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드라마 한 편이 폭죽처럼 터졌고, 또 한 명 스타의 태동이 예견되었다.
스타는 만들어진다고 했지만, 이미 태어나 있기도 하다. 가공되지 않은 본연의 모습, 그 자체가 이미 스타라는 상업적인 코드에 너무나도 일치하는 남자, 강동원이라는 우성인자에 대하여.
헤어&메이크업|홍현정·스타일리스트|한혜연·에디터|안재림
Photo by JEON HO SUNG
여자는 판타지를 좇는다. 현재하는 대상을 찾는 곳은 화면 너머에 존재하는 비현실적인 공간. 여자에게 남자 배우란 어쩌면, 판타지를 실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늘 열망하고 갈망하는 그러나 존재의 불가능을 이미 예감하고 있는, 그래서 판타지에서만 존재할 수밖에 없는 완벽한 조건들이 조합된 존재.
강동원이라는 스타성의 출발도 바로 이곳이다.
드라마 ‘위풍당당 그녀’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여자들의 향수 어린 추억을 되살려 놓으면서 시작되었다. 오래된 만화 속의 이상형, 그는 그런 의미였다. 예쁘고 나른한, 선이 가는 얼굴에서 느껴지는 서정성과 경상도 사투리로 말하는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남자다움에 대한 신뢰성. 그리고, 그런 모습 자체가 실제의 그의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는 기대감.
작품마다 전혀 다른 자신의 모습을 끄집어내는 공력 있는 대배우들, 그들 역시 자신을 완벽히 벗어나는 경계 밖의 존재로 변신할 수는 없다. 연기란 것의 속성이다. 더욱이 신인의 경우 캐릭터는 대본과 연기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본과 자신의 캐릭터로 만들어진다. 강동원, 그가 프레임 안으로 처음 등장했던 순간, 그는 이미 여자들의 향수 어린 판타지 속 인물이었다.
이제는 모르는 사람도 없을 얘기지만, 그의 사투리는 실제 상황이다. 경상남도 거창산(産)의 제대로 구수한 말투. 모델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이미 그에 대한 소문은 자자했다. 완벽히 잘생긴 얼굴에, 세상에! 사투리를 쓰는 남자 모델이 있다고 했다. 그러고도 얘기는 한참 계속되었다. 도대체 사투리를 고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방송은 아무래도 힘들지 않겠냐, 차라리 한국말을 못하는 재미교포가 낫겠다. 그랬던 그가 사투리를 입에 단 채 나타났다. 아, 이런 방법도 있었구나. 연출가들의 융통성과 거시적인 안목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왜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는 드라마 속에서조차 경상도 ‘싸나이’일 수 있다는 것을. 기름기 없고, 방정맞지 않은 저음의 구수한 남자. 완벽한 외모를 가진 남자에 대한 거부감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서울말의 신인이 사투리를 쓰는 것과 사투리의 신인이 서울말을 쓰는 것, 모두 위험도가 높은 첫 등장이다. 경상도 출신의 사투리를 쓰는 의사, 그의 첫 등장으로 이보다 더 완벽한 캐릭터는 없었다. 그러나, 사투리를 쓰는 남자, 그건 배려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선택이었을 뿐. 오디션에서, 이미 그는 서울 표준말을 쓰고 있었다. 그렇게 합격했고, 감독이 드라마 스토리상, 사투리냐 표준말이냐를 선택하라고 했고, 사투리를 선택했을 뿐이었다.
그와 인터뷰를 하는 내내 속으로 양을 세었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양 네 마리… 천천히 생각하고 천천히 시작한다. 그리고 천천히 끝낸다. 그가 대답을 한다. 잠깐, 양이 세어진다. 다시, 대답이 이어진다. 그리고, 양이 세어진다. 천천히 생각하고, 천천히 말하고, 그 말마저 별반 들을 일이 없다. 나른함, 이건 여자들의 판타지 속 또 다른 코드다. 세상의 눈에 무관심하고, 손가락 움직임까지 느릿느릿하고, 잠이 들면 깨지 못하고. ‘꽃보다 남자’의 루이처럼. 부잣집 도련님 츠카사는 현실적인 남자고, 서정적인 루이는 동경의 남자다. 존재 자체로 여자들의 구애를 받는 건, 역시 언제나 루이 쪽이 먼저다.
강동원, 역시 루이 쪽이다.
드라마 한 편이 폭죽처럼 머리 위로 터진 후, 그는 무섭다는 말을 했다. “방송국에서 생기는 일이란 건…. 무서워요, 그쪽은.” 이미, 몇 차례 신문 기사와의 전쟁을 겪은 후여서 그런지, 말을 삼갔다. 몇 번의 ‘말할 수 없어요’, ‘극비예요’의 사소한 실랑이가 오갔지만, 결국, 웃으며 고개를 돌린다. 사소한 얘기들이 신문 기사가 되어 한 면 가득 장식을 하기도 하고, 정말 별것 아닌 얘기들이 그럴듯한 포장의 기술을 거쳐 한 편의 시나리오가 되기도 하는 곳. 그러나 세상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것을 이제야 깨달은 그가 오히려 당황스럽다. 이미 2년도 넘게 이쪽에 서 있지 않았던가. 자신의 존재가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관심조차 없다가, 아니 생각해본 적도 없다가, 갑자기 포탄처럼 쏟아지는 공세에 그는 아예 입을 다물 참이다. 약간의 비현실성과 이상주의. 강동원이 가진 또 다른 코드다.
그러나, 무서운 건 누군가를 낚아채기 위해, 바람 부는 반대편에서 자신의 존재를 숨긴 채 포복해 있는 육식동물 같은 언론뿐이 아니다. 똑같은 실수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대중 앞에 보이는 것, 그것 역시 두려움이다. 이번 작품이 끝나고 바로 들어갈 작품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결론은 아직은 아니다, 로 끝났다. 지난 작품을 하면서 실수했던 것들을 고치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똑같은 실수를 한다는 것, 그건 생각하기도 싫었다. 아직, 카메라 앵글도 잘 모르겠고, 감정 같은 것도 이해가 안 되는 게 많다고 말하는 그를 보니, 최소한 어느 날 갑자기 음반을 들고 나타나거나, ‘천생연분’에 출연해 처음 본 여자한테 꽃다발을 건네지는 않을 것 같다. 상품으로 팔리기 위해 부지런히 발품을 파는 또래 아이돌 스타들로부터는 채워지지 않는 묘한 신뢰감이 느껴진다.
약간 처지고 선량하게 생긴 눈, 사랑스러운 입술, 나른한 움직임과 말투. 여성스러운 외모와는 반대로, 그의 남성성은 의외로 충만하다. 다리에 쥐가 나도록 뛰는 게 죽도록 좋았던 축구, 이건 그의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되어, 부모님의 눈을 피해 중고등학교 시절까지 이어졌다.
지금도 모델 일을 함께했던 조한선(고등학교 때 축구 선수였던 건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다)과 뛰어나가 축구를 한다. 드라마 속, 신성우와의 농구. 3점 슛이 마구 쏘아지던 장면 역시, 편집 기술이 아닌 연속 동작 아니든가. 무뚝뚝하고 말을 아끼는 것, 이것 역시 스테레오 타입화된 남성성의 상징이라면, 그에게는 이 또한 풍부(?)하다.
여자의 향수 어린 판타지를 자극할 수 있는 스타란, 키워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그렇게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권상우, 이병헌, 배용준은 이미 현실적이다. 오랜 시간을 걸려 쌓은 아우라가 그들에 대한 신뢰감을 낳지 않았던가.
강동원, 그의 가공되지 않은 이미지 자체가 지금 우리가 찾고 있는 판타지 속 남자의 모습과 이미 일치하고 있다. 존재 자체가 상업적일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 그는 우성인자의 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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