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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말걸기 ◀◀/●아딸라의 에세이

[이야기] 학교시절 합창단으로의 추억여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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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창을 열었네요...

항상 열기도 전부터 그 많은 말들을 어떻게, 어떤 순서로, 어디까지만 풀어야 할 지 머리가 무거워져

그만 포기해버렸었는데... 오늘은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 추억 여행을 떠나보려고 합니다. 다 쓰기전

취소버튼을 눌러 버릴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연주회 뒷풀이 때 정훈이형을 만났지요, 정말 딱 1분정도의 인삿말과 악수를 나누고 돌아섰습니다.

생각해보면 졸업 후 근 20년만이었는데 아쉬운 만남이었습니다.

 

아쉽던 차에 연주회 후기를 적으러 까페에 접속했더니 정훈형도 동접해있더군요.

형이 대화신청을 해서 몇 자 적어나가다보니 자판의 속도로는 할 말들을 다 풀어내기가 어렵다고 생각되어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그 곳에서의 생활, 제가 여기 울산와서 살면서의 이야기들, 선영이의 안부, 그리고 함께 공유하고 있던 학창시절의

추억들을 떠올려 얘기하다보니 문득 옛 기억들이 밀려왔습니다...

 

제가 어쩌다 서울을 어렵게 가거나 하면- 간다고 날을 잡고 마음먹는 것도 힘들지만,

가서 여러 가지 일의 스케쥴을 조정해서 한다는 것이 어렵더군요. 

간 김에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 보리라 계획을 세워보지만 막상 가보면 그 모든 것들을

해 내기에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또 이동할 거리는 멀고 체력은 따라주지 않고.

 

형도 오랫만에 나오는 한국행에 어쩌든지 합창단 연주회 날짜와 맞추어 보려했겠지만, 어렵게 나온 한국행이

기에 어른들도 뵈어야 할 거고, 다른 친구모임도 있었을 겁니다. 부산에서도 여기 저기 흩어져 있었을 테고,

서울에도 친구들이 있을테고 . 더운 나라 있다가 들어오니 건조하고 찬 날씨에 목감기 전조기운이 보여 컨디션

조절을 하느라 호텔에 박혀 마음대로 다니지 못했다고 하던데, 전 그 안타까운 마음이 이해가 되더라구요.

 

 

이제 가면 언제 오나....ㅎ 한국을 다시 뜨며 다음 만남을 확신하지 못하는 그 마음도 알 것 같았구요..

 

전화 통화로도 다 풀어내지 못했던  옛 기억들을 한번 저 혼자라도 더듬어 보려구요... 이 글쓰기 페이지를 열었

습니다....

 

 

 


 

<비오는 날이면 떠오르는 기억들 >

 

약대 옆 합창단 사무실...

 

윗층엔 천문학회사무실이 있었죠. 저녁에 해가 지기 시작하면 망원경을 들고는 쿵쾅거리며 옥상으로 향하던 그 친구들.

지금도 가끔 별을 보며 옛 시절을 떠올리고 있을지 말입니다..

 

합창단 사무실의 나즈막한 계단을 올라 사무실의 삐걱거리는 문을 엽니다.

 

널찍한 테이블이 두....개가 놓여 있고, 의자들이 빙그르르 둘러져 있습니다.  그 한 켠엔 남자 선배들이 둘러 앉아

포커판을 벌이고 있네요..

 

쪼으기가 최고야, 아니, 원카드가 그래도 최고지. 아니, 쪼으는 맛이 있어야 카드놀이를 하는 거야.

 

테이블 위와 의자 위에는 책가방들이 수북하게 놓여져 있습니다.

무거운 책가방을 , 도서관 자리를 잡지 못한 우리 합창단 사람들이 거기에 두고 수업을 간 겁니다. 그리고, 수업비는

시간엔 항상 들렀다가 다시 이동하는 중간 통로이자 우리의 아지트, 사무실...

 

피아노 앞에는 서툰 피아노반주를 하는 어느 여학생이 보이고, 그 옆에서 열심히 노래하는 몇몇의 무리가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노래를 하는 이도, 통기타를 두드려주는 성근이형도 없고 조용한 사무실의 오후풍경입니다.

창가로 다가갑니다. 창문 사이에 걸려 있는 투박한 나무 테두리의 대형 거울 하나. 거울 속엔 22살의 아딸라가 날 들여다

보고 있네요.

 

조그맣게 격자 테두리가 둘러진 창 가에 서서 하릴없이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멀리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후두둑 빗방울이 치기 시작했습니다. 나무 끝의 이파리들이 빗방울로 흔들리자 마자,

머리에 책가방을 이고는 비를 피해 달려가는 학생들이 보이는군요.

바닥은 점점이 동그란 비무늬를 찍어내더니 금새 푹 젖어 버립니다.  멀리서.... 성근이 형이랑 우리기 남자애들, 여자애들,

또 지금 이름도 잊어버린 선배님들이 달려옵니다.

 

문을 열고 비를 털며 들어서는 그들은 비냄새를 품고 들어왔습니다.  잠시 둘러보다가 모여 앉은 우리들은 언제나 그랬듯

기타소리에 맞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용히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니...

 

소리없이 내리는 비를 생각해.... 어젯밤 꿈에 내린 비...  살그머니 땅위에 내려 앉더니... 우리의... 추억을 얘기해.....

 

 

 


 

< 가을의 밤하늘에 걸린 둥근 달을 볼 때면 떠오르는 기억 >

 

예술대 합창 연습실에서 그 날의 연습을 마쳤습니다.

 

몇 몇은 예술대와 약대를 연결하는 그 숲 사잇길로 사무실을 향해 내려갔습니다. 솔잎이 떨어진 푹신한 숲길도

운치가 있지요. 발 아래 바위들을 잘 살피며 조심조심 내려가는 우리 합창단 사람들이 있습니다. 힐을 신은 여학생들이

안전하게 발을 떼나 간간이 뒤돌아보며 살펴주는 남학생들도 있군요...

 

그 날, 지휘하던 성민이형과 몇몇 여자 합창단원들은 그 옆 길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가을 밤바람이 제법 쌀쌀했습니다. 옷 속을 파고드는 가을 바람이 상쾌했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동그란 달이 떠

있었습니다....

 

아... 가을이구나........를 느끼는 그 순간, 노랫소리가 맑고 청아하게 밤하늘의 달님에게까지 닿는 -

 

산들 바람이~~ 산들 부운다~~~~~~~~~~~~~~~~~~~~~~~~~~~~~~~

 

달밝은 가을 밤에~~~~~~~~달 밝은 가을 밤에~~~~ 산들 바람 부운다~~~~~~~~~~

 

아 ----------- 너도 가면 - 이 맘을 ---------------------어이해 ---------------

 

청명하던 그 노랫소리 -

 

듣던 우리들은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으고 아항~~ 너무 조아~~ 진짜 가을인가봐 - 작게 탄성을 질렀던 그 날 밤.

그 달님,  그 노랫소리 -

 

그 뒤 수없이 반복되던 가을과 달님이 뜨는 교집합의 날, 그리고 운 좋게 바깥에서 그 둘이 만나는 걸 보는 날마다

피곤함을 모르게 리와인드 되는 내 기억들의 재생.

 

산들 바람이 분다. 아. ~ 이 마음을 어이해 -

 

 


 

< 술먹고도 꼿꼿한 사람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기억 >

 

정훈이형은 술 취한 모습을 잘 안 보여주던 선배.

 

어느 연주회를 마친 뒷풀이 식당에서의 기억.

억지로 권한 술에 얼굴이 빨개지다 못해 목까지 홍인으로 변해버렸던 정훈이형.

꼬장을 부릴까? 화를 낼까?? 울까?? 혹 테이블 위로 올라가지는 않을까?? 

 

기대를 깨고 - 연신, 아아, 어지럽다... 이러면서 몸을 가누려 눈에 힘을 빡빡 주던 그 날. 

 

그 식당은 지하에 있던 식당이었고 마무리 인사를 하러 정훈이 형이 중앙으로 나갔던 때였습니다. 술취한 본인의 상태가

스스로도 납득이 안 되는 듯, 아아...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 취해서....;;; 얼굴이 빨개서 연신 사과를 하던 그 때의

정훈형은 21살의 *정훈..ㅎㅎ

 

 


< 지는 노을을 볼 때면 떠오르는 기억 >

 

사무실 앞 숲을 등지고 놓여있던 벤치들.

 

거기 성근이형이랑 앉아 있었는데 저기 멀리서 우리 동기 남학생 하나가 다가왔습니다.

멀리서 보니 제 치마입은 모습이 아스라해서 어쩌고 저쩌고 - 뭐라고 하면서 다가왔었습니다.

 

이미 그 때 시각이 해가 질려고 하는 시각, 태극기 게양대에 태극기라 내려지고 있었습니다.

애국가를 조그맣게 선창하던 누군가.. 키득거리다가 조금 따라부르다가 -  

 

어디선가 낙엽태우는 냄새가 났습니다. 누군가 불장난을 하고 있었던 듯..

 

낙엽타는 냄새, 가을이 타는 냄새 - 뭐 이런 떠오를랑 말랑하는 외국시를 제가 그 때 읊었던 듯도 하구요. 

성근이 형이 기타를 들쳐매고 국기 게양대가 있는 스탠드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퍼져 앉았습니다.

 

똘마니들인 우리들도 뒤따라 옆에 가 앉았죠.

 

- 아딸라, 아무 노래라도 한번 불러봐요. 내가 반주해줄테니.

- 아는 노래가 별루 없는뎅 ;;;;;

- 500 마일이라는 노래 알아요?? 이프 유 미스 더 트레인~~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

- 아, 그 노래는 알아요.

- 함 불러봐요.

 

If you miss the train I'm  on you'll know that I am gone.

You can hear the whistle blow a hundred miles
A hundred miles, a hundred miles
a hundred miles, a hundred miles
You can hear the whistle blow a hundred miles

하늘에 붉게 노을은 내리고 - 어디선가 낙엽타는 냄새가 나고 -

성근이 형의 기타 반주에 맞춰 부르던 내 노랫소리는 어찌나 청승맞던지....

 

당신은 백마일 밖에서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에요.

기차를 놓치고 나면... 내가 떠났다는 걸 알게 되는....

백마일.. 백마일...하고 또 백마일이 다섯번인 오백마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