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 24일 (수) 13:05
연애시대가 다른 이유 7가지
연애시대가 다른 이유 7가지
[OSEN=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연애시대’가 끝났다. 벌써부터 사람들은 ‘연애시대’ 금단증상을 얘기한다. 과거의 드라마들에 비하면 스토리면 스토리, 연기면 연기, 연출이면 연출 어느 하나 흠잡기 어려운 이 명품 드라마의 종영으로 다른 드라마가 어딘지 시시해 보인다는 것이다.
‘영화인들에 의한 영화인들의 드라마’여서 그랬을까. 불륜과 신파, 상투적인 설정으로 점철된 기존 드라마 세상에 영화의 내공을 가지고 홀연히 나타난 ‘연애시대’는 황망한 사막에 내린 한줄기 비와 같았다. 드라마는 그저 드라마겠지 하고 자조하듯 ‘연애시대’를 본 시청자들은 “이거 좀 다르네”하고 느꼈을 것이다.
‘영화인들에 의한 영화인들의 드라마’여서 그랬을까. 불륜과 신파, 상투적인 설정으로 점철된 기존 드라마 세상에 영화의 내공을 가지고 홀연히 나타난 ‘연애시대’는 황망한 사막에 내린 한줄기 비와 같았다. 드라마는 그저 드라마겠지 하고 자조하듯 ‘연애시대’를 본 시청자들은 “이거 좀 다르네”하고 느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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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이 그다지 높은 것도 아니면서 누구나 ‘연애시대’를 두고 ‘웰메이드 드라마’라고 서슴없이 말하게 만들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1. 물오른 캐릭터들의 전시장.
‘왕의 남자’ 장생역에서 굵직한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감우성은 ‘연애시대’ 동진역으로 돌아와 섬세한 연기를 선보였다. 과장된 동작도 없고 대사 역시 차분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가 하는 연기는 간단한 손동작 하나, 다리를 떠는 동작, 멍한 표정, 눈빛, 찡그림 하나에서도 감정을 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불만이 가득한 소년 같다. 어찌 보면 작은 일에 좋아하고 화를 내고 삐치고 투덜대는 그의 모습은 바로 우리네 샐러리맨의 자화상 같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 흔한 샐러리맨들의 소년 같은 투덜거림 뒤에는 보이지 않는 일상과 시간의 공격에 대한 처절한 아픔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물론 드라마의 극적인 요소를 위해 ‘유산된 아기’라는 비극이 그들을 덮지만, 그걸 빼내더라도 그에게서 결혼 후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네 샐러리맨의 근원을 알 수 없는 힘겨움을 찾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작업의 정석’의 작업녀에서 ‘연애시대’의 당차지만 아픔이 있는 은호로 돌아온 손예진 역시 꿋꿋이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여성을 잘 대변해주었다. 그다지 재미있어 보이지 않는 일들 속에 파묻혀 하루 하루를 버텨나가는 그녀가 우울에 매몰되지 않고 행복을 찾으려는 모습에서 우리는 감동을 느꼈다. 그녀가 노래를 할 때나 술에 취할 때나 잠이 들 때나 우리는 그 모습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 “모두들 나를 떠나간다”며 눈물을 흘릴 때는 우리도 떠나간 그 누군가(혹은 젊은 시절 내 마음 속을 채워줬던, 하지만 지금은 시간 속에서 사라져버린 그 무엇)를 떠올리며 눈물 흘렸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연기자들이 기존 드라마와 달랐던 것은 넘치거나 모자라는 연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 스토리에 철저히 동진과 은호가 된 그들은 마치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듯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였다. 우리가 캐릭터에 대한 몰입이 잘 되는 이유는 바로 그 자연스러움에 있었다.
2. 조연들이 살아있다.
하지만 그들 주연 옆에는 주연만큼 빛나는 조연들이 있었다. 이야기의 핵심 축을 이루는 공준표와 유지호의 웃음을 터뜨릴 만큼 풋풋한 사랑이야기는 그것만 따로 떼어놓아도 하나의 드라마로 충분했다. 처음 동진을 사랑하게 되는 이혼녀 김미연(오윤아 분)의 유혹적이면서도 푼수 같고 그러면서도 눈물 많던 정감과,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로 있다가 한번 웃어줄 때마다 시청자들 마음까지 밝게 만들어주었던 그녀의 딸, 조은솔 역시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짧은 시간 출연했지만 엉뚱하면서도 강한 인상을 남긴 은호 아버지역의 김갑수, 전형적인 ‘소심남’이지만 따뜻한 배려가 몸에 밴 정윤수(서태화 분)와 푸근한 맏며느리 같지만 또한 당찬 현대여성의 모습을 보여준 정유경(문정희 분) 역시 드라마에 빛을 더해줬다. 이밖에 아픔을 안은 재벌 집 아들 역의 민현중(이진욱 분), 칼날처럼 다가와 서슬파란 아픔을 보여준 최영인(조혜영 분), 푸근하면서도 귀여운 전직 레슬러 나유리(하재숙 분), 헬스클럽과 서점에서 간간이 등장해 즐거움을 주었던 연기자들까지 버릴 조연이 없었다.
기존 드라마에서 조연은 주연을 돋보이게 하거나, 주연의 드라마를 끌고 가기 위해 소모품으로 쓰여지기 마련이던 점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이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연애시대’만이 갖는 힘을 만들어준 것임에 분명하다.
3. 악역이 없다.
이들 캐릭터들은 수많은 부딪침을 만들지만 ‘연애시대’에서 타 드라마들과 다른 점은 눈에 띄는 악역이 없다는 것이다. 드라마는 그 자체가 갈등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전형적인 드라마에서는 좋은 악역이 드라마를 성공시킨다고까지 말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이런 단순한 대결구도의 드라마에 지쳤다. 한 사람을 악으로 만들어 가는 방식은 드라마를 너무 게임같이 몰아간다.
악역이 없다고 해서 ‘연애시대’에 드라마가 없을까. 한지승 감독이 생각하는 갈등은 어느 누가 옳고 누가 그른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부족하고 그 부족함이 서로 다른 타인을 만나게 하며, 그 부족함 때문에 서로 부딪치게 된다는 것이 한 감독이 생각하는 드라마인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연애시대’를 보면서 드라마 속의 대결구도 속에 몰입되기보다는 좀더 관조적으로 갈등을 일으키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 편에 서면 그쪽이 이해되고, 저 편에 서면 저쪽이 이해되는 그 상황에서 악역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타 드라마에서 시청자들이 악역으로 인한 감정 소모를 하는 시간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현실을 돌아볼 시간을 갖는다.
훌륭한 연기자들의 캐릭터에 동화(同化)되면서 동시에 악역이 없어 계속 상황을 관조하게 만드는 이화(異化)의 장치를 만든 것은, 분명 이 드라마가 단지 인물들의 짝짓기 같은 연애방정식 이상의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는 걸 명백하게 보여준다.
4. 이야기 전개에 무리함이 없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면 방법의 문제가 남는다. 메시지는 강변한다고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잘 짜여진 이야기 속에서만 공감을 통해 전달된다. ‘이혼 후에 시작된 연애’라는 도발적인 소재를 탄탄히 만들어준 것은 충분한 복선이다.
후에 와서 얘기지만 정윤수(서태화 분)는 은호와의 만남을 준비하기 위해 거의 5회 분량을 수영장 속에 허우적대야 했다. 마지막 회에서 라디오를 통해 은호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 결정적인 순간을 위해 은호의 아버지역을 맡은 김갑수는 매회 엉뚱한 상담을 해야 했다. 동진과의 헤어짐을 미리 예견한 듯 정유경은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봐야 했다. 은호가 유산했을 때 동진이 유산한 아기와 함께 있었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 공준표는 산부인과 의사가 애 낳는 걸 두려워하는 이 웃지 못할 상황을 연기해야 했다.
이렇게 미리미리 복선을 충분한 시간 동안 깔아놓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드라마가 기존 드라마와는 달리 쪽대본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전제작(물론 100% 사전제작은 아니지만 적어도 완성된 대본을 가지고 제작)된 드라마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5. 처음 노선으로 끝까지 간다.
아무리 사전 제작된 것이라 해도 요즘처럼 네티즌의 의견이 절대적인 상황에서 꿋꿋이 노선을 바꾸지 않고 끝까지 간다는 것은 보통 용기가 아니다. 영화계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본 노장의 뚝심 때문이었을까. ‘연애시대’는 그 변함 없는 노선이 완성도를 높였다.
처음 몇 회분의 드라마를 보면서 놀란 것은 오윤아라는 캐릭터를 과감히 버리는 장면에서였다. 초창기 시청률을 견인하는데 있어서 오윤아라는 연기자는 상당한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녀의 푼수 같으면서도 섹시하고 또 정이 넘치는 모습에 많은 시청자들은 공감을 일으켰다. 하지만 드라마는 예정대로 흘러 역할이 끝난 오윤아를 TV에서 내렸다.
후반부 결혼식을 하는 장면 또한 마찬가지다. 동진과 은호가 다시 이어지기를 애타게 바라는 시청자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드라마는 예정대로 동진을 유경과 결혼시켰다. 물론 마지막 부분에 가서 다시 동진과 은호를 연결시키지만 그 과감한 시도는 놀랍기까지 한 것이었다.
6. 시간의 씨줄과 날줄을 엮는 연출력.
과감한 인생의 역전과 재역전이 무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은 이 드라마가 갖는 독특한 연출 덕분이다. 기존 드라마들이 주인공들이 엮어가는 스토리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에 반해 이 드라마는 시간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 그 속에 인물들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었다.
반복되는 장면 위에는 그러나 달라진 인물들이 있다. 그들은 똑같이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지만 시청자들은 시간의 흐름 속(드라마 속)에서 그들의 감정상태가 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간의 흐름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그 속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인간들을 포근하게 끌어안는다.
이 드라마의 관조적인 측면은 바로 이 시간을 잡아내는 감독의 연출력에서 나온다. 그 속에서 웃고 울고 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우리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이다.
7. ‘연애시대’는 연애 이상을 다뤘다.
감독이 만들어준 관조 속에서 ‘연애시대’는 연애에서 시작했지만 연애 이상의 삶의 문제를 파고들었다. 산다는 것의 문제, 삶의 지루함, 일상과 연애의 문제, 인간 존재의 문제까지 보여주었다. 강변하지 않으면서 잔잔하게 우리의 가슴속에 그런 문제들에 대한 질문들을 던져놓았다.
‘연애시대’의 마지막 편에 가면 우리는 이 ‘연애시대’의 이야기에서 점점 확장되어 가는 이야기의 파장을 볼 수 있다. 드라마 속 캐릭터들의 후일담이 등장하다가 난데없이, 일상의 아이들과 사람들이 등장하는 장면에 가서는, 이것이 우리들 삶의 문제라는 관조를 하게 된다. 하지만 어찌 보면 아포리즘에 가까운 그 긴 장면들이 지난 후, 드라마는 다시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동진과 은호의 행복한 일상을 잡는다.
시청자들이 해피엔딩이라고 미소 짓는 순간, 은호의 내레이션이 말한다. 아직 우리 앞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이건 해피엔딩이 아닐 수도 있다고. 해피엔딩이면서 해피엔딩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하는 이 부분이 바로 ‘연애시대’가 연애 이상을 다루고 있다는 증거이다.
드라마는 끝났고 이제 우리는 새로운 제2의 ‘연애시대’를 꿈꾼다. 무리하지 않고 잘 짜여지고 완성도가 높은, 재미있으면서도 삶의 비의를 담은 그런 드라마를 꿈꾼다. ‘이혼 후 시작된 연애’ 이야기, ‘연애시대’는 식상한 기존 드라마들과 이혼한 시청자들이, 그 후에 새롭게 연애를 시작하게 만든 드라마로 기억될 것이다.
mansuri@osen.co.kr
[Copyright ⓒ 한국 최고의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OSEN(www.osen.co.kr) ]
1. 물오른 캐릭터들의 전시장.
‘왕의 남자’ 장생역에서 굵직한 카리스마를 보여줬던 감우성은 ‘연애시대’ 동진역으로 돌아와 섬세한 연기를 선보였다. 과장된 동작도 없고 대사 역시 차분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가 하는 연기는 간단한 손동작 하나, 다리를 떠는 동작, 멍한 표정, 눈빛, 찡그림 하나에서도 감정을 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불만이 가득한 소년 같다. 어찌 보면 작은 일에 좋아하고 화를 내고 삐치고 투덜대는 그의 모습은 바로 우리네 샐러리맨의 자화상 같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 흔한 샐러리맨들의 소년 같은 투덜거림 뒤에는 보이지 않는 일상과 시간의 공격에 대한 처절한 아픔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물론 드라마의 극적인 요소를 위해 ‘유산된 아기’라는 비극이 그들을 덮지만, 그걸 빼내더라도 그에게서 결혼 후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네 샐러리맨의 근원을 알 수 없는 힘겨움을 찾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작업의 정석’의 작업녀에서 ‘연애시대’의 당차지만 아픔이 있는 은호로 돌아온 손예진 역시 꿋꿋이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여성을 잘 대변해주었다. 그다지 재미있어 보이지 않는 일들 속에 파묻혀 하루 하루를 버텨나가는 그녀가 우울에 매몰되지 않고 행복을 찾으려는 모습에서 우리는 감동을 느꼈다. 그녀가 노래를 할 때나 술에 취할 때나 잠이 들 때나 우리는 그 모습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 “모두들 나를 떠나간다”며 눈물을 흘릴 때는 우리도 떠나간 그 누군가(혹은 젊은 시절 내 마음 속을 채워줬던, 하지만 지금은 시간 속에서 사라져버린 그 무엇)를 떠올리며 눈물 흘렸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연기자들이 기존 드라마와 달랐던 것은 넘치거나 모자라는 연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 스토리에 철저히 동진과 은호가 된 그들은 마치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듯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였다. 우리가 캐릭터에 대한 몰입이 잘 되는 이유는 바로 그 자연스러움에 있었다.
2. 조연들이 살아있다.
하지만 그들 주연 옆에는 주연만큼 빛나는 조연들이 있었다. 이야기의 핵심 축을 이루는 공준표와 유지호의 웃음을 터뜨릴 만큼 풋풋한 사랑이야기는 그것만 따로 떼어놓아도 하나의 드라마로 충분했다. 처음 동진을 사랑하게 되는 이혼녀 김미연(오윤아 분)의 유혹적이면서도 푼수 같고 그러면서도 눈물 많던 정감과,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로 있다가 한번 웃어줄 때마다 시청자들 마음까지 밝게 만들어주었던 그녀의 딸, 조은솔 역시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짧은 시간 출연했지만 엉뚱하면서도 강한 인상을 남긴 은호 아버지역의 김갑수, 전형적인 ‘소심남’이지만 따뜻한 배려가 몸에 밴 정윤수(서태화 분)와 푸근한 맏며느리 같지만 또한 당찬 현대여성의 모습을 보여준 정유경(문정희 분) 역시 드라마에 빛을 더해줬다. 이밖에 아픔을 안은 재벌 집 아들 역의 민현중(이진욱 분), 칼날처럼 다가와 서슬파란 아픔을 보여준 최영인(조혜영 분), 푸근하면서도 귀여운 전직 레슬러 나유리(하재숙 분), 헬스클럽과 서점에서 간간이 등장해 즐거움을 주었던 연기자들까지 버릴 조연이 없었다.
기존 드라마에서 조연은 주연을 돋보이게 하거나, 주연의 드라마를 끌고 가기 위해 소모품으로 쓰여지기 마련이던 점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이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연애시대’만이 갖는 힘을 만들어준 것임에 분명하다.
3. 악역이 없다.
이들 캐릭터들은 수많은 부딪침을 만들지만 ‘연애시대’에서 타 드라마들과 다른 점은 눈에 띄는 악역이 없다는 것이다. 드라마는 그 자체가 갈등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전형적인 드라마에서는 좋은 악역이 드라마를 성공시킨다고까지 말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이런 단순한 대결구도의 드라마에 지쳤다. 한 사람을 악으로 만들어 가는 방식은 드라마를 너무 게임같이 몰아간다.
악역이 없다고 해서 ‘연애시대’에 드라마가 없을까. 한지승 감독이 생각하는 갈등은 어느 누가 옳고 누가 그른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부족하고 그 부족함이 서로 다른 타인을 만나게 하며, 그 부족함 때문에 서로 부딪치게 된다는 것이 한 감독이 생각하는 드라마인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연애시대’를 보면서 드라마 속의 대결구도 속에 몰입되기보다는 좀더 관조적으로 갈등을 일으키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 편에 서면 그쪽이 이해되고, 저 편에 서면 저쪽이 이해되는 그 상황에서 악역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타 드라마에서 시청자들이 악역으로 인한 감정 소모를 하는 시간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현실을 돌아볼 시간을 갖는다.
훌륭한 연기자들의 캐릭터에 동화(同化)되면서 동시에 악역이 없어 계속 상황을 관조하게 만드는 이화(異化)의 장치를 만든 것은, 분명 이 드라마가 단지 인물들의 짝짓기 같은 연애방정식 이상의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는 걸 명백하게 보여준다.
4. 이야기 전개에 무리함이 없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면 방법의 문제가 남는다. 메시지는 강변한다고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잘 짜여진 이야기 속에서만 공감을 통해 전달된다. ‘이혼 후에 시작된 연애’라는 도발적인 소재를 탄탄히 만들어준 것은 충분한 복선이다.
후에 와서 얘기지만 정윤수(서태화 분)는 은호와의 만남을 준비하기 위해 거의 5회 분량을 수영장 속에 허우적대야 했다. 마지막 회에서 라디오를 통해 은호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 결정적인 순간을 위해 은호의 아버지역을 맡은 김갑수는 매회 엉뚱한 상담을 해야 했다. 동진과의 헤어짐을 미리 예견한 듯 정유경은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봐야 했다. 은호가 유산했을 때 동진이 유산한 아기와 함께 있었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 공준표는 산부인과 의사가 애 낳는 걸 두려워하는 이 웃지 못할 상황을 연기해야 했다.
이렇게 미리미리 복선을 충분한 시간 동안 깔아놓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드라마가 기존 드라마와는 달리 쪽대본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전제작(물론 100% 사전제작은 아니지만 적어도 완성된 대본을 가지고 제작)된 드라마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5. 처음 노선으로 끝까지 간다.
아무리 사전 제작된 것이라 해도 요즘처럼 네티즌의 의견이 절대적인 상황에서 꿋꿋이 노선을 바꾸지 않고 끝까지 간다는 것은 보통 용기가 아니다. 영화계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본 노장의 뚝심 때문이었을까. ‘연애시대’는 그 변함 없는 노선이 완성도를 높였다.
처음 몇 회분의 드라마를 보면서 놀란 것은 오윤아라는 캐릭터를 과감히 버리는 장면에서였다. 초창기 시청률을 견인하는데 있어서 오윤아라는 연기자는 상당한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녀의 푼수 같으면서도 섹시하고 또 정이 넘치는 모습에 많은 시청자들은 공감을 일으켰다. 하지만 드라마는 예정대로 흘러 역할이 끝난 오윤아를 TV에서 내렸다.
후반부 결혼식을 하는 장면 또한 마찬가지다. 동진과 은호가 다시 이어지기를 애타게 바라는 시청자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드라마는 예정대로 동진을 유경과 결혼시켰다. 물론 마지막 부분에 가서 다시 동진과 은호를 연결시키지만 그 과감한 시도는 놀랍기까지 한 것이었다.
6. 시간의 씨줄과 날줄을 엮는 연출력.
과감한 인생의 역전과 재역전이 무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은 이 드라마가 갖는 독특한 연출 덕분이다. 기존 드라마들이 주인공들이 엮어가는 스토리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에 반해 이 드라마는 시간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 그 속에 인물들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었다.
반복되는 장면 위에는 그러나 달라진 인물들이 있다. 그들은 똑같이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지만 시청자들은 시간의 흐름 속(드라마 속)에서 그들의 감정상태가 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간의 흐름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기에 그 속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인간들을 포근하게 끌어안는다.
이 드라마의 관조적인 측면은 바로 이 시간을 잡아내는 감독의 연출력에서 나온다. 그 속에서 웃고 울고 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우리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이다.
7. ‘연애시대’는 연애 이상을 다뤘다.
감독이 만들어준 관조 속에서 ‘연애시대’는 연애에서 시작했지만 연애 이상의 삶의 문제를 파고들었다. 산다는 것의 문제, 삶의 지루함, 일상과 연애의 문제, 인간 존재의 문제까지 보여주었다. 강변하지 않으면서 잔잔하게 우리의 가슴속에 그런 문제들에 대한 질문들을 던져놓았다.
‘연애시대’의 마지막 편에 가면 우리는 이 ‘연애시대’의 이야기에서 점점 확장되어 가는 이야기의 파장을 볼 수 있다. 드라마 속 캐릭터들의 후일담이 등장하다가 난데없이, 일상의 아이들과 사람들이 등장하는 장면에 가서는, 이것이 우리들 삶의 문제라는 관조를 하게 된다. 하지만 어찌 보면 아포리즘에 가까운 그 긴 장면들이 지난 후, 드라마는 다시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동진과 은호의 행복한 일상을 잡는다.
시청자들이 해피엔딩이라고 미소 짓는 순간, 은호의 내레이션이 말한다. 아직 우리 앞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이건 해피엔딩이 아닐 수도 있다고. 해피엔딩이면서 해피엔딩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하는 이 부분이 바로 ‘연애시대’가 연애 이상을 다루고 있다는 증거이다.
드라마는 끝났고 이제 우리는 새로운 제2의 ‘연애시대’를 꿈꾼다. 무리하지 않고 잘 짜여지고 완성도가 높은, 재미있으면서도 삶의 비의를 담은 그런 드라마를 꿈꾼다. ‘이혼 후 시작된 연애’ 이야기, ‘연애시대’는 식상한 기존 드라마들과 이혼한 시청자들이, 그 후에 새롭게 연애를 시작하게 만든 드라마로 기억될 것이다.
mansur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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