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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말걸기 ◀◀/●아딸라의 에세이

[옛글] 2001년 3월 31일을 추억하며 그 1년 뒤에 쓴 글.

 

 

창원공연보러갈 때 생각이 갑자기 나네요.

그 때 천천히 가도 된다는 남푠을 윽박질러서 아침일찌기 출발을 했었습니다.
절대 지존방의 앤드님을 같이 태우고요.

차안에는 남푠과 나 그리고, 두 아들, 앤드님, 이렇게 타고 있었습니다.
일찍 출발한 것이 너무나도 다행스럽게, 가는 길은 무지막지하게 막혔었어요.
평소 2시간이면 충분히 갈 거리인데 그 날은 8시간이상이 걸렸어요.


어느 구간은 핸드브레이크를 당긴 채로 1시간가까이 꼼짝 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1972방의 '태지군'님한테서 비행기 못떠서 못 만나게 됐다는 문자받고서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죠.

다행히 사서함에 공연이 연기되었다는 얘기도 좀 있다가 다시 문자로 받고 핸드폰으로 사서함 확인하고....조금 안심이 되었어요.

길은 꽁꽁 얼음판이었고 스노체인도 없이 정말 힘들게, 목숨을 걸고 갔었습니다.

'누구땜에 이 고생인지...'라며 궁시렁거리는 남푠을
' 그러게 누가 운전해달라고 했나, 했어? 나 혼자 운전해서 간다고 하니깐...집에 있지, 왜 고생을 자기가 자처하나?' 내가 더 큰소리를 치구...
불쌍한 우리 남푠...
'어어..그래 , 그래... 내가 좋아서 하는 일, 맞아..(깨갱)'
- -;;

(실은 남푠없이 나 혼자 재미있게 놀아보려던 것이 내 계획이었고, 잘 모르는 길을 혼자 운전해서 보낼려니 걱정이 되었던 게 우리 남푠 맘이었어요. 우리 둘 사이가 어떤건지 잘 아시겠죠? )

우리 부부, 이렇게 삽니다, 크크~~

겉으론 그렇게 큰 소리쳤지만 사실은 남푠이 운전해주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정말 무서웠어요. 눈앞에 그런 빙판길이 펼쳐져있는데 날더러 그 멀고도 험한 길을 뚫고 가라고 운전대를 맡긴다면....음~ 정말 막막했을 거여요.

낮이 가까와지고 눈이 조금 그쳐주기라도 한다면 한낮의 태양빛으로 조금 녹아 운전하기가 수월하지 않을까.....? 하늘을 쳐다보며 간절히 바랬었어요.

- 태지가 정말 가위손인가봐....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리니 울 아들이 묻더군요. 서태지가 눈내리게 한거야?

- 그런가봐...

- 그럼, 엄마가 눈 그치게 하면 되잖아.

가만히 아이눈을 들여다보다가 웃어버렸습니다.

손 한 쪽을 창밖 하늘을 향해 뻗고 크게 소리를 질렀어요.

- 이제 한시간 이내에 눈을 그치게 하겠도다.~~ 이봐요, 하늘님. 내 말 잘 듣고 좀 있다가 그치게 해줘요, 알았어요? 애브러캐대브러~~~ 얍~~ (실지로 이렇게 주문을 외웠음)

- 이제 좀 있다가 정말로 그치는거야?

난 고개를 끄덕끄덕~~ . 근데, 정말로 한시간쯤 지나자 눈이 그치는 거여요.

왓, 진짜 엄마말대로 됐다. 좋아하는 것도 잠시, 둘 다 갑자기 시무룩해지더니 마침내는 작은 놈이 막 우는겁니다.

- 으앙~~ 엄마, 다시 눈내리게 해줘. 엄마가 빨리 눈내리게 해 달라고 하란 말이얏~ 아앙~~~~

남쪽나라에 살아서 눈구경을 제대로 못해봤던 놈이 간만에 펑펑 내리던 눈이 좋았었나봐요. 아유.. 정말로 내가 한마디 말만 더하면 다시 눈이 내릴것 같은 느낌도 들어서 끝내 그 울음을 모른 척했죠.

- 안돼, 안돼. 우리 거기까지 갈려면 이제 눈오면 안된다아. 그러니까, 엄마가 내일 아침부터 다시 눈내리게 해달라고 좀 있다가 부탁할께. 알았지?

- ....정말? 약속해조...

손가락걸고 약속하고... (담날 눈 안 왔어요)

대신에 차가 꽁꽁 막혀 꼼짝 달짝도 하지 않던 그 시간에 아들들과 나, 앤드님은 차밖에 잠시 내려 아무도 밟지 않는 눈밭을 걷기도 했답니다.

산 길을 따라 있던 고속도로의  옆길, 숲을 따라 폭신하게 쌓여진 눈을 밟던 그 날이 생각나요.

세상이 하얗게 눈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시던 그 풍경들.

아이들은 눈을 뭉쳐 내게 던지고... 태지노래를 콧노래로 흥얼거리며 잠시 산책을 했습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느릿느릿 밀려오던 차들틈에 우리 차가 보이더군요.

마치 모르는 사람의 차인마냥 엄지손가락을 세워 차를 세웠지요. 아저씨, 차 좀 태워줘요!~

무슨 일인가 눈이 동그래져 내 쪽을 쳐다보던 그 뒤쪽 차 안의 운전사들~!!

공연을 보는 동안 남푠과 아이들은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답니다.
태지공연보는 엄마때문에 온 가족이 다같이 이상한 주말을 보냈어요. 객지에서 엄마도 없이 아이들 저녁을 챙겨주는 아빠. 그 시간에 난 미친듯이 헤드뱅을 하고 있었구요.. 말하다보니 나, 엄청 나쁜 여자군요...

돌아오는 밤길도 무척 위험스러웠고...하지만, 또 즐겁기도 했었고... 저녁을 못 먹은 앤드와 나는 휴게소에 잠시 들러 먹을 걸 잔뜩 사가지고 차 안에서 먹었죠. 아이들과 유치하게 텐더롤 한 개 더 먹겠다고 싸우기도 하고 ^^ 물에 흠뻑 젖은 머리를 해 가지고 가게에 들어서던 우리가 신기한 듯 자꾸 쳐다보던 휴게소 아저씨.

눈오던 그 날이 생각나요. 모든 게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2002년 어느 봄에, 아딸라가 >

 

 

* 이 글 속의 작은 아들은 당시 여섯 살.. 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이 시간도 나중에 돌아보면 즐거운 기억이 될까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