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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기나는방/드라마·영화

[기사 씨네21 김혜리가 만난 '지붕뚫고 하이킥'

<지붕 뚫고 하이킥!> 울다가 웃다가… 정신 사나워 죽겠어!
글 : 김혜리   사진 : 오계옥 | 2009.12.08  



하루는 배를 잡고 웃다 눈물을 찔끔거리고, 하루는 애처로워 눈시울을 붉힌다. 꼬박꼬박 회당 두개의 시추에이션을 완결시키면서도 인물들의 운명에 연연하도록 관심을 붙들어놓는다. 오후 7시45분대 MBC 일일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극본 이영철·이소정·조성희, 연출 김병욱·김영기·조찬주)이 우리를 정신 사납게 만들고 있다. 인기도 김병욱 PD의 전작 <거침없이 하이킥> 못지않다. 일일시청률 (11월5일 TNS미디어 집계)이 20% 고지에 올랐고 광고 판매율도 100%를 웃돈다는 소문이다. 120회로 예정된 시리즈가 반환점을 향해 달려가는 이즈음 <씨네21>이 일산 드림센터 제5스튜디오의 ‘지붕 없는’ 순재네 집을 방문했다. 김병욱 시트콤을 꾸준히 지켜보아온 듀나의 글과 PD의 중간소감도 듣는다.

“시트콤이라며~!” “다섯살짜리 딸이 시트콤 보다가 울었어요.” “상식적인 선에서의 시트콤을 원합니다.” “왜 시트콤을 보면서 걱정을 해야 할까요?”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일부 글의 제목은 김병욱 PD의 일곱 번째 작품 <지붕 뚫고 하이킥!>(이하 <지붕킥>)이 일으킨 독특한 반향을 보여준다. 분명히 <지붕킥>은 같은 인물이 반복 출연하고 스튜디오 촬영이 큰 비중을 차지하며 웃음소리가 효과로 깔리는 시추에이션 코미디다. 또한, 대가족과 그 주변 이웃을 구성원으로 삼는 김병욱 시트콤의 익숙한 구도도 보존하고 있다. 혼돈의 원인은 장르의 암묵적 계약을 넘어서는 정서다. <지붕킥>은, 워낙 인간의 보편적 어리석음과 거기서 비롯되는 페이소스를 기본 재료로 취했던 김병욱 PD의 전작과 나란히 세워놓아도 비죽 튀어나온다. 상황은 훨씬 처절하고 인물들의 행태는 더 절박하거나 병적이며 드라마는 슬픔과 콤플렉스에 한층 예민하게 반응한다. 잠깐. 김병욱 시트콤은 ‘오바’를 해충처럼 질색하는 세계 아니었던가? 김 PD는 진짜 감정을 직면하는 것과 과잉은 다른 사안임을 말한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절절한 속내를 드러내면 촌스럽다고 여기는 문화에 길들여져 진심과 괴리된 채 생활하는 데에 익숙해진 것 같아요. 표현하는 코미디의 형식이 낡지 않았다면 바닥에 깔린 욕구와 정서야 좀 뜨거우면 어떠냐는 생각이 있었어요.”

일례로 6회 에피소드를 보자. 강원도 산골에서 상경한 세경과 신애 자매는 노숙생활을 하다 실수로 서로를 잃어버린다. 세경은 한옥집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넋이 나간 채 동생을 찾아다닌다. 신애 역시 목 놓아 울며 언니를 찾아 헤매는데, 줄곧 오열하는 틈틈이 주택가에 배달된 우유를 훔쳐 마시고, 편의점에 남겨진 컵라면과 단무지를 싹싹 비우고 노숙자 무료 급식의 밥풀까지 떼먹는다. 한편 도와주러 나섰던 정음은 옷가게 쇼윈도에 정신이 팔리고 인나와 광수는 쾌청한 날씨에 홀려 교외로 놀러가버린다. 밤이 이슥하도록 뒤꿈치에 피를 흘리며 뛰어다니던 세경은 환청처럼 동생의 음성이 들리자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에 귀를 대고 엎드려 운다. 어느 시청자는 “갈 곳 없는 아이가 거리에서 음식 주워 먹는 게 웃기냐?”고 항의했다. 아마 <지붕킥>의 작가와 감독은 웃기기도 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삭막하고 화나고 슬픈 상황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래서 그 모든 감정을 23분 러닝타임 안에 숨차게 포개놓는다.

가난이 코미디와 비극의 원천
<지붕킥>의 차별성은 주로 세경과 신애의 존재에서 나온다. 형식적으로 우선 <지붕킥>은 <귀엽거나 미치거나>(2005)에서 시작돼 <거침없이 하이킥>(2006~2007, 이하 <하이킥>)으로 이어진, 개별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장기적 서사를 적극 밀어붙이고 있다. 세경 자매가 헤어진 아빠를 찾는 과정이 이야기의 척추다. 둘째, 낯선 환경에 던져진 소녀들에게 시점을 부여함으로써 성장드라마 성격이 강해졌다. 한편 이들의 강한 자매애와 독립성은 가족 안에서 거의 감화를 받지 못하는 순재네 아이들- 준혁과 해리- 도 성장시킨다. 셋째, <지붕킥>에서 가난이 초래하는 불편과 거기서 파생되는 다양한 감정은 코미디와 비극의 원천이다. 부잣집에 식모로 입주한 세경의 생활이 계급의 대조를 때로 노골적으로 보여준다면 명문대생인 척 과외교습을 하면서 카드빚에 쪼들리는 대학생 황정음은 소비를 결코 따라잡지 못하는 상대적 빈곤을 코믹하게 표현한다. 김병욱 PD와 제작진은 <지붕킥>에서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부러 정의롭게 묘사하거나 픽션을 빌려 사과하지 않는다. 그냥 가난을 얼굴 앞에 확 들이밀고 돈 때문에 인간적 품위를 지킬 수 없는 세세한 상황에서 코미디와 멜로를 만들어낸다. “60분짜리 서사에는 흘러가야 할 큰 방향이 있어서 이런 작은 이야기들을 끼워넣기 힘들어요. 어찌보면 25분짜리만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이라 곧 장르의 자부심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것이 제게는 다른 어떤 가치보다 우선해요.” 오랫동안 영화나 정극 드라마를 향해 갈증을 품었던 김병욱 PD는 이제 25분짜리 서사의 고유한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제가 하고 싶은 드라마를 할 뿐 그것이 어떤 형태로 규정되는지는 관심이 없고요. 웃음 효과도 방송사와 약속이라 조연출이 까는 거지, 전 빼도 상관이 없어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채널이 고장난 것도 아닌데(웃음) 다른 걸 보면 되지 않을까요?”

컷의 리듬대로 악보 연주하듯 촬영
“뭐 제가 사갈 것은 없을까요?” 취재 전날 인사 문자를 보내자 김병욱 PD의 시름시름한 답신이 날아왔다. “시간을 좀 사다주세요.” 어느 일일극 연출자든 치러야 할 싸움이겠으나, 김병욱 PD가 더욱 고된 까닭은 그가 세 작가와 더불어 대본 작업에도 직접 매달리기 때문이다. 자기 이야기를 연출하려는 고집이냐 물었더니 다른 방법은 아예 모른단다. “대본을 쓰면서 콘티를 떠올리는 방식이 몸에 배어 제 손이 닿지 않은 대본으로는 콘티를 못 짜요.” 김병욱 PD가 직접 연출하는 <지붕킥>의 세트 촬영은 매주 목·금요일 이틀 동안 밤을 새우며 이루어진다(야외장면은 김영기, 조찬주 감독이 맡는다). 세트에서 소화하는 분량은 일주일 방송분의 절반인 100여신. 목요일은 순재네 집, 금요일은 자옥·정음·줄리엔·광수·인나가 사는 한옥 세트를 중심으로 녹화가 이뤄진다. 11월12일 목요일 오전 11시. 리허설을 위해 모여든 제작진과 배우들이 이 방 저 방 우르르 뛰다시피 몰려다니며 연기의 톤과 동선을 체크한다. 격려차 방문한 엄기영 MBC 사장과 일행을 제대로 응대할 경황도 없다. 아직 분장하지 않은 배우들의 분위기는 캐릭터와 사뭇 다르다. 신세경은 힐을 또각이며 들어섰고 지훈 역의 최다니엘 얼굴에는 뿔테 안경이 없다. 극중에서 퉁명스러운 말투의 소년 준혁인 윤시윤은 주변이 동그랗게 환해지는 웃음을 뿌리며 ‘빼빼로’를 돌리고 있다. 원체 상냥하고 웃음 많은 성격을 쿨한 준혁에게 맞춰 억누르느라 수고가 많다.



점심과 음향효과 녹음을 마친 오후 3시, 촬영이 개시됐다. 세트와 부조정실의 모든 스탭은 카메라 앵글과 연기자의 동선이 컷별로 표기된 ‘악보’- 콘티 대본에 따라 움직인다. 세대의 카메라에서 잡은 영상은 촬영과 동시에 악보에 지정된 대로 편집된다. 숏이 아니라, 세 카메라를 한번 배치해 찍어낼 수 있는 한달음의 연기가 구성의 기본단위다. 컷의 리듬대로 손가락을 튕기는 김병욱 PD는 무슨 노래를 연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세트에서는 현경이 해리의 두 다리를 붙들고 상체 강화 훈련을 시키고 있다. 매사에 급우 신애보다 처지는 딸에게 부아가 치민 체육교사 현경이, 달리기만은 질 수 없다는 결단으로 특훈에 돌입한 것이다. 해리가 팔로 계단을 오르는 장면을 어떻게 하면 더 역동적으로 잡을지 촬영감독과 부조정실 사이에 몇 차례 논의가 오가다 부감으로 결정을 본다. 록키 발보아가 울고 갈 훈련을 거친 해리가 드디어 실력을 발휘해 신애를 뒤쫓는 장면. 곁눈질해본 대본의 지문에는 무려 “영화 <추격자>의 김윤석과 하정우처럼”이라고 써 있다. 두 소녀의 레이스를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던 현경은 해리가 마침내 신애를 붙잡자 승리의 어퍼컷을 날린다. 표출되는 기쁨의 크기를 김병욱 PD가 꼼꼼히 주문한다. “체육인으로서 훈련이 성공했다는 보람이지, 딸이 신애를 때리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하이킥>부터 팀을 이뤄온 김태홍 조명감독은 배우를 대하는 김병욱 PD의 기술을 세 가지로 요약한다. “중견 연기자에겐 강한 캐릭터를 심어주고, 신인 연기자에겐 연기력과 캐릭터를 동시에 주입하고, 연기자 캐스팅에 100% 관여하여 비교우위에서 일을 진행한다.”

<지붕킥>의 순재네는 지금까지 김병욱 시트콤의 어떤 가족보다 데면데면하다. 가장 순재는 연애에 몰두해 식구들의 생활에 그닥 신경을 쓰지 않는다. 부부간의 대화는 주로 면박, 부모자식간의 대화는 꾸중과 변명이다. 먹이사슬의 최종 고리는 장인회사에서 허수아비 부사장으로 일하는 보석. 그는 자기 의지대로 무엇을 결정한 기억이 아득한 식물 같은 남자다. 53회는 보석의 비애를 아들 준혁의 눈으로 조명하는 에피소드다. 오늘도 순재와 보석의 주된 스킨십은 발길질. 모욕당하는 아빠를 바라보는 준혁의 표정 연기를 PD가 지시한다. “너무 짠한 티를 내지마.” 대선배 정보석이 팁을 일러준다. “속으로만 아픈 마음을 갖고 표정없이 봐.”

빵꾸똥꾸를 빵꾸똥꾸라 부르지 못하는 고통
무뚝뚝한 준혁이지만 세경 누나를 마주 볼 때만큼은 동요한다. 깊은 밤 사골을 고며 식탁에서 혼자 공부하는 세경과 차를 마시는 장면. 기쁜 빛이 만면에 완연하자 PD가 다시 제어한다. “준혁이 조금만 웃음을 줄이자. 넌 딱 그만큼 웃을 때가 멋있어.” 세경에게 공부를 가르쳐주는 오붓한 즐거움에 막 젖어드는 준혁에게 날벼락이 떨어진다. 엄마가 35점짜리 성적표를 세경에게 보여준 것. 이번에는 상반된 주문이 떨어진다. “바로 전 컷이 좋아하는 사람 손에 들린 35점짜리 성적표야. 네가 이 클로즈업에서 제대로 분노해야 다음 장면들이 살아.” 허공에 걸려 있는 감정을 표현하느라 힘든 또 한명의 연기자는 지훈 역의 최다니엘이다. 세경은 그를 향해 막 싹트는 마음을 잘라버리려고 일부러 덤덤히 등을 돌린다. 친절을 거절당한 지훈은 그녀를 어떤 눈빛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오전 리허설에서도 김병욱 PD에게 가이드를 구했던 최다니엘이 말한다. “제3자가 보기에는 분명해 보여도 당사자는 막상 규정할 수 없는 감정이 있잖아요. 아직 모호해요. 아마 한쪽(정음)은 재미있고 한쪽(세경)은 연민에 가까운 감정이겠죠.”

52회, 53회는 꼬마 악녀 해리의 어휘 절반을 차지하는 ‘빵꾸똥꾸’의 기원과 그 적용사례를 파고든다. 보석이 상품을 걸고 내린 빵꾸똥꾸 금지령. 입에 붙어버렸는지 “빵…”까지 하고 입을 다물어야 하는 대목에서 해리가 그만 “빵꾸똥꾸!”를 내처 외쳐버리자 스탭들이 웃음짓는다. ‘빵꾸똥꾸를 빵꾸똥꾸라 부르지 못하는 고통’이 참으로 눈물겹다. 이 어린 배우는 방영 초기 미운 캐릭터로 미움을 샀으나, 카리스마의 경지까지 연기를 폭발시켜 짧은 시간에 시청자의 적대감을 경외로 바꿔놓았다. “오디션 100:1 뚫을 때만 해도 덜했는데. 이 정도일 줄 몰랐어요. 하나의 연기에 7, 8가지 안이 준비돼 있어요.” 스탭의 존경어린 평이 무색하게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해리는 무섭게 구박하던 신애와 사이좋게 어울려 세경의 목을 끌어안고 텔레토비 노래를 흥얼거린다.

자정이 다가온 세트에는 피로감이 안개처럼 서렸다. 순재네 거실과 마주보고 있는 자옥의 방과 불 꺼진 한옥 마당, 식당과 연해 있는 이순재 F&B 사무실. TV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배치된 세트들을 다시 둘러보았다. 세경 자매가 기거하는 옷방에서는 무릎까지 이불을 덮은 최다니엘이 대본을 옆에 둔 채 건공중을 골똘히 바라보고 있다. 몇달이 흐른 뒤 시리즈가 끝나면 이 방들은 허물어질 것이다. 여기서 복닥거리던 사람들- 캐릭터, 배우, 스탭 모두- 은 자기 몫의 성장과 상처를 챙겨들고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안온하게 밀봉된 시트콤의 명랑한 우주를 창조하면서도 종장에 이르면 죽음의 예감과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섭리를 외면하지 않았던 김병욱 PD는, 이번에는 어떻게 이 공간에 안녕을 고할까.


[김병욱] “<지붕킥>은 1980년대적인 이야기”



김병욱 PD 인터뷰

“힘이 부쳐 일일시트콤은 더이상 못하겠다”는 김병욱 PD의 토로를 처음 들은 것은 <순풍산부인과> 때였다.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2009년 가을에도 그는 여전히 일일시트콤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다. 수면 부족과 자학에 시달리는 초췌한 얼굴도, 쑥스러워하면서도 능수능란한 연출의 손길도 그대로다. 다만 김 PD는 이제 “마지막”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지붕 뚫고 하이킥!>이 당연히 어느 전작보다 마음에 든다고 담담히 확언한다. 40회까지는 초기 구상대로 달려왔지만 촬영 스케줄이 점점 목을 죄어오면서 “권투로 치면 클린치와 홀딩을 하며 허덕이고 있다”고 자평하는 김병욱 PD. 눈을 질끈 감고 그의 귀한 시간을 약탈했다.

-<거침없이 하이킥>(이하 <하이킥>)을 끝내고 나서 영화판 제작과 미니시리즈 기획이 있었던 걸로 안다.
=2007년 7월 <하이킥>을 끝내고 9월부터 30억원 예산의 영화를 준비했다. <하이킥>이 전작에 비해 짧은 9개월 만에 종영했기 때문에 ‘유종의 미’라는 의미가 컸다. 민정과 윤호의 감정이 어떻게 싹텄는지 숨겨진 이야기가 주요 내용이었는데 서민정씨의 출연이 어려워지면서 접었다. 배우를 바꾸면서까지 만들 의미는 없다고 생각했다. 미니시리즈는 2부까지 방송사에 대본을 넘겼는데 준비가 늦어지면서 덮었다. 닭고기 회사를 하는 한 중산층 가정이 1, 2차 조류독감, IMF도 훌륭히 극복하고 마침내 친기업 정권이 들어섰다고 환호작약했는데, 심하게 낙관한 나머지 세계적 기업이 되겠다고 확장하다가 어이없이 망하고 난 다음 이야기였다. 심사한 PD들의 반응은 좋았다. 다만 20분짜리 호흡에 길들다보니 70분 내내 달리는 드라마라 “보다 숨차 쓰러지겠다”는 평을 들었다. (웃음)

-연기자의 재결집이 어려워 시즌제 시트콤은 불가능한 현실이다. 마케팅적 효과를 제외하면 굳이 <지붕 뚫고 하이킥!>(이하 <지붕킥>)이 ‘하이킥’이라는 제목을 물려받은 이유가 있나.
=처음 들었을 때부터 ‘하이킥’이란 단어가 좋았다. 내 작품과 살아온 방식은 킥을 안 날리거나 기껏해야 로킥이었는데, 하이킥이라는 말에는 단박에 어떤 일을 해결하는 느낌이 있어서 강하게 끌렸다. 전혀 다른 작품이 ‘1-1’로 인식되는 점은 억울하지만.

-지금까지 <지붕킥> 시청자의 코멘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말이다. 내 자신도 나이 들면서 눈물이 많아졌다. (식모살이하는 언니를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언니처럼 되고 싶지 않다는) ‘신애의 장래희망’편 내레이션을 쓰면서 눈물이 났다. 나 역시 궁핍에서 안전하고 싶은 욕망으로 일해왔다. 어떤 면에서 ‘장래희망’편에는 우리가 미래에 대해 갖는 세계관의 비극적인 면이 들어 있다.

-식모살이 모티브가 <지붕킥>의 열쇠 같다. 1970, 80년대 문화인데 2009년 드라마에 굳이 등장시켰다. 예전부터 돈이 인간관계와 집단에 미치는 영향은 김병욱 시트콤의 주요 소재긴 했지만 식모살이 설정은 그것을 노골적으로 전면화한다. 가난이 현실에서 갖는 중요성에 비해 코미디의 소재로 충분히 쓰이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나.
=<웃으면 복이 와요>에 가난한 집 칠남매를 그린 코너가 있었다. 밥 먹자고 하면 항상 밥이 여섯 그릇밖에 없는 슬랩스틱이었다. 그걸 좀 세련된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가뜩이나 없는 사람들을 희화화하다니 배부른 짓이라는 비난도 있다. 반면 내가 잘못 파악했는지 몰라도, 처음에는 해리를 미워하는 시청자가 많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돈도 없으면서 신애에게 짜증을 내는 사람이 많다는 걸 발견했다. 지금은 누구 편이 많은지 모르겠다. 신애가 분식집에 돈 없어서 잡혀 있는 동안 추가로 순대를 먹는다거나 하는 걸 보며 없는 처지에 주제넘게 뭘 그리 먹느냐고 화를 낸다. 약자에 대한 이지메일 수도 있고 우리 내면의 강퍅함일 수도 있다. 구질구질하게 살면서도 뭘 먹고 싶고 갖고 싶어 하는 근성을 못 참아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지붕킥>은 1980년대적인 이야기다. 80년대는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폭력의 시대였다. 우리는 많이 진보한 줄 알았는데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 게 아닌가 싶다. 경제적인 생존 위기를 피부로 느끼는 사람도 많고 문화적으로도 그렇다.

-강원도 산골에서 상경한 두 인물을 오누이나 형제가 아닌 자매로 설정한 까닭은.
=돈이 없어 받게 되는 수모는 여자들에게 더 슬프다. 지키고 감춰야 할 게 더 많으니까. 순재네 옷방에서 자매가 사는데 가끔 노크도 없이 식구들이 들어올 때 여자라서 더 슬프다.

-세경, 신애 자매가 화자가 되면서 현대 도시 문화를 완전히 외계에서 온 순진한 눈으로 보는 코미디의 가능성이 있다.
=처음에는 <보랏: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처럼 신애 눈에 비친 도시를 그리려고 했는데 코미디로서 재미가 충분치가 못해 단절돼버렸다. 변기에 발을 빠뜨린다거나 시식 코너로 가득한 마트를 찬양하는 뮤지컬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를 만들고 그쳤다.

-세경·준혁·정음·지훈, 네 젊은이 사이의 짝짓기가 시청자 게시판의 최대 화제인데.
=비록 시간에 쫓겨 근근이 제작하곤 있지만 로맨스를 밀고 당겨서 얻는 것이 좋은 코미디도, 절실히 다루고 싶은 주제도 아니라면 결국 허무한 거다. 중요한 점은 인물들이 어떤 성장을 하느냐다. 라인이 어떻게 설정되느냐보다 사랑을 통해 무엇을 깨우치느냐가 관건이다. 또 우리가, 사랑하기 전까지는 잘 그리는데 연애에 들어가면 약하다. (웃음) 어떤 두 인물이 함께 있을 때 좋은 느낌이 나는지 화학작용을 보게 될 것이다.

-<하이킥>의 순재네 집에 1, 2층을 잇는 봉이 있다면 <지붕킥>에는 준혁이 방에 뚫린 개구멍이 있다.
=처음에는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처럼 앞에서 물구나무서면 뒤집어지는 벽을 만들까 했는데, 치마를 입은 배우한테 곤란하기도 하고 부상 위험도 있어서 바꿨다. 구멍은 봉만큼 크게 이용되진 않겠지만 소소한 코미디를 만들어내기는 한다.

-감독의 전작을 포함한 다른 시트콤, 드라마에 비해 카메라 앵글과 움직임이 다양하다. 인물이 움직이며 대사를 하는 컷도 많다.
=세트 촬영을 하면 거의 공간을 활용하지 않고 침대나 탁자에 앉아 이야기하는 게 대세인데 스탭들이 처음에는 당황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답답해 보인다. 그래서 우리 작품은 50신을 찍어도 다른 작품 200신 같다고들 말한다.

-억지쓰고 함부로 구는 해리의 행동을 보여주는 게 아이들 교육상 안 좋다는 항의가 홈페이지에 많이 올라오기도 했다.
=1만개의 악플이 달렸다. (웃음) 예전 작품에서도 논란은 많았다. 학교 실명이 나온다거나, 언급되는 돈 액수가 위화감을 조성한다거나. 그런데 PPL만 아니면 가능한 한 현실적이고 싶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노이즈마케팅이든 뭐든 시끄러웠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시트콤은 뭘 하든 묻히기 쉬운데, 소리소문 없이 무난히 끝나긴 싫다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시청률은 무난하게 12~13% 나오는데 사람들은 하는지 마는지도 모르는 건 싫다.



-<순풍산부인과>부터 모든 작품을 함께했던 송재정 작가가 작가진에서 빠졌다. 어떤 영향이 있나.
=송재정 작가가 쓴 <크크섬의 비밀>은 그가 줄곧 하고 싶어 했던 스타일의 작품이다. 그럼에도 나와 일하면서 내게 맞춰준 거다. <지붕킥>의 세계가 가진 청승맞음은 내가 가진 색깔이다. 송재정 작가는 구성의 묘를 살린 형식 게임에 능한 작가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형식을 달리해서 풀어줄 때가 많았다. <지붕킥>에서는 추리물 구조로 파고드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지붕킥>은 소니 자회사를 통해 일본에 전회 수출됐다. 일본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들은 바 있나.
=11월부터 방영된다. 뭐, 자기들이 알아서 보지 않겠나. (웃음) 예컨대 시골 가면 벗은 여자 모델이 나온 달력이 걸려 있는데, 디자인한 사람의 의도와 전혀 무관하게 떡 쌀 때 쓰고 그러지 않나. (웃음) 종교의 경전들도 그 많은 손과 종교회의를 거치며 오역과 왜곡이 얼마나 많을까. 그래서 내가 종교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만들고 나면 어떤 물건이 누구에게 어떻게 소비되느냐는 통제하거나 가늠할 수 없는 것 같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는 김민정의 내레이션으로 <똑바로 살아라>는 서민정의 내레이션으로 마무리됐다. <지붕킥>이 독백으로 끝난다면 누구의 목소리일까.
=신애나 세경이일 것이다. 이 드라마가 완성된 형태를 갖춘다면 시작이 그랬듯 결말도 두 자매의 성장으로 마무리돼야 한다. 순재네 집 식구들도 성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