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 시절, 내게는 '초록 노트'라는 것이 있었다.
초록색이라는 것이 아니고 ㅡ.ㅡ;; 抄錄 노트.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들어 다시금 되새기고 싶은 구절이 있거나 할 땐 한 글자 한 글자 옮겨 적어보기도 하고
자습시간이나 혼자 공부하는 시간, 점심시간 뒤 다음 수업이 시작되기 전의 짜투리 시간,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으면 끄적거렸던 노트.
때론 보내지 않을 편지들을 적어 넣기도 했던 초록 노트.
아직도 큰 아이 방의 벽장 속 깊숙이에 보관되어 있다. 창고 정리를 하다가 문득 손에 잡히면 꺼내 예전 생각에
잠겨보기도 하는데 -
사랑과 우정의 차이점, 먼 훗날의 내 모습에 대한 상상, 자신의 욕심을 줄이는 방법, 사람의 양면성이 왜 매력있을까,
가을하늘에 설레는 이유,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의 글들까지 -
지금 봐도 여고생의 예민한 감수성이 담겨있으면서도 일면 유치스럽기도 한 글들이 빼곡하다.
그 초록 노트가 두 권이 있는데 두 권의 맨 앞장에는 공통적으로 당시 내가 생각했던 삶의 모토글이 두껍고 크게 씌여져 있다.
자연스러움과 단순함, 그리고 죽기까지 진실함......
아마도 어디선가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들어 적어 두고는 내내 다시 되새김질하려고 적어두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삶과 자신, 그리고 남을 대하는 태도로써 가장 멋진 것이 아닐까 생각했던 저것.
Natural, Simple, and Sincere . (혹은 Sincerity?)
자연스러움과 단순함이 결코 얕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듯. 죽기까지 지켜내야 할 자신의 진실됨이라는 것이 있으
려면 세상에 대한 기준이 서 있어야 할 것이고 지켜내고 버려야 할 부분들에 대한 자신의 자아정립도 필요할테니까.
오늘 많이 우울했다...
항상 그렇듯 내가 나답지 못하다는 선에서 조금 많이 벗어났다 싶으면 마음 속 한 구석에서 삐오삐오~ 빨간 경광등이
경보음과 함께 울린다.
얼음 위에 커피필터위로 커피물을 내리며 꺼이꺼이 소리내서 울다가 마침내 대성통곡을 했다.
태지때문에 운 것도 같은데 사실은 태지때문에 옅어져 가는 내 자신이 아까워서 운 듯 하다....
나 자신을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일들을 차곡차곡 진행시켜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부터 머리가 맑아졌다.
진실되기 위해선 지켜야 될 부분이 있고 버려야 될 부분이 있고 , 자연스워지는 과정중엔 나다운 것을 찾아간다는 것도 있을 터.
단순한 것은 내가 내 중심을 먼저 잡아야 된다는 단순한 진리. 모든 것은 단순하고 자연스럽다. 다만 진실되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있을 뿐....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내게 유효한 말.
자연스러움과 단순함, 그리고 죽기까지 진실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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