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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동원/강동원·article

[강동원] 기사 - 2003년 6월 VOgue -

2003년 6월 Vogue Korea : Fashion of Him 

 

 

 

 

스포티즘과 레트로, 그리고 믹스 앤 매치란 현란한 트렌드가 교차하는 캣워크의 정점에 서 있던 모델 강동원은
연기라는 신세계의 오프닝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하지만 오늘 그는 또다시 모델로 되돌아가 섹시한 댄디 보이, 에스닉한 로맨티스트, 그리고 스포티한
와일드 가이로 변신했다.

 


그래도 새로운 무대에서의 첫 느낌이란 낯설게 마련이다.


김 감독은 종종 현장에서 진지한 얼굴로 모니터를 들여보다가 껄껄 소리내 웃고는 강동원을 부르곤 했다.

 

"이거 봐라. 네가 얼마나 웃긴지."

 

그순간, 그는 또 다른 카메라의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했다.

 

"화보 촬영에서 몸에 힘이 빠진 듯한 모습, 공허한 눈빛은 시크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죠.
하지만 모니터로 보니 느낌이 판이하게 달랐어요. 아무 표정도 없는 이상한 얼굴이었지요.
전혀 렌즈가 다른 카메라였던 거죠."

 

특히 섹시한 그의 얇은 입술을 살짝 벌릴라 치면 '동원이, 또 입술 벌어졌다. 다물어라.' 하는 감독의 지적이 떨어졌다.


하긴, 어느 디자이너는 집에서 드라마를 보다 강동원이 뒤돌아 걸어가는 장면에서 그만 쓰러지듯 웃고 말았다. 
영락없이 쇼 무대에서 터닝하고 돌아서는 바로 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첫 연기의 좌충우돌을 순조롭게 풀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선배 연기자들의 도움이 단연 컸다.
활달한 배두나는 모델출신이라는 공통점에서 공유할 것도, 배울 점도 많았다.

 

또 신성우와 그는 서로 '호형호제'하는 사이. 갑자기 촬영 일정이 취소된 날, 신성우와 강동원, 그의 로드 매니저 세 명은
홍대 앞의 한 당구장에서 새벽 4시까지 공을 치며 자율학습 시간을 '땡땡이 친' 고등학생들처럼 희희낙락했다.
그날 신성우 입에선 '동원아, 형이라고 불러!' 하는 든든한 말이 흘러나왔다.

 

 

텔레비전 앞에 앉은 시청자들이 그의 아리따운 얼굴을 보고, 질박한 부산 사투리를 들으며 흐뭇한 미소를 떠올리는 것과
별개로, 패션계에서는 강동원 식의 카멜레온 같은 남성미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남성지 <GQ>의 패션 에디터 신광호의 기억은 강동원이란 키워드의 본질에 매우 가깝게 들어가 있다.

 

 

"언젠가 함께 촬영하면서 그는 '뽕' 맞은 느낌을 표현해보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왔죠.
불과 1~2년 전만 해도 그는 시크하고 도회적인 트렌드의 정점에 서 있는 모델이었어요.
하지만 뭔가 새로운 걸 찾고 있었던 겁니다. 컬트적이고 아방가르드한 작업에 대한 열정이죠.
아마도 그것 때문에 연기에 대한 갈증을 갖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그저 예쁜 강동원이 아니라, 강동원이란 남자를 충격처럼 만나는 순간이었다.

인터뷰를 정리해 보면, 패션계의 눈이 옳았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최근에 본 영화는 <살인의 추억>.  즐겨 보는 방송은 SKY 위성 방송의,

"온갖 종류의 격투기를 동원해서 격렬하게 상대와 맞붙는 프로그램이에요.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 땀방울, 꿈틀거리는 근육, 섹시하지 않나요!"

 

 

비주얼적으로 좋아하는 배우는 <파이트 클럽>의 브래드 피트.

영화에서 날것 같은 눈빛도 그렇지만, 팔딱거리는 풍부한 잔근육이 정말 멋있다.

 

 

또한 그는 오토바이크 마니아. '네이키드 형'과 스쿠터를 갖고 있다고 했다.

 

"<미션 임파서블> 보셨죠? 톰 크루즈가 탄 오토바이크가 바로 '네이키드 형'이에요.
스쿠터는 단거리용이구요,'네이키드'는 그 중간형인데….

 

 

그의 부연 설명은 얼마든지 더 길어질 수 있었다. 이 관심사에 무지한 상대방을 만나지만 않았다면.
정확히 약속된 시간에 인터뷰와 촬영은 끝났다.

 

마지막 촬영 후 그는 행어에 죽 걸린, 방금 전 자신이 입었던 의상들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아무래도 조금 전 스포티한 와일드 가이로의 변신 때 소품으로 사용한 바이크 장갑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지난 번에 살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역시 멋지네요."

 

패션 속에서 잉태했고 앞으로도 그걸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강동원다운 멘트가 아닐 수 없다.

드라마에서 강동원은 <꽃보다 남자>의 F4멤버 같은 '미모'를 지닌 젊은 '슈바이처 박사'였다.

<위풍당당 그녀>가 그에게 처음으로 입혀준 연기의 옷은 그랬다. 여러모로 '지훈'이라는 캐릭터는 스타로서
발돋움 할 수 있는 데 결정적인 발판이 된 셈이다. 섬세한 외모를 하고, 흰 의사 가운을 입은 모습은 고전적인
백그라운드와 함께 건강한 가치를 지닌 아름다운 남자를 보고 싶어하는, '꽃미남' 트렌드에 대한 대중의 욕구와
무관하지 않다.

 

 

강동원이 촬영 스튜디오에 들어서고 제일 먼저 한 일은 크게 한번 고개를 숙여 인사를 대신하고는 바로 소파에 몸을  묻은 것이었다.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스케줄이 빼곡하게 잡히는 통에 그는 절대 수면 부족상태였다.

 

 

그러나 화보 촬영 컨셉을 설명하자, '언제나처럼' 눈에 생기가 돌았다. "익숙해요." 이 한마디는 촬영장에서의   강동원을 단적으로 설명했다.

이순간 그는 모델이었다. 곧 그는 구찌의 흰색 재킷과 프라다의 하와이안 셔츠, 아디다스의 트레이닝복을 입으면서
섹시하고 트렌디한 '댄디 보이'로, 에스닉한 남국의 '로맨티스트로, 스포티한 '와일드 가이'로 현란하게 변신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대중적인 인기 코드는, 여자의 변덕만큼이나 급변하는 트렌드에 단련된 모델들의 차별화된 스타성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2003년 S/S 컬렉션에서 오프닝과 피날레를 강동원에게 맡긴 디자이너 정욱준은 아쉬움을 숨기지 못한다.

 

 

"그를 모델로서 무대에 세울 수 없을 거라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해요.
그는 천상 모델이니까요. 가봉 때나 백스테이지 에서 옷을 입을 때 그는 반드시 거울을 봐요.
마치 연구하는 것처럼요. 그 동물적인 '감'으로 연기를 한다고 생각해 봐요."

 

 

그러나 강동원은 덥석 인기를 맛보려 하지 않았다.

이제 막 대중과 만났고, 연기는 서두를 일이 아니라는 것을 판단했을 뿐이다.

당장 누리고 싶은 즐거움은 5월 셋째 주에 약속된 태국 여행에 있었다.

 

 

"거기서 오토바이크를 타고 신나게 달릴 거예요."

 

 

느리고 낮은 톤의 부산 사투리로 이 계획을 털어놓았을 때 빛나는 그의 눈을 놓쳤다면, 얼마나 신이 나 있는지 몰랐을 것이다.

 

 

이 스물 두 살의 청년이 웃는 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몇 달 전, 디자이너 우영미의 파리 컬렉션 때 그와 함께 동행한  <보그>의 패션 에디터는 어느새 과묵한 강동원에게 익숙했다.

그는 꾸벅 인사를 하고는 조용히 자기 일에 빠져드는 스타일이었다.

 

또 '하기 싫은 일 억지로 해봐야 능률도, 보람도 없다'는 주의. 이것에 대한 자기 주장이 뚜렷하다 못해 경이로울 정도다.

 

화보 촬영 중 의상을 갈아 입다 말고 난데 없이 긴 한문 글귀를 읊은 모델(배우라도 마찬가지다!)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라고, 중학교 때 배운 공자의 글 한구절인데,
마음에 와 닿더라구요. 결론적으로 뭐든 좋아서 해야 한다는 얘기죠. 그걸 핑계로 많이 놀았어요."

 

 

비로소 특유의 매력적인 눈웃음이 경쾌하게 요동 쳤다.

 

 

'지적인' 쾌락주의자로서의 그를 즐겁게 하는 것은 아주 많았다. 가깝게는 이번 첫 작품을 찍으면서 경험한 크고 작은 일들이다.

 

올 봄, 그는 영화 <몽정기> 시사회장에서 MBC 미니 시리즈 캐스팅 디렉터의 눈에 띄었고, 김진만 감독과 오디션 자리를 갖게 되었다.

 

생애 두 번째 오디션, 그리고 바로 캐스팅으로 이어졌다.

 

그의 말투 때문에 대본이 모조리 경상도 사투리로 바뀌었다는 소문에 대해 그는 정색을 하고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감독님 말씀대로, 마음 편하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기로 했죠.
그러던 와중에 감독님과 작가 선생님이 부산 말투로 대사를 수정했어요. 이야기 흐름에 더 맞다고 판단하신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