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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원/강동원·article

[강동원] 필름 20 영화 M관련 기사

 

 

 

 

 

 

 

 '영화' 라는 유령을 좇는 이명세의 추적

 

이명세의 신작 [M]은 좀처럼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줄거리조차 변변하게 알려진 게 없다. 엇갈린 평가를 받은 [형사;duelist]의 뒤를 잇는 이명세 감독의 신작, 조각미남 강동원의 영화, 소설가가 첫사랑의 망령에 시달리는 이야기라는 게 알려진 정보의 전부다. 11월 11일 크랭크인해 촬영 중반을 막 넘긴 지난 주, 베일에 싸인 이명세의 [M], 41회차 촬영현장을 1박 2일동안 탐문했다.

장병원 기자 / 사진제공 : 프로덕션 M / 디자인 : 김지원

 

 

야심한 밤, 이명세 감독을 만나기 위해 남양주종합촬영소 춘사관(촬영팀이 기거하는 촬영소 내 숙소) 감독방을 찾아갔을 ??, 그는 왼손을 쓰지 못했다. 푹신한 소파를 짚고 일어서는데도 심한 통증을 느끼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영화 [M]의 클라이맥스 감정 신을 찍었던 그날 오후, 강동원 대신 실연을 해보이다 세트 구조물을 손으로 친 게 화근이었다. 첫사랑 미미(이연희)를 떠나보내지 않기 위해 주인공 민우(강동원)가 무언가를 절박하게 호소하는 장면에서 강동원의 감정이 쭉쭉 올라가지 않았던 것이다. "동원아, 진짜 미운 놈, 미웠던 감독이나 죽이고 싶었던 놈을 생각해봐." 배우들에게 시범을 보일 때, 이명세의 동작은 언제나 격하다. 강동원이 고함을 지르면 시범을 보이는 이명세는 악다구니를 하고, 이연희가 얼굴을 찡그리면 이명세는 거의 흐느낀다. 예전처럼 현장에서 연기를 자주 하진 않지만 배우가 감을 잡지 못할 ??,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실연을 한다. 망가진 왼손은 그 '오버 액션' 이 빚은 결과였다. 이명세는 왼손에 파스를 붙이고 인터뷰에 응했다.

 

 

 

21세기 신인 감독에게 무슨 일이?

 

2월 5일 남양주종합촬영소 제2스튜디오. 스탭들 사이로 이명세가 보인다. 해진 모자에 작업복, 파뿌리 같은 수염을 기른 이명세는 촬영은 시작도 안 했는데 부산하다. 평화로운 어느 휴양지로 신혼여행을 온 소설과 민우와 은혜(공효진)가 묵고 있는 호텔, 단꿈을 꿔야 할 신혼여행에서 악몽을 꾼 듯 잠에서 깨어나는 민우의 얼굴 클로즈업이 이날 찍을 첫 번 째 쇼트다. 촬영 직전 콘티가 바뀌었다. 하수구로 빨려들어가는 물의 원환운동을 눈동자와 조형적으로 일치시킨 알프레드 히치콕의 저 유명한 [싸이코] 욕실 시퀀스처럼 민우의 눈동자를 클로즈업하려 했으나, 빛과 그림자가 선명하게 나뉜 주름진 침대보에서 카메라가 움직여 강동원의 얼굴로 옮아가는 것으로 콘티가 바뀌었다. "빛을 보니까 침대 무늬가 재밌잖아. 침대보가 접혔을 ?? 주름이. 이걸 써먹으면 재밌겠네, 라고 생각했지." 이명세는 생각만 했고 홍경표 촬영감독은 생각을 말로 옮겼다. "감독님, 여기 침대보부터 가면 어떨까요?" 홍경표의 손은 벌써 주름에서 떨어지는 그림자의 패턴들을 보며 침대보를 매만지고 있다. 침대 주름이 만들어내는 기하학적 그림자 문양이 '빛과 그림자' 라는 [M]의 컨셉과 잘 맞아 보였다.

 

 이런 식의 결정은 현장에서 빈번하다. 대사나 약션, 캐릭터, 카메라 앵글, 구도, 시나리오까지 계속 바뀐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 감독님, 잘 모르겠는데요, 라고 했더니 나도 잘 몰라, 만들어가는 거지, 라고 하셨다. 그 ?? 안 믿었는데 촬영하면서 정말 모든 게 바뀌었다." 은혜 역을 맡은 공효진의 말이다. 배우들과 스탭들이 공유한 단 하나의 명제가 있다면,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 협력해서 좋은 영화를 만들자'는 것. "현장에서 조금씩 디테일을 바꿔가면서 만들어가는 맛이 있다. [M]은 편집과 흐름에 따라 확확 달라지는 영화"라고 홍경표 촬영감독은 말한다. '예전 이명세가 아니다'라는 건 현장에거 가장 흔하게 들었던 말이다. 이명세가 누군가? 좋게 말하면 꼼꼼하고 세심한, 나쁘게 말하면 지독하고 악랄하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M]의 이명세는 과거 '그 감독'이 아닌 듯 했다. '옛날 같았으면 밤 새야 할' 장면도 반나절 만에 선선이(?) "오케이"를 불렀다. 뒷짐을 지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으로 주위를 맴돌긴 했으나, 배우와 스탭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여느 상냥한 감독들과 다를 바 없었다.

 

 연기와 카메라에 대한 관용도 커졌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있도록 다양하게 찍지만, 아날로그 편집기인 이명세의 뇌 속에선 이미 편집이 착착 진행중이다. 더 이상 이명세는 망상에 젖어 사는 고독한 예술가처럼 보이지 않았다. 가끔 옛날 가락이 있어서 모니터 앞에서 배우가 된 듯 '연기'를 하기도 하지만, 시종 한 걸음 뒤로 물로서서 관망하는 자세를 유지했다. 그가 언성을 높이거나 안달하는 표정을 짓고, 고성이 오가고 누군가와 옥신각신하는 일은 없었다. 비타협, 고집불통 감독 이명세의 마음이 이렇게까지 열린 이유가 뭘까? "현장이 달라졌다는 걸, 이제 좀 감 잡은거지. 나도 경험이 생겼잖아."

 

 

꿈과 기억, 사랑의 이야기.

 

 두 번째 쇼트. 침대 위에 나란히 앉은 민우와 은혜. 민우가 서서히 고개를 돌리면 평온한 바다의 풍경이 보인다. 첫 쇼트의 카메라 무부먼트가 자연스럽게 두 번?? 쇼트로 이행된다. [M]에서 쇼트들의 관계는 이처럼 이전 쇼트와 이후 쇼트가 움직임과 리듬에 의해 연결되거나 대비된다. 마치 하나의 쇼트처럼 움직이는 셈이다. 자르고 붙이는 편집에 의한 연결이 아니라 움직임과 리듬에 의한 연결개념이다. 강동원이 고개를 돌리는 간단한 액션이 전부지만, 12번이라는 최다 테이크를 기록했다. 고개를 들고 돌리는 속도와 느낌 때문에 NG가 났다. "동원아, 카메라가 팬하는 것처럼 카메라를 좇아서 얼굴을 서서히 팬해줘." 고개를 돌리는 속도에 카메라가 맞춰주는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카메라 무브먼트에 강동원의 고개가 맞춰지기를 이명세는 바랐다. 고개를 돌리는 속도와 리듬에 대한 그의 주문이 까다로웠던 건 그런 이유에서다.

 

 '움직임'은 전작 [형사;duelist] (이하 [형사]) 의 핵심 개념이었따. [M]에서도 여전히 움직임은 중요하지만 '빛과 그림자' 가 새로운 컨셉으로 설정됐다. 말하자면, 이건 어둠 속 유령적 존재를 감지한 한 남자의 애절한 추적기다. 매력적인 외모를 지닌 베스트셀러 소설가 한민우(강동원)는 뒤통수에 머무는 기이한 시선의 존재를 느낀다. 돈 되는 얘깃거리를 재촉하는 편집장과 배금주의에 물든 속물 장사장(송영창). 여느날처럼 편집장을 만나고 돌아오던 민우는 '루팡 바'라는 기묘한 분위기의 술집에서 보라색 옷을 입은 환상의 여인을 만난다. 새로 구상한 글감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녀의 달콤한 노래도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약혼자 은혜(공효진)의 전화를 받고 잠을 깼을 때, 모든 건 사라진 뒤다. 자꾸만 떠오르는 보라색 옷의 여인은 그의 뮤즈이자 첫사랑, 안개처럼 다가 온 환상속의 여인 미미(이연희)다. 민우는 유령처럼 떠도는 첫사랑의 기억을 찾아 페매지만 미미의 뒤를 쫓는 또 다른 추적자가 두 사람을 갈라놓으려 한다. 몇 줄로 요약되는 줄거리만 보면 영락없는 멜로 드라마지만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홍경표 촬영감독은 "한국적인 처녀귀신 이야기이자 스릴러고, 공포영화"라고 말한다. 서스펜스와 스릴, 보이지 않는 추적자로부터 전해지는 공포 등 [M]은 전(全) 장르가 망라된 다층적 이야기다.

 

 단선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드라마와 장면들의 복잡한 뉘앙스를 스탭과 배우들에게 이해시키는 일이 쉽지는 않다. 콘티는 그렇게 말로써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의 주석으로 전재한다. 이명세가 만든 콘티에는 깨알같은 글씨로 각 쇼트마다 개념과 설정, 분위기, 인물의 동선, 대사, 카메라 움직임은 물론, 참조할 작품들의 목록까지 빼곡히 적혀있다. 히치콕의 [오명]과 [싸이코], 피카소의 '게르니카',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클림트의 그림들, 일상의 공간을 초현실주의로 둔갑시키는 사진작가 듀안 마이클의 사진, 라디오헤드의 뮤직비디오 등 전 예술 장르를 종횡으로 망라한다. "그림으로 그리면 오해가 생겨. 내가 전문 콘티 작가도 아니니까 원근법이나 대칭, 이런 걸 잘못 조화시키잖아. 그래서 카메라가 전혀 엉뚱한테 가 있는 경우가 있더라고. 개념을 한 번 갖고 시작하는 거지."

 

 

빛의 만찬과 세트의 매직

 

 신혼여행 호텔 세트는 불과 150만원을 드여 지은 '물건'이라고 믿기지 않는다. 실제 효과는 1천만원 정도가 들어간 세트에 맞먹는다. '저비용 고효율' 효과는 아이디어와 창의력의 산물이다. 바닷가로 난 통유리는 거리 세트에서 쓰인 스타벅스 협찬훔을 재활용했고, 바닥에 깐 타일은 다른 영화 세트에서 나온 폐품을 다시 썼다. 호텔 뿐 아니라 모든 세트는 재활용과 리모델링, 폐품활용으로 비용을 절감했다. 세트 디자인은 미학적 효율성에 기초해 이뤄졌다. 호텔은 침대와 거울, 스탠드 조명, 화병 등 간단한 일상적 소도구들이 배치돼 있지만, 팝아트를 연상시키는 영화적 공간이다. 옅은 하늘색 아크릴판으로 세작된 둥근 벽은 빛의 반사와 그림자 문양을 고려해 곡선형으로 디자인됐다. [형사]의 모딜리아니충 세트, [지독한 사랑]의 바닷가 세트를 합쳐놓은 듯한 느낌이다. '빛과 어둠'이라는 컨셉을 십분 구현할 수 있도록 아크릴이나 유리, 은박 따위의 반사(reflection)가 용이한 소재를 사용했고 빛을 집약시키거나 차단하고 흐트러뜨릴 수 있는 장치들이 곳곳에 포진돼 있다. 신혼여행 호텔 시퀀스 역시 현실과 비현실, 꿈과 생시가 뒤섞 아침, 밤 황혼 등 네 번씩이나 시간이 바뀐다. 그에 따라 빛의 세기와 질감도 시시각각 변해야 한다.

 

 모든 건 프로덕션 디자이너까지 겸한 이명세 감독의 '작품'이다. [M]은 세트 활용의 대가 이명세의 노하우가 빛을 발하는 영화가 될 것이다. 영화진흥공사 시절 [지독한 사랑]의 바닷가 세트를 처음으로 지어 '미친 놈'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이명세의 영화는 '세트'와 따로 생각할 수 없었다. [M] 역시 적게는 85%, 많게는 90% 가까이 세트에서 찍는다. 스타벅스와 명품 숍, 성형외과가 즐비한 청담동 거리, 신사동 가로수길, 코엑스 대로변의 교통체증을 세트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명세는 그게 가능하다. 은혜와 민우가 신혼여행을 떠나는 이국풍 호텔, 민우가 미미를 처음 만나는 루팡 바 등 총 10여개의 크고 작은 세트들이 지어진다. 이명세의 세트 미학은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남다른 응용력에서 나온다. 예컨대, 도심 한 복파에서의 교통체증을 묘사하는 신을 실제 도시에서 찍니는 힘들다. 이명세의 대안은 황량한 종합촬영소 주차장에 20여대의 차와 신호등을 설치하는 것. 썰렁한 그 광경에 모두가 아연실색 했으나, 결과는 놀라웠다. 화면에 담긴 건 갑갑한 러시아워의 트래픽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오병이어의 기적'같은 이 사건은 '이명세의 매직'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명세 영화에서 세트는 드라마와 캐릭터가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라 이야기이자 캐릭터이며, 개념이고, 감정을 확장하고 강화하는 요소다. [M]의 세트 미학에 있어 첫 번 째 고려점은 '빛과 그림자'다. "빛에도 효정이 있다. 따뜻한 빛, 공포스러운 빛, 슬픈 빛. 그런 감정과 뉘앙스를 살리려 한다"라고 홍경표 촬영감독은 말했다.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풍부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놓인 게 없다. 은으한 배경 조명으로 기능하는 스페이스 라이트와 모자이크 모양의 은색 반사판, 빛을 끊기 위해 늘어뜨린 블랙 천과 차단막은 '빛의 만찬'으로 불리는 장면들을 위해 동원된 장치들이다. 모든 건 카메라와 빛이 연기하게끔 만들기 위한 전략이었다. 빛과 그림자가 서로를 품고 그 뒤를 쫓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빛의 통제'는 절대적인 임무였고, 빛 통제가 용이한 세트는 숙명적인 선택이었다. 빛과 그림자의 군무로 스크린을 수놓으려는 이명세의 구상은 날씨와 기후, 환경을 통제할 수 없는 로케이션으로는 불가능한 '미션' 이었기 때문이다.

 

 

All for M

 

 오후로 접어들면서 하이라이트 촬영이 있었다. 두 대의 카메라가 유리창 바깥 바닷가 쪽에서 호텔방 안을 비춘다. 떠나려는 미미를 앞에 두고 민우가 이성을 잃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이 장면은 축제같기도 하고 전쟁터 같기도 하다. 호텔방 안에서는 강동원이 악다구니를 하고, 방 바깥에는 파라솔과 의자가 나뒹굴고, 파도가 유리창을 때리고 번개도 친다. 이별을 서러워하는 민우의 복받치는 감정이 바람, 파도, 번개와 서로 조응하는 장면이다. 유리창에 부딪치는 파도를 만들기 위해 [태풍]의 풍랑 장면에 쓰였던 물대포까지 공수해왔다. 이때, 홍경표 촬영감독이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감독님, 이건 테스트도 할 수 없고, NG도 없이 한 번에 가야 하는 장면인데요." 테스트나 NG가 날 경우 유리창을 닦아내고 바닥 청소를 다시 하는 '대공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한 번에 오케이가 나야한다는 것. 안과 바깥의 액션이 정교하게 계산돼 실행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긴급회의가 열리고, 유리창에 부딪치는 파독는 CG로 가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모든 건 그놈의 'M' 때문이다. 영화 (Movie)이자 꿈(夢,Mong) 이고, 미스터리(Mystery)이자 운동(Movement) 인 M. 강풍기 바람을 통해 모래 대신 콩가루가 날리고 끈을 매단 파라솔이 바닥을 뒹굴고, 방안의 강동원이 알아들을 수 없는 포효를 하는 이유도 가 그 'M' 때문이다. 번개 쇼트는 '애절한 운동'의 완성이다. 격한 감정을 토로하다 미미가 민우에게 안기면 섬광같은 번개가 치고 카메라는 줌인과 줌아웃으로 교차된다. 일종의 '번개에 의한 장면 전환'인 셈이다. 번개가 치는 이유는 '그 순간 안과 바깥의 개념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번개가 튀는 순간 경계가 사라지고 바깥이 안이 되고 안이 바깥이 된다. 민우와 미미가 밖에 있는 것인지, 안에 이는 것인지 모를 뿐더러, 그런 건 중요하지도 않다. 빛과 그림자, 안과 바깥, 현실과 비현실, 꿈과 생시가 하나의 프레임 안에 공존하는 그 장면은 'All for M'이라는 이 영화의 슬로건을 응축시킨 '절대 쇼트'였다. 이렇듯 프레임 안에 모인 다양한 시각적 요소들이 격렬하게 자기 감정을 토로하는 순간, '이명세 스타일'이라는 게 있다면 바로 이런 순간을 말한다. 프레임 안의 요소들이 침묵하지 않고 저마다 아우성치는 영화. 인물도, 날씨도, 소품과 카메라도 모든 게 움직이고 일치된 호흡으로 달려가는 영화.

 

 

애타게 '영화'를 찾아서

 

 [M]의 현장에는 인상 좋은 중년여성 스탭(?)이 한 명 있다. 어느 모로 보나 현장 스탭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녀는 이명세의 서울예대 은사이자 유해진, 성지루, 김수로, 임원희 등에게 연기를 가르친 송혜숙 교수다. 송 교수는 1978년 영화청년 이명세가 서울예전에 입학했을 때부터 그를 '천재'라고 생각하고 후원하다, 급기야 영화 감독 이명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다. '이명세의 미장센'이라는 제목의 이 다큐멘터리는 이명세 영화미학을 좇는 '카메라로 쓰는 작가론'이다. "민우가 첫사랑을 추적한다면, 이명세는 영화의 정체를 좇는다. [M]은 감정과 무드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빛의 움직임, 카메라 움직임, 프레임 수의 증감 등 다양한 영화 언어를 구사한다."

 

 [M]은 이명세의 모든것이 집약된 결정판이다. 시원적 사랑을 찾아가는 추적의 여정 ([첫사랑])과 달아나는 사랑에 대한 광기와 집착([지독한 사랑]), 연애와 결혼의 풋풋함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상이한 질들로 도약하는 상황들([남자는 괴로워]), 오디오 비주얼 이미지의 운동과 리듬의 군무 ([형사])가 모두 담겨있다. [M]은 첫사랑을 다루지만 그걸 묘사하기보다 첫사랑으로 인해 생기는 효과들에 초점을 맞춘다. 사랑의 기원을 찾아가는 추적, 떠나보내야하는 감정, 남아있는 자의 신경증 등 오만가지 표정들이 그 속에 담겨있다. [형사]가 감정의 대결을 전시한 기이한 액션영화였다면, [M]은 첫사랑의 기억과 꿈을 좇는 '유령'의 영화다. "영화가 실종됐다"고 한 이명세의 탄식처럼 영화는 이제 '유령같은 예술'이 돼버렸다. 가만히 나타났다 홀연히 사라지는 유령같은 첫사랑 미미를 애타게 쫓는 민우처럼, '영화'라는 유령을 좇는 이명세의 시네마토그래피는 그런 '세계', 현대영화에서 사멸해가는 영화다움의 잔재들을 되살리려 한다.

 

 돌아오기 직전, 마지막 점심식사를 하면서 이명세 감독은 "날씨가 도와줘 다행" 이라고 말했다. 아니, 90% 가까이를 세트에서 찍는 영화가 날씨 걱정할 일이 뭐 있을까? "날씨가 좋아야 사람들 마음도 풀리지. 추우면 배우나 스탭들도 날카로워." 아닌 게 아니라, 중간점검 후 촬영을 재개한 첫 날부터 날씨가 계절감을 상실한 듯도 했다. 둘째 날은 외투를 걸치지 않아도 춥지 않은 봄날이 온 것 같았다. 이명세는 전날 왼손에 붙였던 파스를 뗐고, 통증도 사라졌다고 했다.


 

낮에 연기하는 걸 봤는데, 배우를 해도 될 거 같다.
 
 요즘엔 잘 안하려고. 체력이 달려서. (웃음) 옛날엔 거의 실연에 가깝게 했는데, 요즘은 내가 원하는 게 이런 거라는 개념만 잡아줘. 얼마 전 경표 형 (이명세는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남자를 형이라고 부른다)이, 감독님하고 연기하는 배우들이 왜 힘들다고 하는지 알겠네요, 라고 하데. 난 배우가 카메라라는 연기자와 상호 교감을 해야한다고 믿어. 카메라가 배우를 따라가는 게 보통인데, 난 배우가 카메라를 좇고 따라주길 바라지. 상대 배우가 앞에 있는 것 처럼 카메라와 연기를 해야지. 카메라가 움직이면 같이 움직여주고 그런 거. 요즘 배우들은 카메라와 연기해야 한다는 걸 잊어먹었던 거 아닌가? 영화 연기라는 게 없잖아. 난 다들 이렇게 시키는 줄 알았던 거 같다. 근데 나만 이렇게 하고 있더라고. (웃음)
 
 
아까 현장에서도 배우들이 힘들어 보이긴 했다.
 
 거기에 대해서는 적절한 예가 있어. 히치콕이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영화를 찍을 ??, 걸어오다가 고개를 드시오, 라고 디렉션을 줬는데, 클리프트 왈, 고개 들 느김이 안 살아요, 라고 했대. 그 때 히치콕이 한 얘기가, 아 이 사람아 자네가 고개를 안 들면 그 다음에 성당 위로 연결시켜야 되는데, 카메라가 어떻게 가나? 간단하지. 난 여기 빛을 보여주고 싶은데 느낌이 난 산다고 계속 땅만 보면 안 되는 거지. 트랜지션(전환) 문제야. 공간, 쇼트의 트랜지션. 고개를 돌려야 팬을 하던지 할 거 아냐.
 
 
왜 팬을 하는지 얘기해줘야 하지 않나?
 
 그걸 내가 어떻게 다 알겠어. 그냥 좋아서 할 때도 있으니까. 태초의 성경말씀과 비슷해. 보시기에 좋았더라. 보기에 좋으면 좋다. 뭔가 설명할 수 없지만 보기에 좋아. 그러니까 미학의 시초는 성경이지. 영화의 시작도 거기고.
 
 
천지창조네.
 
 그렇지. 태초에 빛이 있었고 말씀이 있었지. 빛이 뭐야? 사물을 드러내잖아. 빛은 사물을 명명하는 거야. 불을 끄면 존재는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안 보이니까. 빛이 들어가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하지.
 
 
'빛나는 어둠' 이라는 컨셉도 그런 의미에서 나온 것인가?
 
 빛나는 어둠은 하이데거의 명제인데, 지금도 추적하고 있는 중이야. '어둠'이라는 게 영화에서 암부를 살리고 그런 문제는 아냐. 뭘 태동하고 있는 거지. 빛이 있는데, 무언가에 둘러싸여 있어. 어둠 속에. 청춘의 상태가 빛나는 어둠 아닌가? 빛을 잉태하고 있는 어둠. 빛이다, 어둠이다, 라는 개념 구분은 아닌 거 같아. 계속 좇아가고 있어.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 [형사]가 대결이라면, [M]은 빛나는 어둠에 대한 나의 추적이지.
 
 
빛을 조각한다거나 색을 입힌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조명부 친구에게 해주기 위해서 지어낸 말인데. (웃음) 우리가 빛을 끊자, 돌출시키자는 얘기들을 많이 하잖아. 기본개념은 돌덩어리 하나를 놓고 조각하는 과정과 같아. 누군가는 정으로 쪼개지만 난 빛으로 쪼개지. 그래서 조명부원에게 넌 빛의 조각사니까 잘해 임마, 그렇게 얘기해. (웃음) 영화는 종합적인 예술이잖아. 무지개 같다. 일곱 색깔의 총체가 무지개인 것처럼. 어, 이말 괜찮네. 영화 이퀄 레인보우. 제 7의 예술이니까 일곱 색깔 레인보우. 그러고 보니 영화가 무지개하고 비슷하네, 떴다가 사라지고, 빛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M]은 시기적으로 [형사]보다 먼저 쓰인 시나리오다.
 
 미국에 있을 때 쓴 거야. 에드거 앨런 포 소설의 분위기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시작했지. 포 소설에는 아름다움과 공포, 스릴 등 여러가지가 조화돼 야릇한 분위기를 만들잖아. 영화 속에서 그런 걸 할 수 없을까가 처음 생각이었어. 미국에 가서 다른 아시아 감독들처럼, 액션영화를 찍는 전철을 밟기보다 난 이걸 한 번 찍어보자고 했지. 요즘 히치콕 전기를 읽고 있는데, 그걸 보니까 내가 무성영화의 연장선상에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화면의 효과, 화면만의 어떤 것이 무르나우가 히치콕에게 들려준 이야기고, 나도 늘 주창해온 이야기거든.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찍을 때, 안성기 선배가 어떻게 이런 자세로 연기할 수 있냐고 했는데, 난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했어. 화면에서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현장에서도 히치콕 책을 들고 다닌다고 들었다.,
 
 히치콕이 꿈에서 오래 전에 [M]이라는 책을 준 적도 있어. 히치콕을 읽으면 인터뷰할 ?? 좋지. 질문하면, 히치콕의 어떤 책 몇 페이지를 보시오, 라고 하면 거기 답이 있거든.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 안과 밖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야기다.
 
 난 사람들이 한 번 쯤 거쳐가는 이야기만 해. 사람들은 누구나 꿈을 꾸잖아. 꿈은 일상적인 경험인데, 꿈이 다뤄지는 방식은 일상적이지 않아. 꿈 얘기가 나오면, 프로이드나 라캉, 데리다가 나오지. 어려운 쪽. 그래서 꿈 하면 어려운 거, 꿈 해몽은 쉬운데. 일상에서 우리는 돼지 꿈, 태몽 이런 얘기 많이 하잖아. 평생 꿈과 연결돼 있으면서 현실과는 별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첫사랑도 마찬가지야. 이게 첫사랑이야, 라고 사랑을 시작하는 경우는 없어. 지나고 나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거지. 몇몇 소설들에서 정의한 전형적인 첫사랑 때문에 유형화된 개념이지. 그래서 첫사랑, 하면 유치한 것, 옛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면 시간의 비밀이 있어. 현실과 비현실의 구분이 어디 있어? 사람들이 이걸 현실이라고 생각할 뿐이지.
 
 
 
스탭, 배우들에게 [형사] 때보다 많이 달라졌다는 말을 들었다.
 
 21세기 신인 감독으로, 그때는 완전히 신인이었고, 이건 두 번째니까. (웃음)
 
 
 
카메라 움직임이 많은가?
 
 움직일 이유가 있을 땐 움직이지. 모든 것은 움직인다는 게 원칙이긴 해. '살아있는 것은 움직인다.' 카메라가 고정돼 있고, 배우들이 침묵하고 있어도 움직이는 건 있지. 그래서 난 '정중동'이 아니라 '동중정'이라고 불러. 계속 흘러가고 변한다.
 
 
 
왜 그렇게 모든 게 움직여야 되나?
 
 영화가 곧 운동이니까. 증거를 해야 될 거 아냐. 영화는 영화다, 라고 증거하고 싶은데, 그것에 대해 엄청난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영화는 영화다, 라고 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 난 이론가도, 평론가도 아니니까, 계속 얘기하고 있는 거지. [M]도 그걸 증거해야지.
 
 
공포, 스릴, 서스펜스, 멜로 등 다양한 장르 요소들이 섞여있다.
 
 스릴이 떨리는 거 아냐. 공포는 무서운 거. 그게 다 영화야. 히치콕을 또 얘기하면, 서스펜스는 관객이 어떻게 영화를 흥미롭게 볼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거지. 지금 우리가 '서스펜스'에 대한 개념이 규정돼 있어서 그걸 좁게 보는 거지. 이를테면 [빌리 엘리어트]에서 통지서가 왔는데, 합격일까 불합격일까? 그게 서스펜스지. 근데 우리는 그걸 서스펜스라고 하지 않고 감동이라고 해. 통지서가 열리는 시간은 스릴이고. 멜로도 어원은 '멜로스], 노래하다. 세상에서 노래 안 하는 게 어디 있어? 멜로드라마는 남녀가 울고 웃는 드라마인가? 청춘영화면 젊은 애들이 나오는 영화인가? 규정돼서 그렇지, 정해진 건 없다니까. 채플린 영화를 코미디라고만 할 수 있나? 감동도 있고 사랑도 있는데.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구분에 빠져있으면 곤란하잖아.
 
 
 
이명세 영화는 여러 번 봐야 맛을 느낄 수 있는 영화 인 것 같다.
 
 어렸을 때 읽었던 [로미오와 줄리엣]은 지금도 읽을 수 있지. 나이 들어서 보면 이야기 뿐만 아니라 대사, 문장, 철학이 보이지. 오죽하면 셰익스피어 하나로 평생을 연구하겠어? 좋은 영화, 좋은 예술에는 보물이 숨어있는 거지. 좋은 사람이라는 게 뭐야? 같이 있으면 배울 게 많은 거지. 술값 내준다고 좋은 친구는 아니지. 영화는 흘러가는 거니까 그냥 버려도 된다? 우리가 그런 무가치한 걸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장사꾼에게도 상도가 있듯이 영화도 마찬가지야. 정성은 기본이야. 열심히 찍는 건 기본이지, 그게 잘 하는 건 아냐. 정성에 더해져야 하는 건 맛, 이왕이면 더 보기에 좋게. 왜 음식이 발전하겠어. 왜 초밥에 200알, 300알 넣었는지를 따져. 그게 더 맛나고 좋으니까. 그게 장인들의 발전과정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