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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말걸기 ◀◀/●아딸라의 에세이

오이에 관한 안 좋은 기억

 

 


 

 

 

 

 

며칠 전 오이 소박이를 담갔다.

 

만들어 보았자 나 말고는 아무도 안 먹는다. 큰 애는 오이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다 하고 둘째도 그다지 오이를 좋아하지 않고 남편 역시. 가족들이 안 좋아하다 보니 점점 오이로 요리를 만드는 일이 줄어져 왔다.

 

안 좋아하다보니 나만 먹으려고 만들기는 그렇고 해서 시장가서도 오이에 손이 안 가게 되었다.

 

이번에 오이 소박이를 만들게 된 게 아마 15년만에 만드는 것일걸?

 

 장에 갔는데 오이가 워낙 싸고 좋아 보여 열개 묶음 짜리를 덜컥 사게 되었다.

 

 

#  오이 소박이 만들기

 

굵은 소금으로 껍질을 바락바락 문질러 때를 빼고 소금을 뿌려 두었다. 위 사진은 바로 그 때의 컷.

 

하다가 뭔가 이상한 것 같아 요리법 검색을 해 보았다. 저게 아니고 끓인 소금물을 끼얹어서 그 소금물에 담가야 된단다. 그래야 아삭아삭 끝까지 맛있는 오이 소박이가 된다고. 아항~~ 그렇군. 옛날 고리적에 만들어 본 게 다니 까먹었다.

 

소금물에 절여 둔 오이를 꺼내 헹궈서 물을 빼고 가운데 십자로 칼집을 넣는다.

 

속에 넣는 건 부추랑 양파 채썬 것이다. 여기다가 색깔 좋게 당근을 넣기도 하던데 난 생략.  거기다가 젓갈, 고추가루, 마늘로 양념을 해서 오이 사이에 끼워 넣으면 된다. 부추 무침에는 마늘을 안 넣는다. 부추 자체가 향이 강한 향신료 야채라 마늘이 필요하지가 않다. 하지만, 오이 소박이 안에 들어 가는 부추 양이 적어서인지 레시피들마다 마늘을 다 넣었더라고. 내 생각엔 안 넣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 오이 소박이

 

초여름의 오이는 오이 냄새가 짙지 않고 가운데 씨도 굵지 않아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잘 먹는단다.  오이향 별로 안 짙대~ 라고 아무리 꼬셔도 아이들은 입에도 대지를 않는다. 싫다는데 어쩌리.

 

소금물에 절여서인지 씹을 때마다 머리가 울릴 정도로 아삭아삭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혼자 밥먹을 때마다 이 오이소박이 하나로 밥 한 그릇 뚝딱이다. 이러니 살을 못 빼지. 밥맛이 꿀맛인데 살이 어찌 빠지리...ㅜㅠ

 

 

# 오이향에 관한 안 좋은 추억

 

오이 냄새 맡다 보니 예전 생각이 난다.



 

# 그 얘기를 하기 전에 시장 주변 풍경 속에 있던 수입품상가에 관하여

 

내가 살던 부산 좌천동의 뒤에는 진시장이 있었다. 초대형 재래시장이다. 큰 시장 건물이 있고 그 안에는 코딱지만큼 작은 점포들이 미로처럼 길을 만들며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이불이나 옷, 한복 등 의류등이 많고 예전부터 혼수품들 파는 데로 유명한 시장이다.

 

난 여기서 예전에 쿠션 만들 천도 뜨고 직접 대형 쿠션을 만들기도 했다. 커텐 천도 직접 골라서 마 단위로 사서 근처 수예점에 가서 제작하기도 한다. 잡지에 있는 커텐 사진을 들고 가서 똑같은 거 골라 달라고 하면 천도 골라주고 수예점에 그 사진 들고 가면 똑같이 만들어 준다. 유명 브랜드 커텐의 반값도 안 되게 만들 수 있다.

 

이 얘기 하려는 게 아니고 ;;

 

그 시장 주변에는 먹자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순대국이랑 순대볶음등등. 장보러 왔다가 군것질하려는 사람들이랑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식사를 해결하는 곳이다. 이 얘기를 하려던 것도 아니다.

 

그리고, 큰 시장을 끼고 갖가지 작은 점포들이 거대한 군락을 이뤄 있다. 장난감 도매점들도 크고 갖가지 인테리어 용품들 도매점들도 있다. 샴푸, 머리핀등 잡화들을 파는 대형 도매점도 있다. 박스떼기로 소매점에 넘어가는 상점들이라 굉장히 싸다. 이 얘기도 아니다.

 

그리고, 거기 수입품파는 데도 있다. 헉헉 - 내가 하려는 말의 마지막이 이거다. 수입품 파는 곳.

 

여기 많은 추억들이 있다. 해외 직구로 먹을 것, 바를 것등등을 많이 사는 지금이랑 오버랩된다.

 

 

# 수입품 px 점에 관해서도 안 좋은 기억

 

아버지가 거기서 나 어릴 때 미제 빠다를 가끔씩 사 오셨다. 지금 코스트코에 파는 버터처럼 조그맣게 낱개 포장된 것들이 여러 개가 한 팩에 들어 있는 버터. 그걸 해체해서 한 개씩 따로 팔기도 했다. 아버지가 사 오신 그 버터를 따뜻한 밥에 넣고 간장이랑 잘 비벼 먹으면 꿀맛이었다. 매운 반찬 많아 밥먹기 싫다고 투정부리면 버터로 밥을 비벼 주셨다.

 

그 맛이 너무 좋아서 하루는 찬 밥에다가 그걸 비벼달라고 엄마를 못 살게 굴었다. 전자렌지라는 게 없던 때라서 엄마는 곤혹스러워하셨다. 찬 밥에는 빠다가 녹지를 않는다고 나를 얼마나 설득하셨었는지. 아무리 설득해도 난 요지부동이었다. 고집이 불통이라 발을 동동거리며 먹겠다고 울었다. 엄마도 지쳐서 하는 수 없이 밥을 비벼주셨는데 그 때 마침 아버지가 집에 잠깐 들르셨다. 아버지 눈에 불똥이 튀었다.

 

- 아니, 어떻게 이런 걸 애한테 먹일 수가 있어?

 

아버지는 당신이 집에 안 계신 동안 애들한테 무신경하게 먹이고 케어한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얼굴이 벌개지셔서는 엄청나게 화를 내셨다. 내 기억으로 밥그릇이 방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리고 응개져 녹지 않은 버터 덩어리와 밥알들이 방바닥에 쏟아져 흩어졌다. 난 그 기세에 놀라 구석에 숨어버렸고 엄마는... 우셨던 것 같다.

 

그 때가 내 나이가 아마 여섯 살 정도였던 것 같다. 엄마는 꽃같은 새댁이었고 아버지는 젊고 잘 생긴 젊은 남자였다.


 

여섯 살 때 기억은 엄청나게 많다. 이것말고도. 


옆 집 오빠가 마시고 밖에 내어 놓은 칠성사이다 병에 코대고 냄새맡았던 기억도. 달콤하고 향긋한 신기한 향이었지. 그 사이다가 과자집 나무 선반 위에 얹혀져 있어서 한참 올려다 봤던 기억도 난다. 옆 집 할머니가 여름에 대청마루에 앉아 길고 하얀 머리카락에 검정물 들이던 풍경도. 한 골목 위의 아줌마가 저녁 나절에 집 밖에 연탄 화덕을 내어 놓고는 그 위에 까만 후라이팬을 얹고는 감자채볶음을 하는 걸 구경했던 기억도 난다. 빨간 당근도 섞여 있었다. 그 날 저녁에 집에 와 엄마에게 우리도 그런 거 해 먹자고 했다. 냄새가 아주 좋더라고.

 

엄마가 학습지를 집으로 배달을 시켰는데 숫자 사이에 부등호 넣기 문제가 시험지 한 장 통째로 나왔다. 부등호라는 기호에 대해 이해를 못해 대충 아무거나 넣었는데 며칠 후 전부 가위표가 되어 빵점되어 왔던 것도 기억난다. 


  3    6

   5    5

    9    7


빨간 색연필로 인정사정없는 가위표. 되게 기분나빴던 기억이 너무 생생하다. 시험지 뒷 면 하단에는 예닐곱 컷 정도의 박스 만화가 그려져 있었다. 시험지는 풀기 싫고 그 만화만 재미나게 봤다. 언덕 위의 성 안에 공주가 살고 있던 한 컷을 오분 이상 몰입해서 봤었던 기억도 난다.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네. 전화하면 - 왜? 하고 대답하는 엄마가 계셔서 참 다행이다.

 

 

# 그래서 오이향에 관한 안 좋은 기억의 진짜 이야기

 

그 수입품 파는 데서 아버지는 해수욕장 가서 쓸 올리브 오일도 사 오셨다.

 

우리가 조금 커서 대학생 정도의 나이가 되자 거기서 화장품도 샀다. 랑랑 콩콩의 립스틱도 샀다. 에스tee  로더의 스탈릿 핑크 (starlit pink) 라는 색깔도 거기서 샀다. 


하루는 거기서 신기한 걸 하나 봤다. 엄청나게 큰 사이즈의 클렌징 크림이었다. 성의없는 반투명의 하얀 플라스틱 통이었고 역시나 성의없게 대충 겉에 초록색 프린팅 그림과 글씨가 박혀져 있었다. 오이 그림이 있었고 큐컴버 클렌징 크림이라고 적혀 있었다. 물론 영어로. 읽어 보니 화장을 지우는 클렌징 크림이었다. 대용량이므로 구두나 가죽 제품의 때를 지우는 데 펑펑 써도 된다고 적혀 있었다.


굉장히 쌌으므로 신나게 사 가지고 와서 썼다. 클렌징 크림, 뭐 발랐다가 금방 씻는 건데 싼 걸로 펑펑 쓰지, 뭐. 


지금 기억으로 그 사용감이 거의 양초 덩어리 수준이었던 것 같다. 촉촉이랑은 거리가 멀고 초를 굳혀 놓은 그럼 정도.


한 달 이상을 썼는데 나랑 동생 얼굴이 점점 이상해졌다.


동생은 원래 피부가 워낙에 뽀얗고 하얀 편이라 인간의 피부가 아니라고 할 정도였다. 오죽하면 친척 어른이 동생더러 '쌀벌레'같이 뽀얗다고 했을까? 쌀가루 분을 뒤집어 쓴 것 같다라는 뜻이었다. 방 안에 앉아 있으면 형광등 조명이 동생 얼굴로만 가서 비추는지 얼굴에서 빛이 나 주변까지 훤해 지는 아이였다.


그랬던 동생 얼굴이 점점 거무튀튀해지고 빛을 잃었다. 몸이 안 좋은 것도 아닌데.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상대적으로 피부가 좋았던 동생은 더욱 극적으로 표시가 났다. 


- 아무래도 저 오이 크림때문인 것 같아.


너무 싼 게 찝찝해. 국산 클렌징 크림을 다시 사서 화장을 지우니 며칠 만에 다시 원래의 뽀얀 얼굴로 돌아왔다.


그 오이 크림은 부가적인 기능이라며 적혀 있던 '구두를 닦는' 일이 주 기능이었던 거다. '영 닦을 클렌징 크림이 없으면 비상용으로' 화장도 지울 수 있고 원래는 구두나 닦는 그런 크림이었던 모양이다.


동생은 오이 냄새만 맡으면 그 왁스같던 오이 크림이 생각난다고 했다. 이후로 오이 비누도 쓰기 싫어했다.


오이향에 관한 안 좋은 기억...


역시 화장은 지우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소중한 체험.


오이 소박이를 먹으면서 그 클렌징 크림을 떠올리고 있는 중이다. 


내일은 동생한테 전화를 해 봐야겠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