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구정은 처음으로 집에서 조용히 쉬는 설이었다.
집에만 있기 뭐해서 남편이랑 같이 차타고 휭~~
포항까지 가는 데 두 시간쯤 걸린 것 같다. 도착한 이 곳은 호미곶이다.
연날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바람의 방향이 거시기한지 연들이 제대로 하늘로 날아 오르질 못하고
죄다 땅으로 꼬꾸라지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실들이 거미줄처럼 곳곳에 포진해 있었고 조심스레
그 실 아래를 드나드는 사람들이 보였다.
예쁜 모자를 쓰고 갔었는데 바람이 너무 세서 ㅜㅠ
흙바닥에 날라서 나뒹굴었다.
예쁘고 상냥한 언니가 줏어 주었다. 미소를 띄며 -
차 안에다가 다시 갖다 넣어 놓고 맨 머리로 다녔다.
저 끝에 보이는 손바닥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지상에 설치물로 있는 거고 다른 하나는 바닷물 속에 잠겨져 있는 것.
여기도 관광지라서 멀리 회타운 지붕이 보인다.
지상 손바닥 뒤에는 횃불 조형물도 있고.
그 뒤를 보면 일출 때의 불씨들을 보존해 두는 보관함이 있다.
멀리 바다 위 바위들 위에 하얀 따개비들마냥
옹기 종기 몰려 있는 게 보이길래 자세히 보니 갈매기들.
날씨가 흐려서인지 뭔가 바닷가 느낌이 을씨년 스러웠다.
내 사진도 몇 장 찍었는데 결과물을 오늘에서야 찬찬히 보게 되었다.
와... 사진찍어 놓고 보니 나이든 티가 팍팍 난다.
코 밑에다가 거울을 들여다 놓고 볼 땐 몰랐는데 이렇게 사진찍어서 보니까
객관적인 눈으로 내 자신의 외모가 들여다 보인다.
여러 큰 일들을 겪어서인지 표정도 뭔가... 세상 다 산 듯 달관해있는 걸로 보이고
어쩌면 그 날 날씨가 우중충해일 수도 있겠지만 -
그래도 내 사진을 가만 들여다 보니 드는 생각이란 게 -
아... 내가 이렇게 참 별로구나... 좀 더 겸손하게 살아야겠다... 는 것이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참 별로였다. ㅎㅎㅎ
살도 좀 빼고 - 얼굴 여백이 장난 아니었다.
그나저나 갈매기들이 너무 예뻤다.
하얀 얼굴, 동그랗고 앙징맞은 얼굴, 새침한 눈매, 볼록하고 보들보들해 보이는 배,
그리고 포인트가 되어 주는 빨간 발, 거기 깔맞춤해있는 빨간 부리.
아... 예쁘지... 정말 -
움직이는 피사체 초점 고정하는 거, 뭐더라? 그거 맞춰 놓고
찍었는데도 워낙에 망원줌을 당겨놓다 보니 죄다 초점이 다 나가 있었고
건질 만한 게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 날 찍은 사진들이 대부분 다 그랬다.
아마 날씨가 어두워서가 아닐까 싶다. 선명하게 나온 게 별로 없고 - .
렌즈가 어두워서일 수도. 하지만, 그렇다고 놀러 나가면서 무거운 대포 들고 나갈 수도 없고.
그냥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야지.
음... 예쁜 놈.
귀여운 놈.
바다 쪽에서 뭍을 향해 본 손바닥 형상 주변 풍경이다.
저 중앙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바로 새천년 기념관이다.
이곳은 가로등도 다 저렇게 한반도 호랑이 형상으로 장식되어 있다.
예전에도 한번 와 봤었던 등대 박물관.
안에 볼만한 게 많아서 그 때도 엄청 꼼꼼하게 다 둘러 봤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구정날은 휴관.
온 김에 둘러 보려했는데 그냥 포기.
예전에 한번 봤던 걸로 만족하며 돌아섰다.
그 앞 오뎅 가게에서 오뎅도 하나 사 먹고
핫도그도 하나씩 베어 물고.
오뎅 국물을 한 컵만 들고 온 것에 마지막 한 방울 마실 때 아쉬워하며
- 당신이 마지막 다 마신 거야?
- 응. 왜? 남겨 줄걸 그랬나?
- 당신이 좀 남겨 줄줄 알고 아까 나 조금만 마신건데 -
등대 박물관 쪽에서 본 새천년 기념관.
서기 2천년을 맞으며 세워진 곳이다.
다시 새로운 천년을 맞는다는 의미로.
들어가 보니 예전 미국 선교사들이 남겨 놓은 옛날 옛적 사진들이랑
60년대, 70년대 사진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사진 속 사람들은 이제 이 세상에 없겠지.
사진 속 저 사람들의 표정은 이렇게나 생동감있는데.
잠시 시간의 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과거의 사람들. 그리고 지금의 나. 대략 30년 쯤이 지난 후, 내가 없는 미래의 세상.
소망 나무.
옆의 데스크에 있는 종이에 소원을 적어서 저 나무에 매어 놓는다.
내년 새해 첫날 저 종이들을 수거해서 다 태운단다.
적어 놓기는 가득 적어 놓았는데 내년까지 다 이루어질 수 있을까?
내년에 다 이루어서 기쁘고 행복한 새해를 맞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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