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얘기입니다.
굉장히 꼼꼼하고 두뇌명석한 남편이랑 결혼 초에 툭탁거리는 일이 많았습니다.
읽고 난 신문을 선맞춰 예쁘게 원래대로 접어 놓지 않았다고 타박주는 일도 있었습니다.
집에서는 좋은 일만 - 이라는 생각으로 대화가 필요할 때에는 꼭 집 밖의 까페로 같이 나갔습니다.
서로가 원하는 바가 뭔지, 어디까지 서로 맞춰 줄 수 있는지 ,
신혼 초에는 둘이 커피 한잔, 혹은 호프 한 두잔 앞에 두고 얘기한 시간들이 많았습니다.
다 풀고 다시 스윗홈으로 -
때론 못다 푼 숙제를 안고 집에 돌아오기도 했지만요.
함께 살다 닥쳐오는 인생사 힘든 많은 일들, 때론 속으로 원망한 적도 많았죠. 그 사람도 그랬을 겁니다.
상대가 조금 더 잘해줬으면 , 내 입장을 더 이해해줬으면 하고 야속한 마음을 가진적도 많았습니다. 그 사람도 그랬을 겁니다.
그래서.... 이즈음 저는.....
혼자 있는 조용한 시간이면 남편이 내게 잘해줬던 시간들을 차곡차곡 꺼내 봅니다.
그리고, 잊어 먹지 않도록 꼭꼭 잘 접어 기억의 서랍 속에 정리해둡니다.
언제든 외롭고 힘든 시간이 오면 다시 꺼내 볼 수 있도록 -
신혼 초, 새벽 6시면 출근을 준비하는 남편을 배웅하지 못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 때 저도 학생이라서 밤새 레포트준비하랴 새벽이 가까워서야 잠든 적이 많았거든요.
겨울 , 꼭두새벽에 동도 트기 전 출근하는 남편은 언제나 절 깨우지 않고 나갔습니다.
어느 날 잠결에 문득 눈을 떴는데 남편이 까치발을 하고 살금살금 거실 화장실쪽으로 가는 겁니다.
- 어.....안방 화장실도 있는데 왜 밖으로.....??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물으니 머쓱한 남편이 대답합니다.
- 어.......물소리 나면 깰까 봐 밖에서 씻으려구...
남편이 영국출장을 한달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김치 두 통을 직접 담아 싸 주고 없는 실력에 이것저것 준비해서 보냈죠.
간 지 두 주쯤 됐을 때, 큰 애 업고 나갔다가 결혼 예물시계를 잃어버렸습니다.
국제전화를 걸어서는 막 엉엉 울었었어요.
귀국하자마자 제 손을 이끌고는 부산의 그 시계가게로 가서 똑같은 걸 다시 사 줬습니다.
- 그 때 전화받고 참 당황스럽더라. 거기서 내가 당장 어떻게 해결을 해 줄 수도 없고 말이야..... 라고 하며.
백화점에서 직접 골라줬던 빨간 장미가 예뻤던 양산, 그것도 부산서 올라오는 길에 버스 안에 놔두고 잃어버렸습니다.
타박하지 않고 다시 가서 같은 걸로 사줬습니다.
좀 좋은 장갑을 사 주고 싶다며 백화점 가서 이것저것 끼워 주고는 빨간 가죽장갑을 하나 사줬었어요.
작은 여자는 빨간 장갑이 어울린다며 -
제가 화장방에서 화장하고 있으면 고개를 빼꼼 들이밀고는
- 하하, 이제 예뻐지는 변신중??
웃어주고는 다시 나갑니다.
같이 걷다가 싸구려 토스트 사 먹고 싶다고 조르면 이 집에서 제일 맛있는 걸로 주세요 - 하고 내 손에 안겨줍니다.
아구아구 먹어대면 그 모습이 추하다고 하지 않고 빙그시 보고 웃습니다.
왜 웃어??
- 응.. 네가 맛있게 먹는 걸 보니까 너무 좋아... ㅎㅎ
아침 출근할 때 내가 못 일어나면 이마에 뽑호를 다정하게 해 주고 나갑니다.
어떻게 자는 모습도 이렇게 예쁘지? 하면서.
일어나 배웅하는 날이면 하늘만큼 행복해합니다.
밥차려주는 날이면 일부러 더 아구아구 오바해서 맛나게 먹어줍니다.
하루 , 이틀 출장갔다가 왔을 때는 한달 못 본 사람같이 보고싶었다며 꼭 안아줍니다.
- 이렇게 입고 나가면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쳐다보지 않을까?
걱정스레 물으면
- 아니, 네가 예뻐서 다 쳐다보는 걸거야.
진심을 담아 말해줍니다.
- 오늘 미장원갔는데 머리해주는 아가씨가 날더러 분위기있게 생겼대, 우헤헤~~
잘난 척 해도 비웃지 않고 그냥 웃으며 말합니다.
- 그럼, 우리 아딸라(물론 실명대입;;;), 매력있어 .
내가 한마디 재치있는 농담을 한번 할라치면 며칠 내내 그 얘기를 다시 꺼내며 즐거워합니다.
일을 시작하거나 공부를 시작하거나, 하다가 문득 힘들다고 지친 표정을 하면
- 네가 재미있을 때까지만 뭐든 해. 하기 싫을 땐 언제든 관둬.
필리핀 가서 첫 날 전화를 못했습니다. 다음 날 전화했을 때 밤새 잠을 못 잤다고 했습니다.
- 숙소가 맘에 안 들면 그냥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돈 아깝다 생각말고 -
이렇게 말해줬습니다.
싸구려 네일 리무버를 쓰고 있는 절 보며 , 이제 나이도 있는데 너무 싼 거는 쓰지 말라고 말해줍니다.. (돈도 잘 못 벌어옴시로 - ;;)
제 앞에선 다른 여자 예쁘다는 얘기 한번도 한 적 없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며 - 와, 저 여자 탈랜트 너무 예쁘다. 와앙...부럽다.... 라고 얘기하면,
- 어디? 뭐가 예뻐. 맹해 보이는구마.
내가 예쁘지 않냐고 다른 여자를 두고 말할 때마다 꼭 한 가지 흠을 잡아내서 말합니다.
근데 저는 민호보면서 항상 헤벌레 하구 있구요,
좀 미안하기도 하지만,
사실 남편도 미수다는 지난 방송까지 하나티비로 챙겨 보거든요..ㅡ.ㅡ;;
수학, 과학, 지리에 강한 남편은 이런 것도 모르냐며 핀잔줄 때가 있고, 전 일반상식이나 문학작품, 작가등을 말했는데
멀뚱거리는 남편보며 어뜨케 이런 것도 모르냐며 비웃을 때도 있긴 하지만 -
그래도 대체적으로 보면 참 다정한 사람입니다.
흰 머리, 하얗게 세어서 예순 되고 일흔 될 때까지 저도 잘해주며 살고 싶습니다.
가끔 밉게 보일 때면 이 페이지를 다시 꺼내 봐야겠습니다. ^ ^; 내 머릿속에서 꺼내 보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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