 태지. 매년 매년 지켜보면서 많이 즐겁고 뿌듯할 것 같다.




아, 그리고, 한 가지 첨언~!
태지의 이름이 ‘공연파 뮤지션’으로 사람들에게 각인되리라는 즐거운 기대도 한다. 가요 순위 1위에 오르는 것에 신경쓰는 것과는 다른 노선의 뮤지션말이다. 이것이 오래가고 저력있는 뮤지션이 아닌가 한다. 또한, 실력있는 밴드들이 이 페스티발을 타고 세상에 널리 이름이 알려지는 계기가 된다면 서태지의 이름이 뮤지션들 사이에서 또 하나의 권위로 인정되지 않을까 하는 응큼한 기대도 한다. 언론등 각종 공공집단에 대항해 꽤 외로운 모양새였던 태지가 하나의 사단을 이루며 힘을 합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비열한 기대까지.

또 한 가지 더 첨언~!

어떻게 보면 황무지에 씨뿌려두는 격으로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텃밭다지기에 이토록 많은 걸 투자할 수 있는 일본 음악계가 무척 부러웠다. 한국에 일본음악을 진출시킨다는 장기적 계획에 교두보역할을 하리라 기대하며 이번 페스트에 투자했을테지. 예전 태지의 화 공연을 방송하게 해 달라며 ‘우리나라음악계의 발전을 장기적으로 볼 때----- ‘운운해가며 방송국에 탄원서 적었던 기억이 떠오르며 갑절로 부러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