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끌시끌방/뉴스

[기사] 눈물의 결혼식 열흘만에… 눈물의 장례식

눈물의 결혼식 열흘만에… 눈물의 장례식
조선일보 원문 기사전송 2009-12-12 03:08 최종수정 2009-12-12 12:07




관심지수91관심지수 상세정보
최소 0 현재 최대 100 조회 댓글 올려 스크랩
[전송시간 기준 7일간 업데이트]
도움말 닫기 글씨 확대 글씨 축소
  '말기암 남편' 끝내 숨져
"남편 몸이 차가워져요 그래도 슬퍼 마세요 행복한 하늘나라 갔으니"

마지막 인사를 하러 남편의 관에 다가선 부인이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 울었다. 일찍 간 남편이 안쓰러운지, 차갑게 굳은 얼굴을 하염없이 쓰다듬었다. 세 살배기 아들과 돌 지난 딸이 다른 사람들 품에 안기거나 업힌 채 물끄러미 엄마를 바라봤다. 아들을 안고 있던 지인이 목멘 소리로 아들에게 말했다. "'아빠, 사랑해' 해야지." 아들은 시키는 대로 했다. 아빠와 영영 이별하는 줄은 모르는 것 같았다.

11일 오후 2시 30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 있는 말기암환자 무료 요양시설 '샘물의집'에서 전날 숨진 박기석(42·에어컨 수리공)씨의 입관 예배가 열렸다. 막일로 어렵게 먹고살다 말기암 진단을 받은 박씨는 지난달 25일 부인 김옥(37)씨와 함께 샘물의집에 들어왔다. 그는 이곳 원주희(59) 목사에게 "마지막 선물로 아내에게 드레스를 입혀주고 싶다"고 부탁해 지난달 30일 부인 김씨와 늦깎이 결혼식을 올렸다.

이날 예배 도중 부인 김씨는 남편의 관 앞에 선 채 오래도록 발을 떼지 못했다. 예배를 주관한 서울 송파구 우림교회 김대영(47) 목사가 위로했다. "남편의 몸이 차지요? 몸은 차가워도 영혼은 행복한 하늘나라로 갔으니까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박씨는 10일 오후 2시 19분 숨을 거뒀다. 고단한 생애였다. 부부는 둘 다 가난한 시골집에 태어나 중학교도 못 마치고 상경했다. 부부는 서울 송파구에 있던 30석짜리 냉면집에서 주방장과 종업원으로 만나 2006년 결혼했다. 그해 연말, 치매에 걸린 박씨의 아버지가 숨지자 부부는 장례비용 400만원을 마련하기 위해 월세방 보증금을 뺀 뒤 하루 3만원짜리 여관을 전전했다. 작년 10월, 부부는 밀린 여관비 120만원을 고민하다 동네 공원에서 "같이 죽자"고 다퉜다. 주민 김말남(59)씨가 그 광경을 보고 여관비를 대신 갚아줬다. 보증금 100만원에 15만원짜리 월세방도 구해줬다. 올 3월 박씨는 에어컨 수리공으로 취직했다. 안정된 나날은 지난 7월 박씨가 간암 말기 진단을 받으면서 넉 달 만에 끝났다.

박씨의 마지막 가는 길은 부인 김씨와 샘물호스피스병원 김재송(63) 원장, 이 병원 장영철(40) 원무팀장과 간호사 4명이 지켜봤다. 장 팀장은 "9일부터 박씨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임종 준비를 시작했다"며 "부인이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있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이 나지막이 찬송가를 부르며 위로했다"고 말했다.

오후 2시 15분, 김 원장이 마지막 순간이 멀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박씨를 향해 "부인한테 마지막 말씀을 하시라"고 말했다. 박씨가 앙상한 왼팔을 힘겹게 움직여 부인의 손을 잡았다. 박씨가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부인 김씨가 "여보, 뭐라고?" 하고 가까이 귀를 갖다댔다. 박씨는 숨결처럼 나직한 한마디를 남기고 손에 힘을 풀었다. 김 원장이 움직이지 않는 박씨를 바라보다 사망을 확인했다. 부인 김씨는 울다가 혼절했다.



11일 열린 예배에는 부부와 같은 교회를 다니던 신자 40여명이 참석했다. 박씨의 관 앞에는 건강했을 때 찍었던 박씨의 사진이 영정으로 놓여 있었다. 부인 김씨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오열했고, 어린 딸은 다른 사람 등에 업힌 채 새근새근 잠들었다.

본지에 박씨의 사연이 보도된 뒤, 10여명이 샘물의집에 "부부를 돕고 싶다"고 연락해왔다. 이곳 계광원(50) 실장은 "전화해온 사람 중에는 형편이 넉넉한 분도 있지만 어렵게 사는 분도 있다"며 "자신을 '60대 기초생활수급대상자'라고 밝힌 분이 10만원을 보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박씨의 유해는 12일 오후 벽제화장장에서 화장된 뒤, 샘물의집 뒷동산에 뿌려진다. 이날 예배가 끝난 뒤 김씨는 "여기 계신 분들이 남편을 정성껏 보살펴주셨듯이, 나도 샘물의집에 정기적으로 들러 다른 말기암환자들을 돌보겠다"며 "그때마다 뒷동산에 잠든 남편과도 인사하려고 한다"고 했다. "앞으로 애들 열심히 키워야죠. 남편이 부탁했어요. 그동안 너무 아팠다면서 애들은 절대 아프지 않게, 건강하게만 키워달라고 했어요."

"임종 때 속삭인 마지막 말이 뭐였느냐"고 묻자 김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김씨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랑해."

<object width="400" height="345" classid="clsid:d27cdb6e-ae6d-11cf-96b8-444553540000" codebase="http://fpdownload.macromedia.com/pub/shockwave/cabs/flash/swflash.cab#version=9,0,28,0" id="V000388198"><param name="movie" value="http://play.tagstory.com/player/TS00@V000388198@S000000200" /><param name="x-x-allowscriptaccess" value="always" /><param name="allowFullScreen" value="true" /><param name="quality" value="high" /></obj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