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 친구 2 >의 주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먹잇감을 가지고 노는 맹수, SBS < 상속자들 >에서 최영도(김우빈)는 차은상(박신혜)에게 그런 존재다. 은상에 대한 그의 감정은 아마도 사랑이다. 하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여자아이에게 영도는 김춘수의 ‘꽃’을 인용하며 시익 웃는다. “‘꽃’이 싫어, ‘나에게로 와서’가 싫어? 골라 봐. 더 싫은 거 시키게.” 좋아하는, 그리고 가난한 여자에게 접근하는 드라마 속 수많은 왕자님처럼 영도는 은상을 괴롭힘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려 애쓴다. 붙잡아주기 위해 발을 걸고, 돌아보게 하기 위해 음료수를 쏟는다. 그러나 처음부터 은상의 옆자리는 그의 것이 아니었고, 심지어 영도는 사랑에만 서투른 ‘나쁜 남자’가 아니라 실제로 악랄한 성품을 지녔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며 자라왔다 해서 그가 타인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이해받을 수는 없다. 동급생을 ‘사배자(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 입학생)’로 낙인찍어 집요하게 짓밟고, 친구였던 김탄(이민호)을 첩의 자식이라며 모욕하는 영도는 그저 ‘나쁜 새끼’일 뿐이다. 사랑에 빠진 뒤에도 그는 약자를 괴롭히기를 멈추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거절한 은상에게 선언한다. “난 이제 너 못 괴롭혀. 마음 아파서. 그래서 너 빼고 다 괴롭힐 거야.” 그러나 설정 과잉으로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대사들조차 강약과 완급을 리드미컬하게 조절하고, 호흡과 표정 근육의 미세한 차이를 통해 찰나에도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김우빈의 연기만은 < 상속자들 >에서도 눈에 띄게 매혹적이다. 은상을 곤경에 처하게 한 뒤 구해주고서 잠시 사이를 두고, 상대를 바라보고, 거절당하기 직전에 한발 물러섰다 다시 다가서는 템포는 느슨하다가도 바로 다음 순간 팽팽하게 바뀌어 공기를 긴장시킨다. 사랑받지 못해 제대로 사랑할 줄 모르는 비뚤어지고 미성숙한 남자가 빙글빙글 웃으며 위악적인 농담으로 상처받은 진심을 덮어버리는 전개는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지만, 김우빈의 개성은 최영도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숨을 불어넣어 뚜렷한 흔적을 남긴다. 물론 비주얼은 종종 캐릭터를 좌우한다. SBS < 신사의 품격 >에서 박민숙(김정난)의 김동협(김우빈)에 대한, 그리고 < 상속자들 >에 은상의 모친 역으로 출연 중인 배우 김미경의 김우빈에 대한 첫인상이 똑같이 “정말 말 안 듣게 생겼다”였다는 일화는 그가 일련의 캐릭터에 있어 선천적인 장점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새빨갛게 불타는 듯한 머리카락을 하고 동급생을 향해 알루미늄 배트를 휘두르며 이를 드러내 웃던 광기 어린 남자아이, KBS < 화이트 크리스마스 >의 ‘미친 미르’로 처음 등장했을 때도 김우빈은 신인으로서는 드물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88cm의 키에 위압적인 느낌마저 들 만큼 큰 체격, 항상 눈을 치켜뜨고 있는 듯한 삼백안이 주는 분위기는 남달랐고 그는 < 신사의 품격 >과 KBS < 학교 2013 >에 거친 현재, 혹은 과거를 지닌 고등학생으로 잇따라 출연했다. 하지만 모든 배우에 대한 평가가 그러하듯, 김우빈을 ‘반항아’라는 하나의 카테고리에 집어넣는 것은 게으른 태도다. 스스로 “아픔이 많은 친구”라 설명했던 < 학교 2013 >의 박흥수는 꿈과 친구를 동시에 잃고 억지로 상처를 덮어둔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남자아이였다. 본 경기에 나서기도 전에 포기해버린 선수처럼 넓은 어깨를 웅크리고 시선을 피하며 남의 눈에 띄고 싶어 하지 않는 그로부터, 주목받기를 좋아해 학교 옥상에서 번지점프를 했던 강미르의 그림자는 찾을 수 없었다. < 신사의 품격 >의 김동협 역시 자신보다 나이가 두 배는 많은 김도진(장동건)으로부터 ‘삥’을 뜯으며 “말 짧으면 곤란하다”고 위협할 만큼 센 척하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어른들의 도움을 받게 되며 자존심을 내세우는 대신 스스로 삶을 책임지는 방식을 배우는 소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교복을 벗고 등장한 < 친구 2 >에서 김우빈은 짐작했던 가능성 이상의 에너지를 보여준다. 기억조차 희미한 아버지 동수(장동건)가 살해된 뒤 여러 번 바뀐 새아버지들의 폭력에 시달리며 가슴 속에 분노를 쌓아두고 자란 성훈(김우빈)은, 그토록 원했던 ‘어른 남자’가 된 뒤에도 자신의 분노를 감당하지 못한다. 조직에서 큰형님뻘인 준석(유오성) 앞에서도 기죽은 기색 없이 “우짜피 함 사는데 남자가 좀 대차게 살아야 안 되겠습니꺼”라고 당차게 치받는 배짱은 성훈을 젊은 건달들의 ‘대가리’로 올려놓을 만큼 남다르지만, 동시에 그는 불만 댕기면 화르륵 전소될 것처럼 아슬아슬한 남자다. 그래서 사나운 눈매와 꺼칠한 목소리, 휘적휘적 걸어가 긴 팔다리를 휘둘러 사람을 두들겨 패는 박력은 상대의 뼈를 바수어버릴 듯한 기세 그대로 전달된다. 액션, 정확히 말하면 육탄전에 최적화된 신체 조건과 본능처럼 역동적인 움직임은 특히 성훈이 좁은 찜질방에서 목침을 집어 들어 상대를 후려치는 신에서 일종의 야만스런 쾌감을 선사한다. 동수를 죽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은기(정호빈)가 입원한 병실을 찾아가 칼을 꽂은 뒤 얼굴에 피가 튀어 악귀 같은 몰골이 된 성훈이 마스크 위로 벌건 눈만 드러낸 채 몇 차례 더 상대를 난도질하는 순간의 살기 역시 압도적이다. 그리고 준석과의 유사 부자 관계가 무너진 뒤 돌아서 가며 철철 눈물을 흘리는 이 커다란 남자의 모습은 상처 입은 맹수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금 김우빈을 주목하게 되는 이유가 < 상속자들 >과 < 친구 2 >라는 결과물 그 자체 때문만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대중에게 자신의 개성을 받아들이도록 만든 방식이다. 장신의 젊은 배우는 많지만 김우빈은 종종 규격을 벗어난 사람처럼 거대한 느낌을 주고, 전통적인 의미의 미남이 아닌 대신 야성적인 느낌의 얼굴을 가졌다. 그는 어쩌면 한계로 작용했을지 모르는 독특한 외모에 풍부한 표현력을 더할 때 연기의 폭과 깊이를 얼마나 늘릴 수 있는가를 스스로 증명했다. 그래서 현재 배우 김우빈을 묘사하기에 적절해 보이는 두 단어, 매혹(魅惑)은 ‘미혹할 혹(惑)’을, 잔혹(殘酷)은 ‘독할 혹(酷)’을 쓴다는 것은 재미있는 사실이다. 말 그대로, 독하게 홀리는 남자다. 최지은기자 real@ize.co.kr 머니투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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