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세 감독의 영화 ‘M’(25일 개봉)은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진 흥미로운 영화이다. 어느 캐릭터를 따라가느냐, 어떤 장르적 문법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관객 당신이 어떤 기억과 추억을 가지고 있느냐에 그 ‘느낌’과 ‘영화 보는 재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영화가 그렇지만, ‘M’은 그 강도가 더 하다.)
‘M’의 줄거리 얼개는 간단하다. 소설이 제대로 써지지 않는 천재 소설가가 문득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어쩌면 애써 잊으려 했던 첫사랑을 기억하고, 그 기억을 뒤쫓아가는 이야기이다.
화려한 이력에 멋진 외모까지 갖춘 천재 베스트셀러 작가 한민우(강동원). 매력적인 약혼녀 은혜(공효진)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지만, 정작 그의 일상과 내면은 폭발 직전이다. 사채를 끌어다 쓴 가족들은 그에게 손을 벌리고, 자신을 포함해 속물덩어리인 세상에 넌더리가 나있다. 게다가 상상력은 고갈돼 소설은 단 한 줄도 쓰지 못한다.
잦은 불면에 시달리고 신경이 예민해져 가던 그는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어둔 골목 안 술집 루팡바에서 자신을 쫓아다니는 미미(이연희)를 만난다. 그리고 오랜만에 찾은 고향에서 그는 옛 기억과 조우하고, 낯익어 보이던 미미가 자신의 첫 사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데 미미는 어디로 갔을까.
어느 날 문득 찾아온 첫 사랑의 기억이라는 익숙한 로맨스를 이명세 감독은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낯선 미스터리로 풀어낸다. “모든 사랑은 수수께끼 같고 미스터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감독의 설명이다. 그래서 민우와 미미의 이야기, 민우, 미미, 은혜의 사랑이야기는 어디까지가 민우의 꿈이고 현실인지 분명하지 않게 전개된다. 어쩌면, 모든 것이 민우의 소설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아픈 첫사랑과 쫓기는 스릴러의 낯선 결합 위에 ‘M’은 사라진 시간에 대한 아련함, 그렇게 아름답던 추억마저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삶의 쓸쓸함을 말하고, 삶이란 버리고 싶은 상처도 껴안고 가야 하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들 삶과 사랑, 기억, 아픔과 상처는 눈부신 환한 빛과 불안한 어둠을 오가며, 감독 특유의 아름다운 미학적 외피를 입고 관객 앞에 나선다.
지난 주 열린 ‘M’ 시사회 뒤의 풍경도 이같은 ‘M’ 텍스트의 풍부함을 보여줬다. 물기 어린 눈가를 닦는 사람 옆에 ‘기억조차 이기적이군”이라며 쿨한 사람도 있었고, 미스터리에 초점을 맞춘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잊어버린 첫 사랑의 이야기로 읽어낸 사람도 있었다. 감독이 곳곳에 넣어 놓은 코믹한 웃음을 기억하는 사람도, 멋진 미장센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M’이다.
최현미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