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친정을 갔다왔습니다. 김장김치 얻으러요..
결혼 후 시어머니가 없는 울 시댁에서 첫 김치를 손 위 시누들이 담아주셨죠. 물론 저희 친정어머니도 같이 담아주셨구요.
그 다음 해부터는 받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 ㅎㅎㅎ 제가 집에서 혼자 김장을 50포기 가량 담아서 시댁에도 드리고 친정에도 드리고 시누들도 좀 드리고 그랬습니다. 이후로도 주욱 김장을 매해 제가 많이 담았는데요, 몇 해 전인가부터 제가 직장일도 있고 해서 혼자 담는 게 안되어 보이시던지 친정어머니가 담아주신다고 해서 받아오고 있습니다. 친정어머니도 사실 건강이 그리 좋은 편도 아니고 제가 웬간하면 안 받아 먹는다고, 드실만큼 조금만 해서 드시라고 해도 굳이 담아주시네요. 매년 김장담고 나서 며칠을 앓아 눕는데다가 그러고도 또 직장일이며 시댁일, 아이들 챙기느라 쉬지 못하는 제가 안스러우셨나봅니다. 김장담은 뒤에는 꼭 감기를 심하게 앓아서 2달 이상을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고 한달 뒤엔 엑스레이 찍어보고 마침내는 대학병원까지 가 보고 - 이게 꽤 오래 되었거든요. 어머니도 나 김장담아 주신 뒤에는 분명 나같이 앓으실 것 같아서 항상 마음이 편하지를 않습니다...
일주일전인가 집에 빈 김치통을 갖다 달라고 해서 갖다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저께 아침에 오늘 김치담으니 시간내서 가지러 오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부산으로 휑~ 하니 차를 몰고 내려갔지요.
김치 무치시는 어머니 옆에 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저도 이제 나이가 들었고 여러 모로 힘든 , 여자로서의 시간들을 겪어와서인지 어머니는 요즘 전에 안하시던 예전 서러웠던 일들을 자주 얘기해주세요. 김장담으면서 또 옛날 얘기들이 생각나셨는지 해 주시더군요.
저희 친정어머니가 딸을 넷 낳으셨어요. 제가 장녀죠. 제 아래로 주욱 딸을 연달아 낳으시고 또 이후 막내를 남동생을 낳으셨습니다. 그 때 저희 친정 아버지께선 막내임에도 어머니인 할머니를 모시고 사셨어요.
집에는 아버지 일을 도와주는 총각들이 5명정도 아래 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 시골에서 도시로 직장얻으러 올라온 젊은 남자들과 여자들이 많았었어요. 여자들은 거의 가정부로 들어가거나 공장에 취직을 하고 남자들은 힘쓰는 일을 주로 했습니다. 총각들 중에 성실하고 똑똑한 총각들은 조금 일을 배우다가 돈이 조금 모이면 자기 가게를 차려서 나갔구요, 저희 아버지가 아들처럼 계속 돌봐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살림이 크다보니 집에 가정부도 있었는데 가정부 언니들 중에도 참하고 그런 언니들은 시집도 보내주고 혼수도 해 주시고 그러셨어요. 중간에 집에서 일하던 총각이랑 가정부 언니랑 눈이 맞아서 집에 저금통이랑 통장 훔쳐서 도망간 적도 있긴 했었죠.ㅎ
어쨌거나간에 ㅡ.ㅡ;; 집에 사람들이 많다보니 당시 김장을 담으면 백포기 가량을 담았다고 하네요. 당시 반찬도 마땅치 않고 해서 김장 때 김치담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일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저희 할머니역시 옛날 사람이라 시모로서의 까탈스러움이 동네에서 유명할 정도였다고 하더군요.
제가 예정일보다 조금 일찍 나오는 바람에 - 마침 배추를 소금에 절여놓고 나니 진통이 와서 절 낳았다고요. 얼른 건져서 김치를 담지 않으면 아까운 배추를 다 버리게 될텐데 할머니는 손끝도 까딱 않으시고 - 마침내 절 낳고 사흘만에 어머니가 일어나셔서 그 김치 백포기를 다 씻고 담으셨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옆에서 ' 몸조리 잘 못하면....' 이라고 걱정을 하니, 할머니께서는 ' 괜찮을 사람은 뭐 낳고 바로 밭일 해도 끄떡없다~' 이러시면서 모른 채 하셨다고 하는데 -
어떻게 그런 일이 있습니까..ㅜ
제 네째 동생 낳았을 때는 마침내 딸을 네번째 낳았던 때라 - 극에 달하셨는데 국은 솥에 있으니 알아서 꺼내 먹어라고 하고 나가버리셔서, 차가운 미역국에 밥을 말아 드시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다고 하는......ㅜㅠㅠㅠㅠㅠㅠㅠ
제 시댁에 윗 형님이 딸을 둘 낳고 중단을 하셨는데 제가 결혼하기 전 아버님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우리 친정 부모님께 하신 말씀이 ' 집안에 손이 귀하다 보니 제가 이 아이한테 기대가 큽니다 - ' 라고 말을 하셨는데 친정어머니는 그 얘기를 듣고 마음이 천근만근..
혹 딸만 낳는 당신의 운이 저한테도 대물림할까봐서 그 때부터 제가 첫 아이를 낳을 때까지 어머니의 걱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죠. 엄마닮아 그렇다는 얘기들을까봐서요...
아들을 둘 낳은 뒤에 가장 기뻐해주신 것도 친정엄마세요. 시어른들도 다들 기뻐해주신 건 사실입니다.. 아이 낳고 아버님은 한달음에 병원으로 달려오셨죠. 기뻐하시던 표정은 아직도 기억에 선합니다. 하지만, 그 아이를 큰 집에 양아들로 주는 건 어떠냐고.. 애 낳은 지 만 하루가 안 지났을 때 얘기를 하더군요. 그 이후에도 제가 또 아주 편해지거나 한 건 아니거든요... 아들을 가진 엄마로서의 책임등이 더 강조되고 있죠...
시대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자로서의 삶은 여전히 이 땅에서 그리 녹녹치는 않은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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