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인셉션'-놀런의 놀라운 신세계 | 기사입력 2010-07-21 13:48 [이동진닷컴] (글=이동진) 아마도 ‘인셉션’(Inception-7월21일 개봉)은 블록버스터의 틀 속에서 구현할 수 있는 가장 개인적이고 야심찬 프로젝트일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런은 불특정 다수 관객의 평준화된 취향 따윈 고려하지 않은 채, 영화라는 매체가 줄 수 있는 새로운 체험을 향해 굳건하게 진군한다. ‘인셉션’은 대중영화의 하한선을 지레 낮춘 오락물과 관성으로 생산해낸 뻔한 속편들로 지루하게 이어지던 올 여름 극장가의 분위기를 일거에 바꿀 수 있을만큼 흥미진진하다.
이 희귀한 대작은 2억 달러에 가까운 막대한 예산이 들었지만 여름철 블록버스터 오락영화라기보다는 전위에 선 엘리트의 영화에 더 가깝다. 극장 밖 골치아픈 세사(世事)로부터 벗어나 그저 2시간 남짓 휴식하고 싶은 관객들에게는 두통만 안겨주는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예상보다는 파괴력이 크지 않았던 미국 개봉 첫 주말 성적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눈이 핑핑 도는 미로 속에서도 새로운 여정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는 사람에게는 얼이 빠질 정도의 신세계를 펼쳐 보일 것이다.
타인의 꿈 속에 침투해 생각을 훔치는 일을 하는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사이토(와타나베 켄)라는 사람으로부터 이제까지의 활동과는 정반대 의뢰를 받는다. 그것은 대기업 후계자 로버트(킬리언 머피)의 꿈 속에 들어가 새로운 생각을 주입-인셉션-시켜달라는 제안. 사이토는 그 대가로 코브에게 덧씌워진 아내(마리온 코티아르) 살해 누명을 벗겨주겠다고 제의한다. 코브는 아서(조셉 고든-레빗), 아리아드네(엘런 페이지) 등 최고 실력을 지닌 5명으로 팀을 구성해 작전에 나선다.
크리스토퍼 놀런의 ‘인셉션’과 제임스 캐머론의 ‘아바타’는 전작의 엄청난 성공으로 막강한 예술적 권한을 누리게 된 감독의 극에 달한 의지와 야망 혹은 재능이 할리우드 거대 자본을 끌어들여 빚어낸 매혹적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하지만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에서 테크놀로지에 대한 태도까지, 두 작품은 많은 면에서 날카롭게 대조되기도 한다.
최대한의 (디지털) 시각효과를 위해 스토리라인을 굵고 간결하게 정리한 캐머론과 달리, 놀런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구조의 이야기를 능수능란하게 풀어내는데 전력을 기울이면서 (아날로그) 시각효과를 곁들인다. (놀런은 컴퓨터 그래픽의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환상적인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말하자면 놀런의 영화에서 비주얼은 치밀한 구성의 화술을 치장하는 인테리어인 셈이다.
그의 영화에서 이야기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고, 이야기가 쌓이는 양식이다. 고작 6천달러로 만든 초저예산 데뷔작 ‘미행’(1998년)과 5백만 달러라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을 들인 ‘메멘토’(2000년) 그리고 2억 달러에 육박하는 엄청난 제작비의 블록버스터 ‘인셉션’. 그 외형적 격차에도 불구하고 이 세 작품 사이의 플롯에 대한 야심과 집착엔 차이가 없다. 기승전결의 모노레일을 착실히 주행하는 화법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놀런은 시공간의 층위를 교차하거나 도치하는 독특한 구조를 통해 지적 유희를 한다.
현실과 꿈 사이를 수시로 넘나들 뿐만 아니라, 꿈과 꿈속의꿈 사이까지를 종횡무진 옮겨다니는 ‘인셉션’은 철저히 놀런적인 영화다. 그는 얽히고 설킨 플롯을 루빅스 큐브처럼 가지고 논다. “인셉션을 잘 하려면 상상력이 좋아야 한다”는 극중 대사 속에 담긴 것은 그의 자신감이다. 그리고 그는 그런 말을 영화 속에 넣을 자격이 있다.
하지만 그의 연출방식에서 상상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성이다. 놀런의 작품은 묶인 데 없이 자유로운 상상력이 아니라 편집증에 가까울 정도로 정교함에 몰두하는 지성의 집적물에 더 가깝다. 모두가 3D의 휘황한 시각 효과에만 집중하며 전력질주할 때, 그의 신작은 탄탄한 플롯의 힘으로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루이스 부뉴엘을 위시한 숱한 감독들이 꿈의 세계를 영화 매체 속으로 끌어들였다. 꿈을 직접 스크린 위에 구현하려는 가장 값비싸고 휘황한 시도일 ‘인셉션’은 호접몽에 대한 장자의 이야기에서 자각몽에 대한 현대 뇌생리학의 설명과 꿈 속에서 변형된 트라우마에 대한 정신분석학의 해설까지 수많은 참고목록을 내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정신분석학이 알려준 것 중 하나는 꿈이라는 것을 완벽하게 통제할 순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인셉션’의 서스펜스는 상당 부분 그로부터 나온다.)
일부는 극중 대사로 직접 전달되기도 하고 일부는 모티브의 형태로 이야기 속에 녹아 있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작품이 분주히 건드리고 있는 수많은 레퍼런스들에 익숙할수록 관객의 쾌감은 더 커진다는 것이다. 극장에서 영화 한 편 즐기겠다는데 대체 왜 그리 어려워야 하느냐는 반문도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오락 역시 다양한 층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놀런은 가장 복잡한 종류의 오락을 제공하는 창작자일 뿐이다.
그 레퍼런스 중엔 기시감을 불러 일으키는 이전 영화들도 있다. <‘매트릭스’가 ‘오션스 일레븐’을 만났을 때>라고 거칠게 요약할 수 있는 ‘인셉션’은 장르적으로 볼 때 범죄의 모의와 실행 과정을 흥미롭게 좇아가는 케이퍼 무비를 SF의 세계 속으로 녹여넣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특히 닮은 것은 ‘매트릭스’다. 이 영화는 ‘매트릭스’가 가상현실을 그려내는 방식과 흡사하게 꿈의 세계를 다루고 있으니까.
두 작품 외에도 (무려!) 오슨 웰즈의 ‘시민 케인’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에서 ‘콘택트’ ‘도망자’ ‘미션 임파서블’ ‘이터널 선샤인’ ‘디 아워스’ ‘마이너리티 리포트’까지 숱한 영화들의 그림자가 일렁이기도 한다. 심지어 ‘인셉션’은 그 자체로 영화 만드는 과정을 은유하는 일종의 메타 영화로 읽히기까지 한다. 이 경우 코브가 감독이라면, 사이토와 아서와 아리아드네는 각각 투자자와 제작자와 시나리오작가로 보인다.
하지만 ‘인셉션’은 놀런의 최고작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그의 최고작은 ‘다크 나이트’라고 믿는다.) 이 영화에는 지적 자극이 넘쳐나지만 정서적 감흥은 부족하다. 물론 여기엔 아내에 대한 죄책감과 아버지에 대한 애증이라는 두 줄기의 페이소스가 담겨 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설정은 종종 공감되는 것이 아니라 제시된다. (놀런은 연민이나 사랑처럼 인간의 따뜻한 감정은 상대적으로 잘 다루지 못한다.) 마리온 코티아르를 제외하면, 배우들의 연기를 썩 잘 살려내진 못했다는 약점도 지닌다.
또한, 작심하고 꿈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셉션’의 꿈 장면들은 그저 또 다른 현실(들)처럼 보일 뿐이다. 여기엔 내적 논리가 있긴 하다. 놀런은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이 현실인지 아니면 꿈인지를 관객들이 시종 의심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극을 이끌어가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핵심적이긴 하지만 이와 같은 트릭을 위해 꿈의 질감 자체를 포기한다는 것은 실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인셉션’에는 아찔할 정도로 매혹적인 순간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놀런은 이 작품에서 영화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오랜 난제 하나를 푼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어쩌면 당신은 앞으로 ‘인셉션’ 같은 영화를 다시는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
[영화 보시기전에 보실 것들]
영화 프리뷰 HD 화질 (클릭)
네이버 영화 정보 (클릭)
알보보면 더욱 잼있는 영화 인셉션 (클릭)
영화를 보시기전에 알아두면 좋은 내용 - 인셉션 작전용어 (클릭)
[영화 보시구 이해 안되시는 분들]
인셉션의 꿈속의 꿈은 몇단계? (클릭)
인셉션 20가지 완벽 분석 가이드 (클릭)
놀란 감독이 숨겨놓은 진짜 주제는? (클릭)
웅장한 꿈과 거대한 미로의 창조적 완성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