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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원/강동원·article

[강동원] 엔키노 - 소녀들의 욕망의 모호한 대상 -

 

  

 

 

 

할리퀸 로맨스의 슬픈 왕자님

지금은 귀여니, 이햇님 등 인터넷 소설에 왕좌의 자리를 내주었지만 수 년 전만 하더라도 10대 소녀들의 마음을 온통 헤집어 놓았던 것 중에 ‘할리퀸 로맨스’라는 것이 있었다. 여자 주인공의 대다수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고달프게 살고 있지만 특유의 순수하고 밝은 성격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 그러나 혼자의 힘만으로는 역시 역부족. 반드시 그녀의 삶을 행복으로 이끄는 백마 탄 왕자님이 있게 마련. 이 왕자님은 대체로 시니컬하고 세상일에 무관심하며 적당히 삶을 즐길 줄 아는 남자. 그러나 결코 빠질 수 없는 공식은 이 남자가 여자 주인공을 만나면서 이전의 삶에 변화를 겪게 되고 사랑과 집착, 소유욕을 보이게 된다는 것. 지금 현재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드라마 [파리의 연인]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영화 쪽에서는 <늑대의 유혹>과 <그 놈은 멋있었다>가 할리퀸 로맨스의 계승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인터넷 순정 소설의 원조는 할리퀸 로맨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늑대의 유혹>에서 이 왕자님의 역할을 떠맡은 사람은 조한선이 연기하는 반해원이 아니라 강동원이 연기하는 정태성이다. 정태성에게는 반해원이 갖고 있지 못한 어두운 그늘이 있다. 그 그늘은 사랑하는 여자를 사랑할 수 없다는 비극적인 운명에서 온다. 거기에서 필연적으로 집착과 소유욕이 따른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고자 하는 욕망. 많은 10대 소녀 관객들은 정태성의 그런 모습에서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낀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극적 설정에만 기반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강동원이기 때문에 가능한 슬픔이다. 다시 말해서 그 많은 소녀들의 눈에서 눈물을 떨구도록 만들었던 것은 정태성이라는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강동원이라는 실제 인물이다. 어딘지 유약해 보이면서도 강한 고집의 소유자, 수줍고 화사한 미소 뒤에 슬픔을 간직한 남자, 그것이 '프리티 보이(Pretty Boy)' 강동원이다.

캐릭터를 초월하는 프리티 보이의 마력

‘프리티 보이’는 강동원의 대표적인 팬카페 이름 중 하나이다. 우리말로 그대로 번역하면 예쁜 소년이다. 그렇다. 강동원은 예쁜 소년이다. 최근 극장가에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늑대의 유혹>을 보러 온 관객들이 연신 카메라 폰으로 강동원이 나올 때마다 사진을 찍어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영화의 초반부 강동원이 이청아의 우산 속으로 들어오면서 화사한 미소를 지을 때나 후반부 이청아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드러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는 여기저기에서 비명을 지르고 탄식을 아끼지 않는다. <늑대의 유혹>에서 강동원은 캐릭터를 떠나서 존재하는 어떤 이미지이다. 물론 강동원이 연기하는 캐릭터 정태성은 강동원의 이미지를 보완하고 관객들이 이 캐릭터에 동화될 수 있는 어떤 계기를 만들어준다. 친누나에 대한 사랑의 감정 때문에 어쩌지 못하는 정태성은 필연적으로 관객들에게 안타까움의 정서를 부가시킨다.



그러나 <늑대의 유혹>의 경우, 강동원은 그 캐릭터의 총합을 뛰어넘어 버린다. 화사한 미소를 띠고 우산 속으로 들어오는 남자는 정태성이 아니라 강동원이다. 관객들은 정태성의 슬픔에 동화되어 눈물을 흘리기 보다는 강동원의 눈물에서 슬픔을 보는 것이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의 이러한 흡입력이 그의 연기력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신인급에 해당하는 배우로서 강동원은 뛰어난 연기력의 배우가 아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자신의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 패션모델과 CF 모델을 하면서 그는 뛰어난 패션 감각을 선보여 왔다. <늑대의 유혹>은 그런 강동원의 패션 감각이 최고조에 이른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 대해서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강동원 화보집’이라고 폄하하거나 그를 ‘남자 바비 인형’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와 강동원을 좋아하는 관객들은 그런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들이 갖고 싶어 하는 것은 훌륭한 영화, 훌륭한 배우가 아니라 자신들의 욕망에 부합하는 멋진 스타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모성애를 자극하는 고집스러운 소년

그러나 스타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은 비단 그의 외모나 그가 입고 있는 옷, 그가 걸고 있는 장신구만은 아니다. 그의 말투, 그의 행동, 그의 몸짓, 영화 속에서의 그의 캐릭터 하나하나가 모여 스타 이미지를 형성한다. 강동원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것 중 상당 부분은 순수함, 유약함, 모성애 자극과 관련된 단어들이다. 186cm라는 큰 키의 남자배우에게서 좀처럼 연상하기 어려운 단어들이다. <그녀를 믿지 마세요>에서 그는 수더분한 시골 약사 희철을 연기했었다. 영화가 개봉한 이후 그 자신이 많은 인터뷰에서 그 역할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토로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그에게 선량한 청년의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

<늑대의 유혹>에서 그는 이웃 고등학교의 짱이지만 남성다운 터프함보다는 어딘지 상처받기 쉬운 유약한 소년이 된다. 그런 그가 친누나 이청아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할 때 이청아가 연기하는 정한경과 여성 관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성 본능을 느끼게 된다. 그렇듯 강동원은 의지하며 기대고 싶은 남자가 아니라 감싸고 보호해주고 싶은 남자다. 그러나 강동원이 유약하고 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남자인 것만은 아니다. 그에게서는 배우로서의 욕심과 고집스러움도 느껴진다. 아무리 어려운 과정을 거치더라도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은 다 가져야 성이 찬다고 말했던 강동원은 연기에 있어서 감독과의 설전도 불사하는 당찬 배우다. 감독과 연기에 대하여 많은 말을 주고받지만 막상 슛이 들어가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야 직성이 풀릴 만큼 고집스러운 남자다. 이러한 고집스러움이 강동원에게 배우로서의 힘을 부여한다. 고분고분해 보이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에 반항을 일삼지 않으며 상대하기 싫으면 그저 내버려두는 고집스런 소년.

관객들은 강동원에게서 결코 소유할 수 없는 스타의 이미지를 잡으려 한다. 그가 이청아의 우산 속으로 들어오면서 던진 그 화사한 미소는 기억될 수 있지만 결코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소유할 수 없는 대상이 관객들의 욕망을 배가시킨다. 강동원은 지금 할리퀸 로맨스의 숱한 남자주인공들이 소녀 독자들에게 했던 역할을 떠맡고 있다. 그 때의 독자들이 온전히 머릿속의 상상만으로 그 이미지를 구성했다면 지금의 소녀 관객들은 눈앞에 보이지만 결코 손으로 잡을 수는 없는 이미지들로 스타에 대한 자신들의 욕망을 이루려 한다. 그런 점에서 강동원은 2004년 여름 대한민국 소녀들의 욕망의 모호한 대상이다.

출처 엔키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