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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기나는방/문화·애니

[스크랩] 된장녀는 없다 : 커피와 담배 - 타성(他性)의 기호

 

 

커피와 담배

 

짐 쟈무쉬의 영화 [커피와 담배]의 첫 번째 에피소드. 로베르토 베니니와 스티븐 라이트가 나와 당최 뭔 말인지 모르겠는 소리들을 마구마구 지껄이며, 커피와 담배를 즐긴다. 아니, 즐긴다고 하기에는 그 두 사람의 손이 너무나도 떨렸던 것 같다. 오랜 세월동안 인간의 기호품으로 사랑을 받아왔고, 둘 다 강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는 커피와 담배. 담배를 안 피는 나로선 영화중간 이기 팝과 톰 웨이츠가 담배의 백해무익을 소리 높여 주장하다가, 거부할 수 없는 담배 한대를 물고서 지었던 그 엄청난 표정과, ‘커피와 담배는 환상의 궁합이야!’라는 외침을 온전히 이해 할 수는 없겠지만, 영화는 이 애증의 기호품들을 시종일관 유쾌하면서도 살짝 뒤틀린 시선으로 비추었다.

흡연은 폐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고, 특히 청소년과 임산부의 건강에 해롭다. 커피는 카페인이 다량 함유되어있어, 많이 섭취할 경우 마찬가지로 건강에 해롭다. 내가 어릴 적에는, 커피를 마시면 머리가 나빠진다는 알 수 없는 학설 때문에(커피의 기원은 아라비아에서 머리 좋아지는 물약으로 먹기 시작했던 거란다), 언제나 식후 커피타임에서 제외대상이 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와 담배를 즐기는 것은, 신체의 건강과는 무관하게 개인의 기호이다. ‘체력은 국력!’ 따위의 괴상한 표어가, 동네 오락실 앞 펀치기계마다 붙어있던 이 나라에서도, 법적으로 하자 없는 나이의 성인이라면 누구나(실은 법적으로 하자있는 수많은 청소년들 까지도) 담배를 피울 수 있고, 커피는 무려 나이와 상관없이 마실 수 있다. 물론, 매너가 개떡인 흡연자라면 비 흡연자의 입장에서 짜증이 좀 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기호품들이 아주 합법적인 판매 절차를 거쳐, 여성들의 손과 가방 속으로 보내졌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대체 우리 언니들은 커피와 담배를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했을까? 무엇을 하려고 했기에, 멀쩡하게 커피 마시던 여자가 된장녀가 되고, 길에서 담배 피는 여자를 보면 어르신부터, 혈기왕성 중고딩까지, 분노 혹은 한심함의 눈빛을 날리게 되었을까?

별 다방에서 된장 찾기

스타벅스. 미국의 시애틀을 근거지로 하여, 전 세계적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는 가히 세계 제 1의 커피체인이다. 어지간히 먹고 살만 한 곳에는 여지없이 들어선다는 스타벅스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한국 전통문화의 거리(라고 하지만 요즘에는 그냥 시장바닥이나 별다름 없는 것 같은) ‘인사동’에도 무려 한글로 된 (이거에 감격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더라만) 뻘쭘한 상호와, 창호지 인테리어로 기어코 체인점 하나를 들이 밀었다. 좋은 목에 있던 무슨 무슨 가게가 문을 닫고 나면, 요즘에는 거의 여지없이 스타벅스가 들어선다. 뒤에 나올 이유들 때문에 진즉에 한 평생 스타벅스를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나지만, 이러다가는 서울하늘에 스타벅스 말고는, 커피 한잔 마실 곳도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될 정도로, 프로게이머가 무색할 정도의 확장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스타벅스는 그 기업의 크기만큼이나 많은 혐의들을 받고 있다. 우선적으로 노동착취문제다. 최근 스타벅스의 각 지점 앞에서는, ‘...커피농가의 삶을 개선하는 일입니다’라는 글씨가 새겨진 입간판들이 하나씩 놓여있는데, NGO들의 압력으로 헐값에 파는 ‘불법커피’를 ‘더 이상’ 사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을 자랑하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디오피아의 커피농장 노동자들이 스타벅스 커피한잔을 사먹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을 일해야 한다.(선진국에서 1Kg에 26.5$로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원두를 커피상들에 넘기고, 농민들이 받는 돈은 14센트 정도란다)

두 번째로, 최근 이스라엘의 레바논침공과 함께 불거진, 이스라엘정부에 대한 자금지원혐의다. 시오니스트인 스타벅스 회장이 이스라엘 정부에 보내는 막대한 자금들은, 팔레스타인의 마을들을 침공해 사람들의 집을 부셔버리고, 새로운 마을을 세워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주시키는 이른바 ‘정착촌’을 만드는 일이나, 팔레스타인을 둘러싸는 ‘고립장벽’, 값비싼 아브라함탱크를 향해 돌을 던지는 아이들을 쏘아 죽이는 ‘총알’이 되어 팔레스타인에 뿌려졌다.

세 번째로, 미국의 시민단체들에 의해 제기된 스타벅스 제품군의 성분표시 문제다. 지나치게 고 칼로리이며, 사용하는 우유에도 문제가 있고, 각종 질병을 유발 할 수도 있다는 거다. 미국 스타벅스는 홈페이지를 통한 성분표시라도 실시한데 반해, 한국 스타벅스는 지부의 문화에 딱 어울리는 ‘배째소서 스피릿’을 발동시켜, 버팅기고 있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한 TV프로그램을 통해 제기된 문제가 있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스타벅스 제품들의 가격이, 비슷하거나/더 잘사는 선진국들에서 판매되는 가격보다 높게 책정되어 있다는 것. 특히 살인적인 물가를 자랑하는 옆 나라 일본보다도 천원쯤이나 비싸다는 얘기다. 땅값으로 보나, 환율로 보나 더 비쌀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황선생 한 분 만큼의 차이가 난다는데 어찌 거품 물지 않겠는가.

이러한 이유들로 인하여, 스타벅스는 요즘 다방면에서의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이 어느 날 갑자기 ‘된장녀’라는 일군의 무리들을 성토하는 것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밥값보다도 비싼 커피한잔을 사먹은 죄로, 순식간에 ‘골빈년들’이라는 기본옵션부터, 허영심 많고, 명품이나 좋아하며, 남자들 등골이나 빼먹는 여자가 되었으며, 나아가 ‘타이타닉’ 개봉 시에 벌어졌던 ‘국부유출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한 여배우는 토크쇼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계산할 때 할인카드를 낸다면 좀 깰 것 같다’는 발언을 했다가, 기어코 구릿한 된장의 낙인을 받고 말았다.

나의 개인적인 견해에 의하면, 스타벅스는 비판받아 마땅한 기업이지만, 당최 스타벅스의 주식한 장 없는 여성들이 스타벅스에 대한 비판을 다 떠맡게 된 것은 무슨 조화인가? 위에 말한 이유들을 들어 그네들의 ‘소비’를 비판하는 것이라면, 이미 청바지 하나 만드는데 10여 개국에 걸치는 수고가 들어가는 세상에서는 억울해할 이유가 충분하다. 밥보다 비싼 커피를 비난하지만, 밥보다 비싼 술이며, 각종 유흥들을 밥 먹듯이 즐기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 사회에서는 결국 제살 파먹기나 다름없다. 더불어서 일주일치 밥값은 되는 돈을 들고, 여자 ‘사먹으러’간다는 ‘몇몇’ 남자들의 소비에 비하면, 오륙 천 원 하는 지방덩어리 프라프치노가 갑자기 숭고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가치에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두 가지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옛날 옛적, 만국의 프롤레타리아가 단결하던 시절에도 못 미치는 경제관념이, 현대인들의 머릿속에 들어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커피를 식후 자판기에서 뽑아먹는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과, 1500원짜리 밥을 먹고서라도 5천 원짜리 커피를 마셔야 하는 사람 중에 누구를 더 도덕적으로 우월하다 말할 수 있을까? ‘당신은 6천원짜리 밥을 먹었고 400원짜리 커피를 마신바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의지가 두드러져 이 상장을 수여함?!’

커피얘기를 하다말고 갑자기 끼어든 여자들의 허영심도, 평균속도 60km/h의 한국에서 슈퍼카를 꿈꾸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그 빛나던 광체를 잃어버린다. 얼마 전 친구를 만나러 지하철을 타고 간 압구정동에서는, 각종 외제 차 및 스포츠카의 창문을 열고, 팔을 걸친 체 한손으로 핸들을 잡은 일목요연한 모습이 나를 질리게 했다. 아닌 말로도 운전하기 편한 자세는 아닌 듯 보이는 그 자세가 안 따라 하면 벌금 내는‘압구정동 동사무소 공식 지정 포즈’가 아니라면, 어떤 뜻을 내포하는 지는 그야말로 뻔한 일이 아니던가?

요컨데, 정이나 마음에 안 들면 그냥 관심을 끄면 될 일이다. 그러나 사방팔방에 된장을 바르고 다니는 남자들은 결코 그러지 않는다. 왜 그럴까? 설마 나날이 힘겨워져가는 작업환경 속에서, 자신들의 논리적이고, 날카로운 비판에 죄를 뉘우친 쌔끈한 된장녀들이 ‘진실한 사랑’에 눈을 뜰 때를 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빠가 바지 벗고 기다릴게!’

불 꺼라 잡년아

 

서울도심을 지나다니다보면, 주택가, 유흥가, 고층빌딩 밀집지역에 이르기까지 소위 길빵을 하는 남자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사람으로 들어차서 움직이기도 힘든 주말의 신촌 에서도 담배를 물고, 느긋하게 내 앞을 걸어가는 ‘남자’를 만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다. 가뜩이나 담배를 피는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요즘인지라, 그냥 앞질러 가고 말지만(실은 무서워서 ㅎㄷㄷ), 살아오는 동안의 무수한 간접흡연 경험에 따르면, 매너 없는 흡연자의 대부분은 남자였다.

그러나 흡연과 관련하여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내가 매너 좋은 여성흡연자들을 만난 게 실은 엄청나게 낮은 확률을 뚫고 이루어진 것 이었는가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나의 다년간의 무수한 경험에 의한 통계수치에도 불구하고,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다가 폭행당하는 것은 대부분 여자들 아니면 애들이다.

하다못해 아이들은 불법이라는 이유라도 있었다고 치자.(그렇다고 그게 때릴 수 있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이미 민증에 잉크가 마르다 못해 닳아서, 재발급까지 받았을 법한 어엿한 성인이 금연구역도 아닌 곳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지나가던 행인에게 폭행을 당했다. 그 사람의 흡연매너가 좋았는지 나빴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만약 가해자들의 얼굴에 연기를 뿜고, 깔깔거리며 소리 높여 웃는 짓 따위를 했다면, 경찰에서 폭행사건으로 분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불어 담배를 피는 매너가 폭행의 원인이 된다면, 한국사회에는 진즉에 담배사건 전담반 따위가 만들어 졌어야 한다. 그러나 예상컨대 절대로 매너는 아니다. 단지 ‘여자’가 감히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길’에서.

 

 

 

자기야~담배 끊어라~응?

담배가 백해무익하다는 것은, 담배를 피는 사람들마저도 자조적으로 읊조리는 주문이 되었다. ‘담배 안 펴요’라는 말에, ‘그래 절대로 배우지마!’라며 한 개비를 입으로 가져가는 모습을 보면, 그 깊고 깊은 애증이 느껴지는 것 같다. 고 이주일씨의 죽음을 전후로, 불어 닥친 금연의 열풍은, 정부당국과 미디어의 공격적인 캠페인들을 통해 실질적으로 전체흡연율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함께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여성의 흡연율은 되려 증가추세에 있다는 통계가 나왔다. 담배에 의존하는 사람이 많아진 건지, 담배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진 건지, 혹은 담배를 피우던 사람들이 드러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소식이 들려오자마자, 아직 생겨나지도 않은 ‘아기들’에 대한 걱정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특히 임산부의 건강에 해롭습니다.’

나 역시 자주 시도했었던 ‘금연에의 압박’은, 아끼는 사람들의 건강을 생각해서, 담배를 끊게 하려는 ‘선의’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금연이라는 것이 도덕적인 당위를 가지고 있는 행위는 아니다. 그러나 여자들에게 행해지는 금연에의 압박은, 여자들의 흡연을 일종의 ‘도덕적인 타락상태’로 상정해놓고 행해진다. ‘선의’여야 할 금연권고가, ‘회개하라!’의 분위기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이미 어쩔 수 없지만, 너는 안돼’라는 해괴한 논리도 종종 등장한다. 그러나 이런 수많은 회유와, 설득과, 협박들의 이면에는 결국 이 말을 하고 싶어 근질거리는 목구멍이 있다. ‘여자가 담배 피는 거 싫어!’

흡연이 적극적으로 권장할 만한 성격의 일이 아니라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나쁜 것을 따라하는 게 남녀평등은 아니다’라는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 싸나이들의 궐련 한 개비에 우정과, 사랑과, 슬픔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지는 내 알바 아니지만, 여자들의 담배를 열등한 것으로, 기껏해야 팜므파탈의 타락과 일탈의 상징으로 보려는 것은 우습다. 남자들이 담배를 원하는 것만큼이나, 여자들도 담배를 원한다. 내뿜는 연기 속에 우정과, 사랑과, 기쁨과, 슬픔이 있는지는 알도리가 없으나, 그 누구 못지않은 각자의 사정과 각자의 이유가 묻어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물은 셀프! 커피도, 담배도...

결국 ‘남이야 커피에 담배를 적셔서 피우든, 프림 대신 담뱃재를 털어 넣든 간에, 나한테 먹으라고 하지 않는 다음에야 신경 쓰지 맙시다.’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기위해 여기까지 왔다. ‘담배와 커피로 점심을 때우는 것은 건강에 안 좋아!’라는 말 한마디를 할 때에도, 진짜로 걱정되는 게 아니라 지나가는 말이라면 그냥 넣어두시라. 담배연기를 맡기 싫다면, ‘내가 담배연기를 싫어해서 그런데 잠시만 참아줄래요?’라는 점잖은 방법도 있다. 마지막으로 남의 취향이며 기호에 참견 못해서 안달인 이들을 위해 친절한 금자씨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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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불꽃 명랑사회건설위원

Curse13(gigablade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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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남녀불꽃노동당 다음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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