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향기나는방/문화·애니

[스크랩] 카툰- 순도 99.9%의 애정에 대하여

원문 가기 - 10 asia /카툰, 올드독의 TV 살롱

 

 

 


 

 

 

 

 

칼럼을 쓰면서 그의 공백기를 견뎌야 할 거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 없다. 한국의 날씨와 함께 썰렁해진 팬사이트들과 닷컴. 이제는 팬들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 정말 콧빼기도 안 비칠 거라는 거, 머리카락 한오라기 볼 수 없고 서태지의 ㅅ자가 들어간 소식 한 통 전해 들을 수 없을 거라는 거. 너무너무 잘 안다. 이젠 우리도 훈련이 되었다. 일상 속으로 침잠한다.

우리는 행성들이다. 4년에 한번씩 우리는 서태지와 팬들이라는 별자리를 만들어 낸다. 그 때 우리는 빛을 발한다. 물론 서태지는 항성이다. 가장 빛나는 별이다. 가지가지의 사연을 가지고 진화한 우리 별들은 자신들만의 이야기가 있다. 나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도 입을 다물어야 한다. 태지이야기를 주구장창 떠들어 댄 사람으로서는 딜레마일 수도 있다. 사실, 내가 원하는 내 팬심의 이상적 상태는 언제나 중용을 유지하는 거다. 태지별이 뜨더라도 혹은 보이지 않더라도. 천신만고 끝에 별자리를 이루더라도, 아니 벗어나더라도. 언제나 사랑하는 것이다. 엄마가 자식을 사랑하듯. 신이 인간을 사랑하듯.

 

'순도 99.9%의 애정표현일 뿐 아무데도 쓸데가 없다니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말을 보았다.
마이클 잭슨에 대한 누군가의 팬심을 표현한 말인데 나는 정곡을 찔린 듯 한동안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거 아닌가? 나방이 불꽃에 달려들 듯 타오르는 나의 애정. 타서 소진되면 그뿐, 쓸모라곤 없다. 내가 잘나지거나 도움되려고 하는 팬질이 아니다. 세상에는 유용성 없이 아름다운 것이 있다. 아무 쓸데 없기 때문에 국민적으로 환영받기 힘들다. 메이저가 되지 못한다. '탐미'가 세상에 생산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가? 곡식을 생산하지도 못하고 윤리를 확산시키지도 못한다.

공백기에 내 팬심의 정체에 대해 생각하면 꼭 한번씩 다가오는 탄식. 아무 쓸데 없는 사랑이라니 얼마나 휘황찬란한가 말이다

 

 

.

.

.

(중략)

 

사람들이 한가로이 누워 있는 해변, 한 외로운 선각자가 일어나 춤을 춘다. 주변에 있던 한 사람이 일어나 같이 막춤을 춘다. 이 사람이 추종함으로써 그 선각자가 미치광이에서 리더로 변한다. 첫 추종자가 친구를 부른다. 이젠 셋이 춘다. 셋은 그룹이라 불린다. 그룹은 뉴스가 된다. 사람이 오기 시작한다. 이제는 사람들이, 리더가 아니라 다른 추종자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고 따라한다. 더 많은 사람이 몰려와 같이 막춤을 춘다. 몰려올수록 사람들이 참여하기 쉬워진다. 눈에 띄지도 않고 드러나지도 않기 때문에. 그리하여 최초 한 인물의 막춤은 '운동'이 된다.

이 운동이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되면 처음 시작한 리더에게 온갖 조명이 가겠지만 사실은 그 가치를 알아본 첫번째 추종자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정확히 말하면 이 첫 추종자가 가치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걸 보고 태지 생각을 안할 수는 없다. 나는 어떤 추종자인가. 수많은 팔로에 섞여 있는 한 추종자이며 선배 추종자가 하는 일을 그대로 따라하는 중이다. 추종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 리더가 리더일 수 있는 것은 추종자인 내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본 사람이다. 그 가치를 널리 알리는 사람이 나다. 또 나를 보고 다른 추종자가 그 리더를 따르게 된다. 가끔 리더인 그가 이루는 일들을 보고 자괴감을 느끼지 말자. 추종자로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내가 없으면 그는 역사 속의 한 미치광이 선각자, 외로운 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

.

(후략)

 

 

 

* 태지매니아 웹진 中 오즈의 팬심별곡 <공백기의 일기> 의 일부분 발췌 - 본문 가기