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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말걸기 ◀◀/● 아딸라의 수다

재작년 아이 반 소풍을 기념하려 만들어주었던 동영상 하나




벌써 2년전 -

담임선생님이 부탁을 해 오셨었다. 1박 2일로 우리 반만 시골 체험을 하러 가는데 도와 주실 수 없냐고.
그러마고, 부탁하시는 것, 내 뭐든 다 해 드릴 수 있다고 오케이했다.

시원한 음료들을 공수해 달라 하셔서 주변에 아이스박스를 있는 대로 섭외해서 사이다와 설레임을 가지고 갔다.

남자 아이들끼리 가서 식사, 청소, 잠자리 등등 여러 가지를 자력으로 해결하다 보면 부족한 부분이 있고 바로 그 부분이
내가 채워 줄 역할이었다.  선생님 보조 역할을 빙자하여 갖가지 뒤치닥거리를 해 주는 것.

꼬불꼬불 산길을 한시간여 차를 몰아 들어가서 미리 그 마을에 가 있었는데 도착할 시간이 되어서도 아이들이 오지를
않았다. 읍내 터미널에서 이 산골로 들어 오는 지선 버스가 2시간에 한번 있는데 그 버스를 실수로 애들이 놀다가 놓쳐
버렸단다.

하는 수 없이 담임 선생님과 나, 그리고 다른 한 분의 어머니의 차량이 동원되서 몇 번을 왔다갔다 하며 애들을 실어 날랐다.

애들은 체육 놀이를 하고 새끼줄 꼬기 놀이, 줄다리기, 팔씨름 등등을 했다.  교장, 교감 선생님의 방문 타임도 있었다. 
좋은 말씀 한 마디를 해 주시고 잘 생긴 큰 나무 아래서 기념 촬영 한 방.

해가 기웃기웃 저물기 시작할 무렵부터 아이들은 그 시골학교 운동장에서 족구를 했다. 노을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족구하는
소년들의 모습이 참 아름다왔다. 저렇게 아름다운 시간을 영원히 잡아 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녁 식사 시간엔 조별 요리 대회도 했다. 남자 아이들인데도 제법 솜씨들이 좋았고 그 요리의 의미에 관해 조장들이 발표를
하는데 다들 재기발랄하게 했다. 명랑하고 예쁜 아이들이었다.

요리하는 팀들 사이로 다니며 요리를 도와 주고, 식사가 끝난 뒤 주변 청소와 정리들을 도와 주었다. 

자기 전, 방청소도. 출장 파출부같은 느낌이 좀 들긴 했지만 - 그래도 우리 애들인데, 즐겁게 했다. 그리고 애들이 다 기본적으로
자기 주변 일을 혼자서도 잘 하더라고.

밤이 깊어가자 인근 공터에 가서 캠프 파이어와 장기자랑 놀이를 했다. 불똥들이 밤하늘로 날아 올라가자 아이들은 신나서
춤도 추고. 갖고 왔던 고구마랑 머쉬 멜로우등을 꼬챙이에 끼어 구워 먹기도 했다. 가을 바람이 제법 쌀쌀해 옷깃을 여몄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추워서 더 아름다웠던 것 같다.

귀퉁이에 끼여 같이 자려했지만 도저히 주변 여건이 여의치가 않았다. 세수하고 츄리닝까지 갈아 입긴 했는데
이불도 부족하고 공간도 부족하고.  하는 수 없이 밤 늦은 시각에 껌껌한 산길을 다시 운전해 집에 돌아와 잤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다시 그 곳에 가 보니 다들 잠이 덜 깨 아침 식사 준비고 뭐고 잘 되고 있질 않았다.

다른 어머니 한 분과 오뎅국을 끓이고 밑반찬들을 꺼내 밥상을 차렸는데 밥이 부족했던 기억이.

설겆이는 내기에서 진 두 학생이 했다. 산더미같던데 꾸역꾸역 열심히 하더라. 그 사이 다른 아이들은 오목놀이를 했고.

버스 오기 전까지 마을 정자 아래서 다들 오랫동안 기다렸다. 무료해서 아이들은 나름 여러 놀이를 생각해 가며 시간을 때웠다.
나는 그런 아이들의 얼굴들을 줌으로 당겨가며 찍었고.

아... 평생 이렇게 심심하도록 심심할 시간이 몇 번이나 올까? 

그냥 사진만 찍어 나눠 주려니 섭섭해서 동영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선생님께 영상을 드렸는데 - 

사실 내가 만든 영상을 내가 보면서도 울컥했었다.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이렇게 예쁜 소년들이 이제 청년들이 될 거고
많은 것을 책임지고 헤쳐 나가며 살아야 되겠지. 그 때 혹 힘들더라도 아름다왔던 시간들이 너희들에게 힘이 되준다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선생님도 이 영상을 보고서는 너무 기뻐하셨단다. 수업하러 들어 가는 반마다 우리 반 소풍 영상이라며 자랑하며 틀어 주셨고,
종내에는 선생님들 조례 시간에 트셨다고. 

교장 선생님, 깊은 감명을 받으셔서 학교 홍보 동영상 제작에 관심을 갖게 되셨다는 후문.

담임 선생님은 그 후 전근을 가셨고, 1박 2일동안 아들 반 친구들과 내내 부대껴서인지 이후 학교에 시험 감독 등으로 방문할 일이
생기면 내게 꾸벅 인사를 해 오는 친구들이 많다. 

볼 때마다 아이들이 부쩍 부쩍 자라고 있다. 이제 곧 고난의 여름을 보내고 결전의 가을이 다가 온 뒤 피를 말리는 결정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 이제 이 아이들도 서로간에 안녕을 고하겠지. 

비록 다시 만나 회포를 푸는 일이 자주 있다 하더라도 같은 공간 안에서 늘 웃고 떠들던 저 시간들이 그대로 다시 돌아 올 수는
없을 것. 

너무 소중한 우리 아이들의 너무 소중한 시간들. 아름답게 보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