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낮아 속상하지만, 금방 잊고 캐릭터에 빠져"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일본 등 아시아의 방송작가들과 모여 세미나를 하면 그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이 원작을 창작하는 한국 작가들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 열풍 때문에) 한류의 원천인 창작성이 사라지는 것 같아 걱정스러워요."
'그들이 사는 세상(그사세)', '거짓말' 등 마니아층이 두꺼운 드라마 작가로 알려진 노희경이 최근 방송가의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 열풍에 우려를 표했다.
노희경은 최근 대본집 '거짓말'(전2권.북로그컴퍼니 펴냄) 출간에 즈음해 24일 오후 서울 내수동 교보문고 본사 문화이벤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일본은 만화 원작의 드라마가 90%에 달할 때도 있어, 방송작가는 (창작자가 아니라) 각색자로 남은 상황"이라며 "몇 년 사이 국내에서도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가 늘었는데, 방송작가들이 한류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막장드라마'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머리가 아파 안 보다가, 몇 번 봤더니 확실히 재미는 있었다"면서도 "세상이 각박할 때 된장국처럼 순한 드라마가 있으면 좀 차분해질 듯하다"며 은근한 반감을 드러냈다.
KBS에서 1998년에 방송한 드라마 '거짓말'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PC통신 폐인'이라 불리는 드라마 마니아를 등장시켰고, PC통신 동호회와 팬카페 등을 탄생시킨 드라마다. 그러나 '노희경표 드라마'는 마니아층의 열광에도 대개 시청률이 높지 않았다.
노희경은 "마니아가 많이 있는데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지 궁금하다"며 "내가 만든 꿈이 잘 팔리지 않았다는 뜻이니 장인으로서는 속이 상하다"고 시청률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하지만 "글을 쓸 때는 오로지 내 이야기와 캐릭터에 빠져 있기 때문에 고민하고 속상해하는 시간은 길지 않다. 빨리 잊는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노희경표 드라마'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때로는 매번 새로운 것을 쓰려고 하는데 늘 똑같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고, 때로는 기분이 좋기도 하다"며 "그 용어가 부담돼 가명으로 집필할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드라마 '거짓말'에 강한 애착을 드러내며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도 3년 동안은 매년 전편을 봤고, 지금도 매년 한두 편씩 챙겨본다"며 "볼 때마다 (드라마를) 쓴 32살 당시로 돌아가는 느낌이 짠하다"고 말했다.
노희경은 본래 다른 배우를 염두에 둔 주인공 주성우 역에 배종옥이 캐스팅돼 대본의 말투를 다 고쳐 썼다는 이야기와 당시 멜로 연기가 처음이었던 배종옥에게 안약을 쓰면 안 된다고 말했을 때 그가 지었던 황망한 표정이 기억난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멜로성 이야기를 쓸 때 과거의 경험이 들어가느냐는 질문에는 "잔인할 정도로 연애할 때의 경험, 기억, 상상을 우려낸다"며 "그래도 아직은 우려낼 기억과 상처가 있다는 생각도 들고 재미있어서 멜로가 좋다"고 웃으며 답했다.
그는 "지금은 세 자매와 젊은 엄마, 늙은 할머니가 서울에서 낙향해 어우러지는 이야기를 집필하고 있다"며 "좀 끈적끈적한 내용이 될 듯해 '굿바이 솔로'나 '그사세'보다는 '꽃보다 아름다워'와 비슷한 이야기가 될 듯하다"고 예고했다.
노희경은 3월 단편 드라마 대본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도 출간할 예정이다.
368ㆍ344쪽. 각권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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