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큰 아들 고등 학교에 가서 시험감독을 하고 왔습니다.
요즘은 중 고등학교에서 학부모 시험 감독제가 있거든요. 한 교실에 학부모 한 명, 선생님 한 명, 이렇게 두 명이서 시험감독을 같이 봐요. 내신 성적이 중요하게 되면서 감독에 대한 책임을 나눠 가지려고 이런 제도가 생긴 게 아닌가 싶습니다.
굳이 부정 수험생을 적발하려는 의미보다는 그러지 않도록 미리 사연에 방지하려는 의미가 있는 듯 합니다. OMR 카드를 교환할 때 또 다른 감독관이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긴장감을 줄 수 있겠죠.
저는 어제 1교시와 3교시에 감독을 했구요, 비는 2교시에는 컴퓨터실에 가서 학부모 앙케이트 조사를 온라인으로 했어요. 시험이 다 끝나고 나서 집에 오기 전에 아들이 있는 교실에 잠깐 들렀지요. 시험은 잘 봤니? 라고 인사라도 하려구요.
시험이 끝난 뒤 서로 답을 맞추어 보느라 교실 안의 학생들은 삼삼 오오 모여 있었습니다. 교실 앞문으로 고개를 디밀고 아들이 어디쯤 있나 찾아 봤어요. 제 옆에는 다른 어머님 한 분이 더 계셨구요. 그 분은 아들 초등학교 시절부터 내내 같은 학교라서 잘 아는 분이었습니다. 둘이 같이 교실 안의 각자 아들을 찾고 있는데 갑자기 -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중 한 장면 ;;
앞 쪽에 서 있는 학생 하나가 그 옆의 학생에게 펀치를 날렸습니다. 맞은 학생의 안경이 날라갔고 그 학생이 얼굴을 감싸는 순간 다시 반대편 주먹으로 다른 쪽 얼굴까지 세게 날리는 겁니다.
반사적으로 제가 손을 그 쪽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죠.
- 야아~~~!!!!!!!!!!!
때린 학생도 맞은 학생도, 교실 안의 모든 학생들이 제 쪽을 봤습니다.
- 그렇게 때리는 게 어디있어? !!!
남학생들 치고 받는 걸 실제로 자주 못 봐서 그런지 너무 놀랬거든요. 일단 멈추게 해야 되겠다 싶어서 소리부터 질렀는데 그러고 나서 보니 앞 쪽에 남자 선생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선생님이 계신 줄도 몰랐어요. 남학생들 덩치가 워낙 좋아서 그 속에 묻혀서 잘 안 보였던 거죠.;;
선생님이 그 쪽으로 다가가서 혼을 내기 시작.
- 이 자식들이 - 어디서 주먹질이야?!!
다음 순간, 제 옆에 계셨던 그 어머님이 교실 안으로 진입. 그 학생들과 선생님 앞으로 가더니 맞은 학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 야가 잘못했네, 야가~!!! ( "야가" 는 경상도 사투리고 "얘가" 라는 뜻입니다 )
그 상황을 처음부터 보지 못했던 선생님을 향해 본인이 본 것을 얘기해주는 거였겠죠.
주먹질부터 야가 잘못했네~ 까지 모두 5초 안에 다 일어난 일들이었습니다.
점심시간 때 시험감독봤던 어머니들과 그 어머니들의 아들들을 모두 데리고 근처의 중국집에 가서 점심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어머니가 거기 없었어도 데리고 오고 싶은 친구들도 데리고 와서 같이 식사를 시켰는데요, 남고생들이라 그런지 엄청 잘 먹었습니다. 끝도 없이 나오는 요리들을 금새 날름날름 접시를 비우는 괴력을 -
차범근 감독이 흥분해서 하던 그 말과 몸짓이 생각났습니다.
- 우리 모~~~두의 아들들입니다. 제 아들도 저기 있지 않습니까??
잘 먹는 모습에 어머니들 모두 흐뭇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서 다시 학교로 아들을 데려다 줬는데 아까 있었던 일에 대해서 아들이 한 마디를 했습니다.
- 어머니, 아까 그 일 때문에 우리 반 애들 얼마나 웃었는지 알아요? 내내 그 얘기만 했다구요. 어머니는 '정의의 사도 '엄마라고 하고 '야가 잘못했네' 했던 H 엄마는 '솔로몬 엄마' 라구.
일이 일어나고 바로 판정을 내리던 그 엄마...ㅎㅎ
그 일에 대해서 애들이 했던 말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H 엄마가 학부모인 걸 학생들은 처음엔 몰랐나 봅니다. 한 학생이 물었다죠.
- 아까 걔 둘이 주먹질하는데 웬 처음보는 할머니 샘이 한 명 들어오더니 '야가 잘못했네, 야가 ' 했어. 그 샘, 누군데?
옆에 있던 친구 왈,
- 그거 샘 아닌데 ? H 네 엄마야 -
- 어.... 가만 생각하니 할머니는 아니었던 것도 같고......... H 한테 말하지 마라?? !!!
남고생 눈에 어느 정도 되어야 할머니로 안 보이는지 -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주먹질을 하게 된 이유를 물으니 , 안 그래도 시험 결과가 안 좋아서 예민해있는데 옆의 그 친구가 툭툭 치면서 뭔가 신경을 건드리는 말을 했나 봅니다. 순간적으로 욱해서 주먹을 날렸고 이어서 반대편도 안으로 휘감아치듯 또 연거푸 펀치 - ( 안으로 휘감아치듯 때렸다는 건 우리 아들 표현 )
뭐라고 깝죽거리며 신경을 건드렸는지, 맞을만큼 얄밉게 무슨 말을 한건지는 그 H 엄마가 들었던가 봅니다. '야가 잘못했네, 야가 ~' 라고 때린 애 편을 들어 줄 정도였나 봅니다.
그렇게 싸우고도 사이가 괜찮아? 물으니 그런 일 다반사라고 - ;;; 그랬다가 또 금방 풀어져서 없었던 일인양 잘 지낸다고 합니다.
여학교시절을 보낸 저로서는 잘 이해가 힘든 남고생들의 교우관계 - 주먹질에 놀라서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지만 어쨌든 이러고 저러고 간에 - 다 우리들의 아들들입니다. 저기 제 아들도 있지 않습니까?? ㅎㅎㅎㅎ
시대는 달라도, 교복차림은 아니라도, 여전히 자기들만의 친구들 세계를 만들어가는 그들의 즐거운 고교시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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