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머리칼이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날리고 있었을 때 왜 나는 자꾸 왼쪽으로 왼쪽으로만 가고 있었을까.
기우는 달빛때문이었을까. 나무는 나무들은 바람 따라 따라서 가 주고 있었는데, 세상의 물이란 물들이 흐르는 소릴 들어 보아도 그렇게
그렇게 가 주고 있었는데 나는 왜 그게 아니 되었을까. 진실이란 어떤 것일까. 있는 대로 있는 대로만 따라 가 주는 것일까. 아니라고 아니라고
하는 것일까.
바람 바람이여, 그 동안 나는 꽃을 돌멩이라 하였으며, 한 잔의 뜨거운 차를 바다의 깊이로 바꾸어 놓기도 하였다. 믿지 못할 일들이었다는 생각이,
부질없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지금 와서 어둡게 어둡게 나를 흔든다. 가슴을 친다. 알 수 없어라.
길가의 풀잎에게 물어 보았을 때 그는 바삭거리는 소리만, 바삭거리는 소리만 세상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때 그가 왔다. 먼 길을 걸어 온 사람, 그런 모습으로 그는 거기에 있었다. 그의 눈빛은 빛나고 있었다.
그는 그의 가슴 깊이로부터 한 두레박의 물, 물을 길어 내게 건넸다. 나를 씻었다. 한 두레박의 차고 시원한 물, 이것이 바로 영원이라 하였다.
빛이라 하였다. 늘 차고 넘쳐서 그는 하루를 하루로 끝낼 수 없다 하였다. 하루가 모자란다 하였다. 잠들 수 없다 하였다.
영원에 당도하고자 하는 자의 꿈, 그곳에 이르고자 하는 자의 아픔, 열리지 않는 문, 그가 나의 문을 열고 당도한 것이라 나는 믿었다.
그는 나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했다. 하느님의 체온이 거기 머물고 있었다. 알 수 없어라.
내 가는 곳까지 아무도 바래다 줄 수 없다고 모두들 말하지만,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알 수 없어라. 그가 내게 당도하였다는 것은.
영원에 당도하고자 하는 자의 꿈, 그런 꿈의 깊이에 우리는 함께 이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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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규님의 산문시인데요, 이것 역시 프린트된 원본을 제가 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학교시절의 초록노트에 제가 손으로 적었던 겁니다.
아마도 제 친구 중 누가 이 시가 담긴 책을 갖고 있었는데 당시 복사같은 것이 그리 쉽지 않았던 때라서 점심시간등을 이용해
열심히 공책에 옮겨 적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행간 바뀜등이 제 자의적으로 ;;;; 원본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 때는 그저 뭔가 멋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옮겨 적었는데 이즈음 읽어보니 생각을 하게 하는군요.
믿고 주장하던 것의 부질없음, 어쩌면 그것들이 틀린 것일 수도 있다고 깨닫는 순간 그가 나타난거죠.
구원자?? 신이었을 수도, 혹은 인생의 큰 가르침과 영감을 준 어떤 이였을 수도 -
이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될 것을 꿈꾸는 이의 희망일 수도.
그야 말로 ' 영원에 당도하고자 하는 자의 꿈' 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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